책숲마실 - 서울 〈꽃 피는 책〉

2020.12.29 22:20:40

피어나는 보금자리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책숲마실’은 나라 곳곳에서 알뜰살뜰 책살림을 가꾸는 마을책집(동네책방·독립서점)을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여러 고장 여러 마을책집을 알리는(소개하는) 뜻도 있으나, 이보다는 우리가 저마다 틈을 내어 사뿐히 마을을 함께 돌아보면서 책도 나란히 손에 쥐면 한결 좋으리라 생각하면서 단출하게 꾸리려고 합니다. 마을책집 이름을 누리판(포털) 찾기칸에 넣으면 ‘찾아가는 길’을 알 수 있습니다.

 

피어나는 보금자리
― 서울 〈꽃 피는 책〉

 

  어제 파주에서 이야기꽃을 펴면서 ‘꾸밈이(디자이너)’란 낱말하고 얽힌 실마리를 풀어 보았습니다. ‘꾸’라는 말씨는 ‘꾸미다’하고 ‘가꾸다’에 똑같이 들어가지만 뜻이나 쓰임새는 좀 갈려요. ‘꾸리다’하고 ‘일구다·일꾼’ 같은 자리에서도 갈리지요. 그러나 이 모든 자리에 흐르는 말밑 ‘꾸’는 ‘꾸다·꿈’하고 맞물려요. 보기좋도록 만지는 일을 ‘꾸미다’라는 낱말로 나타내는데, 보기좋도록만 해서는 꾸미지 못해요. 앞으로 새롭게 펴고 싶다는 마음, 곧 ‘꿈’이 있어야 꾸미거든요. ‘꾸밈이 = 꿈 + 있는 + 이’라고 할까요.


  이러한 말밑길을 살피고서 오늘 〈꽃 피는 책〉에서 새 이야기꽃을 펴는데,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은 ‘숲보’라는 이름으로 숲을 사랑하고 책을 아끼며 살림을 북돋우는 길을 가신다고 하더군요. 이러한 말씀을 들으며 ‘보’라는 낱말이 얽힌 실마리를 헤아렸습니다. ‘보금자리’에 깃드는 ‘보’부터 ‘돌보다·보듬다’뿐 아니라 ‘보다’하고 가시내 몸 한켠을 가리키는 이름에 흐르는 ‘보’란 따뜻하면서 넉넉히 새롭게 가려고 하는, 이러면서 곱게 품는 눈길을 나타낸다고 할 만해요. ‘보따리·보자기’에서 ‘보(褓)’를 한자로 푸는 분이 있기도 합니다만, ‘포대기’로도 쓰는 이 말씨는 ‘보·포’가 넘나들지요. ‘보듬다(돌보다)’랑 ‘포근하다(폭신하다)’는 말밑이 모두 같아요. 감쌀 줄 아는, 품을 줄 아는, 따사로운 기운을 나눌 줄 아는 자리에 바로 ‘보·포’를 쓰기에 ‘숲보·잠보·먹보’처럼 쓰는 ‘-보’도 참 아름답고 즐겁게 쓸 말씨라고 하는 이야기를 펴 보았습니다.


  저도 어릴 적에 배움터에서 겪었습니다만, 오늘날 어린배움터나 푸른배움터 모두 살림길이라는 숨결을 가르치기보다는 서로 다투어 동무를 밟고 올라서는 몸짓으로 치우쳐요. 이때에는 배움책을 달달 외워야 합니다. 생각이 날개를 못 폅니다. 이와 달리 사랑스레 보금자리를 일구며 서로 어깨동무하는 살림길을 오순도순 나누려 한다면, 외울 까닭이 없어요. 이때에는 종이책만 책이 아니라, 우리를 둘러싼 모든 숨빛이 책빛인 줄 깨닫습니다.


  숲책(환경책) 하나를 곁에 두면서 숲을 넉넉히 읽습니다. 숲책 하나를 같이 읽으면서 숲을 새롭게 바라봅니다. 우리는 피어나려고 태어나요. 우리는 같이 피어나려고 아이를 낳아요. 우리는 서로 피어나려고 어버이가 아이를 가르치고 아이가 어버이를 일깨워요. 별빛 같은 마음이 마을책집에 흐릅니다. 눈을 반짝이면서 숲길을 배우는 어른 곁에서 아이들이 느긋하게 놀이살림을 가꾸면서 튼튼히 자랍니다. 외려 서울 한복판에서 숲순이랑 숲돌이가 뛰어놉니다. 아니, 시골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숲아이가 자라고 숲어른이 살림할 적에 아름나라가 되겠지요. 마을놀이는 마을살림으로 자라고, 마을말로 퍼지며, 마을빛으로 눈부십니다.

 

《시골책방입니다》(임후남, 생각을담는집, 2020.5.6.)
《풀이 나다》(한나, 딸기책방, 2020.9.21.)

 

숲노래 글쓴이 hbooklov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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