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에서 짓는 글살림”은 숲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시골자락에서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길에 새롭게 맞아들여 누리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숲에서 짓는 글살림
10. 우리 얘기를 산뜻하게 새로 살린다
‘인터넷 홈페이지’는 ‘누리집’이라는 우리말로 고쳐쓸 수 있습니다. 인터넷이 널리 퍼질 즈음 나라에서 마련한 글손질 틀이 있기도 하고, 사람들 스스로 새롭게 지어서 쓰는 말이 있기도 합니다. 나라에서는 ‘누리집’ 같은 낱말을 새로 마련했고, 사람들은 스스로 ‘누리꾼’이라는 낱말을 새로 지었어요. ‘블로그’는 나라에서 ‘누리사랑방’으로 고쳐쓰자는 틀을 내놓았고, 사람들은 ‘인터넷 카페’를 ‘누리모임’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고쳐쓰기도 합니다.
‘이메일·인터넷편지’로 쓰기도 하는 말마디를 ‘누리글월’로 고쳐쓰기도 해요. 이러한 얼거리를 살핀다면 ‘인터넷뱅킹’은 ‘누리은행’으로 고쳐쓰면 어울립니다. 종이로 내는 새뜸이 아닌 인터넷으로만 펼치는 새뜸이라면 ‘누리새뜸(누리신문)’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어요.
영어로 이름을 지은 ‘ohmynews’라는 누리새뜸이 있습니다. 영어로 이름을 지었기 때문에 ‘oh + my + news’입니다. 그렇겠지요? 영어에서는 으레 ‘my·I’를 쓰거든요. 영어에서는 ‘our’를 잘 안 씁니다. ‘oh + our + news’처럼 누리새뜸 이름을 지었다면 퍽 엉성한 이름일 수 있어요. 그러면 영어 ‘오마이뉴스’를 우리말로 옮기면 어떤 이름이 될까요?
oh + my + news
와 + 우리 + 얘기
흔히 ‘옮긴다’고 합니다. 우리말을 바깥말로 바꾸거나, 바깥말을 우리말로 바꾸는 일은 ‘옮기다’라 하고, 이 ‘옮김’을 한자말로 ‘번역’이라 하지요.
누리새뜸 한 가지 이름을 처음에 우리말로 지었다면 ‘와 우리 얘기’였을 테고, 이를 영어로 옮기면 ‘oh my news’가 될 만합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한 가지를 엿볼 수 있어요. 영어에서는 참말로 웬만한 자리는 다 ‘my’를 넣어요. “my mother”나 “my house”입니다. 이와 달리 우리말에서는 웬만한 자리는 다 ‘우리’를 넣어요. “우리 어머니”나 “우리 집”이에요. 영어로는 “my school”일 터이나 우리말로는 “우리 배움터”예요. “내 어머니·내 집·내 학교”는 어쩐지 안 어울릴 뿐 아니라, 뜻이나 결이 사뭇 달라요.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쓴다고 할 적에는 이 같은 결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나라마다 말이 다르다고 할 적에는 생김새로만 다르지 않고, 결이나 흐름이 모두 달라요. 우리말에는 토씨가 있지만 영어에는 얹음씨가 있어요. 우리말은 말끝(씨끝)에 따라 결이 달라지지만, 영어에서는 때매김에 따라 결이 달라요.
우리말을 아낀다고 할 적에는 우리말이 어떤 결인가를 곰곰이 짚어서 우리 나름대로 새롭게 쓰거나 살릴 틀을 세운다는 뜻입니다. 우리말로 새로운 낱말을 지을 적에 비로소 우리말을 아낀다고 할 만해요.
낱말책을 뒤적여서 ‘이제 잊힌 옛 텃말’을 캐내어 쓰는 일은 나쁘지 않습니다만, 이렇게 ‘옛 텃말 캐내기’는 힘들기도 하고, 뒷걸음질이 될 만합니다. 잊힌 말을 살리는 일은 꾸준히 해볼 만하지만, 이와 맞물려 오늘 이곳에서 새롭게 쓸 말을 우리 슬기와 사랑으로 새롭게 짓는 틀을 마련할 적에 한결 즐거우면서 아름답다고 할 만해요.
재교육·재활용·재생·재편성·재시험
‘재(再)’라는 한자를 붙인 낱말을 헤아려 보겠습니다. 이 한자에 익숙한 분이라면 이 한자를 넣어 새말을 짓기 마련이에요. 아직 낱말책에 안 실리더라도 얼마든지 ‘재-’붙이 낱말을 지어요.
우리말을 아끼려는 마음이라면, ‘再-’가 아닌 ‘다시-’나 ‘되-’를 넣어서 새말을 지어요. 때로는 ‘새로-’나 ‘새-’를 넣어서 짓고요.
다시배움/새배움·되살림/새로살림·다시쓰기/되쓰기/새로쓰기·다시엮음/새로엮음·다시 시험/거듭 시험
‘재시험’에서는 ‘다시-’를 붙이기보다 “다시보기·다시치기”처럼 띄는 쪽이 나을 만해요. “새로보기·새로치기”나 “거듭보기·거듭치기”라 해볼 수 있어요. 다른 낱말은 ‘다시-’나 ‘되-’나 ‘새로-’나 ‘새-’를 넣어서 알맞으면서 새롭게 쓸 만합니다.
‘재생(再生)’은 ‘다시쓰기’나 ‘되쓰기’로 손볼 만한데, 때로는 ‘다시보기’로 손볼 수 있어요. 소리나 그림을 다시 보려고 할 적에는 ‘다시틀기’라 해볼 수 있습니다. 어느 때에는 ‘새로쓰기·새로보기’라 해볼 테지요. 깜냥껏 우리말을 이모저모 붙여 보면서 새롭게 쓰임새를 찾을 수 있어요. 이러면서 이 자리뿐 아니라 다른 자리에서 알맞게 쓸 낱말을 얻습니다.
‘되살림’을 놓고도 ‘되살리기’라 할 수 있어요. ‘다시살리기’라든지 ‘새로살림·새로살리기’나 ‘새살림’이라는 낱말을 얻습니다. ‘거듭쓰기·거듭살림’ 같은 말을 지어 볼 만하고요.
익숙한 대로 쓰고 싶다면 익숙한 대로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익숙한 대로 쓰기만 하면 말이며 생각이 새롭게 깨어나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익숙한 틀을 때때로 내려놓고서 새롭게 생각할 적에 말이며 일이며 살림이 새롭게 깨어날 만해요.

어느 분한테는 “소문이 자자하다”나 “포부와 꿈”이나 “작은 사이즈”나 “견물생심이라고 눈으로 보니 갖고 싶었다”라든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같은 말씨가 익숙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쓰더라도 제법 많은 분은 무엇을 나타내려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어요. 이때에 우리가 조금씩 마음을 기울여 새로운 길을 살필 수 있다면 어린이한테도 쉬우면서 어른한테는 더욱 쉽고 수수하며 정갈한 말씨를 얻을 만합니다.
이를테면 “널리 알려졌다”나 “두루 퍼졌다”나 “다들 아는 얘기이다”처럼 말할 만해요. 한자말 ‘포부(抱負)’는 ‘뜻’이나 ‘꿈’을 가리키는 줄 깨달으며 “뜻과 꿈”이나 “부푼 꿈”처럼 말할 수 있어요. “작은 크기”라고 말하면 될 뿐 아니라 옷을 놓고는 “작은 크기 옷”이나 “큰 크기 옷”이 아닌 “작은 옷”이나 “큰 옷”이라고만 말하면 넉넉한데다가 우리말다운 결이 살아나는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눈으로 보니 갖고 싶었다”나 “정작 눈으로 보니 갖고 싶었다”라 말하면 넉넉한 줄 느낄 수 있어요. “가까운 곳에 있다”나 “가까운 곳에 자리한다”라 하면 단출하면서 깔끔하다고 느낄 수 있을 테고요.
아주 대단하구나 싶은 말을 캐내어 써야 하지 않습니다. 어렵게 살려서 써야 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수수하면서 작은 자리에서 상냥하게 살피며 차근차근 길어올리면 됩니다.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가 아닌 “매우 잘못했습니다”나 “고개 숙여 뉘우칩니다”라 말하면 됩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라 하지 말고 “떨어져도 날개가 있다”라 하면 돼요. “냉기가 올라온다”나 “냉수 한 잔”이 아닌 “찬기운이 올라온다”나 “찬물 한 모금”이라 하면 됩니다. 여름에 즐기는 ‘냉면’이라면? 국물을 차갑게 해서 먹는 국수이니 ‘찬국수’라 하면 돼요. ‘찬국수’처럼 ‘뜨끈국수’를 맞물려서 쓸 만합니다.
우리 입이나 눈이나 손에 익숙한 어느 말이 왜 얼마나 익숙한가를 헤아릴 수 있다면 앞으로 아이들이 새롭게 물려받아 즐겁게 쓰면서 아름답게 살찌울 우리말을 차근차근 다스리는 길을 누구나 배우며 나눌 만해요. “물이 증발해서 수증기가 된다”고 말해야 빛꽃(과학)이 되지 않아요. “물이 말라 김이 된다”나 “물이 말라 아지랑이가 된다”고 말해도 빛꽃입니다. “우천 연기”라 해야 똑똑한 말일까요? “비로 미룸”이나 “비 탓에 미룸”이라 할 수 있고 ‘비미룸·비미루기’ 같은 새말을 재미나게 짓는 말살림을 가꿀 수 있어요.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