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한겨레 우리말’은 우리가 늘 쓰면서 막상 제대로 헤아리지 않거나 못하는 말밑을 찬찬히 읽어내면서, 한결 즐거이 말빛을 가꾸도록 북돋우려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우리 말밑을 우리 삶터에서 찾아내어 함께 빛내려는 이야기입니다.
한겨레 우리말 6 철
― 봄여름가을겨울로 철들다
낱말책을 펴면 ‘춘하추동’은 있되 ‘봄여름가을겨울’은 없습니다. 낱말책에 ‘봄가을’하고 ‘봄여름’은 있으나 ‘가을겨울’이나 ‘여름겨울’도 없어요. 이래저래 엮는 모든 말을 낱말책에 못 담는다지만, 적어도 ‘봄여름가을겨울’은 한 낱말로 삼아서 쓸 노릇이라고 생각합니다. ‘사계절’뿐 아니라 ‘네철’도 한 낱말로 삼을 만합니다.
봄이란 어떤 철일까요? 여름하고 가을하고 겨울은 어떠한 숨결이 흐르는 철일까요? 네 가지 철에 깃든 살림은 무엇일까요? 철마다 다르게 흐르는 바람이며 볕이며 눈비가 어떻게 얼크러지면서 우리 살림살이가 바뀔까요?
봄·보다
먼저 ‘봄’은 ‘보다’라는 낱말을 쉽게 떠올릴 만합니다. 새롭게 봅니다. 새삼스레 봅니다. ‘봄맞이 = 잎맞이’이기도 하고, ‘꽃샘추위 = 잎샘추위’이기도 합니다. 봄철에는 꽃이 다시 피고 잎이 새로 돋습니다. 바라보는 봄이란, 다시 피는 꽃이랑 새로 돋는 잎을 보고 느끼며 맞이하는 나날이겠지요.
하늘을 보면서 겨울이 스러지는구나 하고 깨닫습니다. 하늘을 보니 제비가 바람을 가르면서 돌아옵니다. 하늘을 보니 해가 차츰 높이 오릅니다. 하늘을 보니 추위가 가시면서 기지개를 켜는 하루가 무르익는구나 싶습니다.
볼볼·봉오리·봉우리
겨우내 몸을 내려놓고서 알로 지낸 풀벌레가 하나둘 깨어나는 봄입니다. 이 봄이 되니 바야흐로 풀벌레가 볼볼 깁니다. 새삼스레 찾아온 봄을 보면서 우리 볼이 발그레합니다. 피어나는 봄처럼 산뜻하고, 돋아나는 봄처럼 푸릇푸릇합니다.
싹이 트고 움이 트지요. 꽃망울에 잎망울이 맺어요. 잎보다 먼저 꽃이 터지기도 합니다. 세찬 바람이 걷힌 봄을 기뻐하면서 온갖 빛깔 꽃나무가 아름답습니다. 꽃봉오리가 터집니다. 이 봄부터 봉오리가 하나하나 트입니다. 곁에 꽃봉오리가 해사하다면, 둘레에 멧봉우리가 듬직합니다. 꽃봉오리는 따스한 철이 돌아온 하루를 알리고, 멧봉우리 너머로 올라오는 해님은 기지개를 켜는 삶인 줄 밝혀 줍니다.
봉긋·방긋·밝다·보드랍다
꽃봉오리를 쓰다듬으며 봉긋봉긋 기운이 납니다. 방긋방긋 웃어요. 방실방실 웃음꽃이 되고, 벙글벙글 웃음잔치를 폅니다. 새로 피고 돋고 자라는 풀꽃나무를 바라보는 이 봄이란, 밝은 철입니다. 밝은 빛을 보기에 봄인 셈입니다.
첫봄에 돋는 봄까지꽃은 꽃이름답게 봄까지 필 뿐, 봄이 저물 즈음에는 가뭇없이 녹아서 흙으로 돌아갑니다. 숱한 봄맞이꽃은 그야말로 봄에만 흐드러져요. 여름해가 높아가는 동안 봄맞이꽃은 문드러집니다. 아직 밤에는 쌀쌀한 바람이 부는 봄철에 기운을 내는 앉은뱅이꽃은 우리한테 고마운 나물이 되면서, 봄빛을 마음으로 받아들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속삭입니다.
모든 봄꽃은 밝은 숨빛이면서 맑은 숨결입니다. 봄꽃을 비롯해 숱한 봄잎은 모조리 나물입니다. 봄에 갓 돋는 잎은 풀잎뿐 아니라 나뭇잎도 보들보들하지요. 보드라운 잎을 혀에 얹으며 큼큼 봄내음을 맡습니다. 부드러운 잎을 햇볕에 말리거나 덖어서 한 해 동안 잎물을 누립니다.
여름·열다
둘레가 푸릇푸릇하게 자라나는 빛깔을 보았다면, 어느새 하늘이 새롭게 열리는 철로 접어듭니다. 갖은 봄꽃이 스러진 자리는 온갖 여름꽃이 함초롬한 꽃밭입니다. 앙증맞은 봄꽃이라면 소담스러운 여름꽃입니다. 보들보들 여릿여릿한 봄잎이라면 푸른 기운이 짙은, 그야말로 짙푸른 여름잎입니다. 매끈매끈 미끈미끈 달라지는 여름날이지요.
첫봄에 흰꽃을 피운 들딸기는 한봄을 지나 늦봄에 빨간알을 맺어요. 봄을 알록달록 물들은 봄나무는 여름으로 접어드니 열매나무로, 과일나무로 탈바꿈합니다.
겨울이 스러지고 찾아든 봄부터 해가 조금씩 높아간다면, 여름에는 꼭대기로 오르는, 고빗사위에 이르는 해님입니다. 불볕이라 할 만큼 이 별을 뜨끈뜨끈 달구어 줍니다. 높이 솟은 해는 확 열어젖힌 이 하늘 어디에나 다같이 잘 자라도록 후끈후끈 기운을 나누어 줍니다.
하늘이 열리듯 마음을 엽니다. 트인 하늘처럼 생각을 틔웁니다. 사이사이 빛나고 틈틈이 눈부십니다. 여름철이란 눈부신 하루입니다. 여름날이란 빛나는 오늘입니다. 여름빛이란 아리따운 손길입니다.
열매·여름지기·열매지기
해랑 비바람이 갈마들면서 온누리를 보듬기에 사람을 비롯한 모든 목숨붙이는 즐겁고 넉넉하게 살아갈 만합니다. 들풀이 들나물이요 들밥입니다. 풋열매는 푸릇한 기운이 흐르고, 풋알은 싱싱한 빛이 감돕니다.
콩 석 알하고 얽힌 옛이야기는 사람·벌레·새가 얼크러진 숲살림을 밝힙니다. 사람 한 알, 벌레 한 알, 새 한 알, 이렇게 나누는 열매라지요. 사람만 누리는 볍씨 한 톨이 아닌, 벌레도 새도 고루 나누어서 누리는 씨나락이에요.
새는 봄여름에 벌레잡이로 지내요. 벌레는 바지런히 꽃가루받이를 하고요. 고물고물 기는 애벌레는 잎을 갉다가 새한테 덥석 잡힙니다. 뽕잎을 갉는 누에는 사람한테 누에실을 베풉니다. 누에실은 누에천이 되고 옷으로 피어납니다. 모시는 모시실이 되고 모시옷으로 거듭나고요. 삼줄기는 삼실이 되며 삼옷(삼베옷)으로 이어갑니다. 솜꽃이 피고 지면서 하얗게 솜망울이 맺으면 이 솜을 타서 이불속으로 삼고, 솜을 꼬아 실로 엮어요.
허물벗기를 하며 나비가 되는 애벌레가 없다면 밭도 들도 숲도 모두 시들어요. 배추흰나비가 배춧잎을 갉지만, 배추꽃이 필 적에 배추꽃가루를 옮기는 노릇을 합니다. 사람 몫만 헤아릴 노릇이 아닌, 벌레 몫을 챙기고, 여기에 새하고 함께할 몫도 살피는 눈길이라면 ‘슬기롭다’고 합니다. 슬기로운 사람이란 철을 아는 사람입니다. 철을 아는 사람이란 ‘철들다’라는 말처럼, 아이를 거쳐 어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애벌레가 나비로 거듭나듯, 사람은 마음껏 뛰놀면서 자란 끝에 신나게 일할 줄 아는 슬기로운·어진·참한·상냥한·부드러운·넉넉한·가멸진·착한·씩씩한·의젓한·어엿한·믿음직한 몸짓이 되어요. 이러한 몸짓을 다스리기에 ‘어른’이란 이름입니다. ‘어른’은 나이만 먹은 사람이 아닙니다. 나이만 먹는다고 할 적에는 ‘늙다·늙은이’라 합니다. ‘애늙은이’라는 말처럼, 해가 갈수록 외곬로 고이는 몸짓은 ‘늙다·낡다’예요. 철을 모르거나 잊으면 모두 ‘늙거나 낡’습니다.
철든 사람인 어른이기에 씨앗을 다뤄요. 씨앗을 고이 두거나 땅에 묻어요. 씨앗을 뿌리거나 심지요. 씨앗이란 씨알이요, 씨알이란 열매입니다. 씨앗지기는 열매지기이고, 열매지기란 여름지기입니다. 열매일꾼이자 여름일꾼이에요.
하늘 열리다·해 가득·가멸지다·가멸다·가멸차다
하늘이 열린 여름이기에 열매를 맺습니다. 봄꽃은 여름알이 되고, 여름일꾼이 여름날 묻거나 심은 씨앗은 새로 맞이할 철에 무르익을 터이니, 열린 하늘에서 열린 마음으로 열린 몸짓이 되어 열린 생각으로 열린 살림을 가꾸는 열린 사람은, 해를 가득가득 담거나 나누거나 심거나 묻거나 퍼뜨리면서 가멸진 길을 가요. 가면 손길이요, 가멸찬 집안입니다.
가득가득 일렁이는 해를 맞아들이기에 푸짐푸짐 누리는 열매이고, 이 열매로 우리 살림이 넘실넘실하니 더없이 홀가분하면서 다함께 기뻐요. 벅찬 나날이고, 반가운 하루입니다.
가을·가다
허벌난 꽃판하고 잎물결이 어느덧 새모습으로 나아갑니다. 하늘꼭대기에 있던 해가 조금씩 눕습니다. 새로운 철로 갑니다. 돌고 돌아서 갑니다. 뚜벅뚜벅 앞으로 갑니다. 봄을 맞이하고 여름을 지었으니 가을로 가요. 이 가을로 가는 동안 여름나무(열매나무)는 잎을 하나둘 떨굽니다. 열매에 온힘을 모으려고 잎은 조금씩 떨어뜨립니다.
잎이 말라 가랑잎으로 됩니다. 갈잎은 봄여름에 애쓴 빛으로 나무를 살찌워 주어 꽃이며 열매로 피어났다면, 가지에서 똑 떨어져 뿌리 둘레를 덮을 적에는 지렁이에 쥐며느리에 공벌레에 개미를 끌어당기면서 조금씩 갉도록 해요.
가을잎은 땅으로 갑니다. 하늘바라기였던 나뭇가지에서 땅바라기인 나무뿌리로 갑니다. 오래오래 잠들다가 나무줄기를 타고 올라와 허물을 벗고 하늘을 노래하던 매미도 이내 새롭게 짝을 맺어서 다시금 땅에 알을 묻어요. 돌고 돌아서 하늘로 가다가 땅으로 갑니다. 만나고 얽히고 맺다가 또다시 땅속으로 나아가는 길이에요.
갈망·갈무리·건사·간직
새롭게 가노라니 문득 알아차립니다. 이제는 후덥지근한 바람이 아닌 선선한 바람입니다. 화끈하던 볕이 저물려 하면서 스산한 밤이 됩니다. 아침저녁으로, 또 밤새벽으로 맺던 이슬이 파르르 떨어요. 이 이슬은 머잖아 서리로 바뀔 듯합니다.
어느덧 힘껏 갈망을 할 때입니다. 갈무리를 하는 철입니다. 가을이란 간직하는 나날입니다. 가을에는 저마다 살림을 건사하여 곧 새로운 철을 맞닥뜨리려고 바삐 뛰어다니는 몸짓입니다.
두고두고 쓰려고 갈망합니다. 오래오래 누리려고 갈무리해요. 겨울나기를 즐겁게 하고 싶으니 건사합니다. 겨울 지나면 또 맞아들일 봄에 활짝 웃고 싶어서 간직합니다.
같이 쓰려고 갈망을 해요. 함께 즐기려고 갈무리를 합니다. 서로서로 기쁨을 누리려는 뜻으로 건사하지요. 어깨동무를 하는 두레가 되려고, 너나없이 손잡고서 춤추고 노래하는 잔치마당을 열고 싶어 간직하네요.
갈다·엎다·바꾸다
잘 놓고 싶기에 갈무리를 하는 가을에는 새삼스레 땅을 갈아요. 땅을 바꾸지요. 땅을 바꾸는 길입니다. 땅을 갈며 땅심을 북돋우고 싶고, 보리를 뿌려 새봄에 샛노란 물결을 맛보고 싶습니다. 가고, 갈무리하고, 가는(갈아엎거나 바꾸는) 철인 가을입니다. 지붕을 갈아요. 여닫이랑 미닫이에 바른 종이를 갈아요. 푸지게 얻은 가을알로 요모조모 세간을 가는군요. 다가오는 철을 생각하면서 차근차근 바꾸는 하루입니다.
땀흘린 보람으로 바꾸어 낸 손빛입니다. 일철에 일손을 거들며 어른 곁에서 어깨너머로 손놀림을 배운 아이들은 손재주가 달라집니다. 소꿉놀이를 거쳐 소꿉살림을 알아차립니다. 소꿉밥을 짓고 소꿉잔치를 하던 아이들은 솜씨가 무엇인지 넌지시 깨닫습니다. 이 손으로 스스로 보듬으면서 일어나는 새로운 신바람을 느낍니다.
놀이하는 아이들은 처음에는 놀이노래만 알지만, 일하는 어른 곁에서 듣는 일노래를 슬슬 따라하면서, 슬기로운 손빛으로 손살림을 물려주는 어버이랑 어른 매무새가 묻어난 이야기라는 말밥을 들으면서, 어느새 마음이 한 뼘 두 뼘 큽니다. 몸이 크듯 마음이 크고, 손아귀에 힘이 붙듯 생각에도 힘을 실을 줄 알아요.
겨울·결·곁·겹
드디어 겨울입니다. 푸릇푸릇하다가 짙푸른 물결이었고 새파랗게 눈부신 하늘이 가시면서 온통 새하얗게 덮는 겨울입니다. 겹겹이 쌓이는 눈이란, 봄에 보는 꽃눈이나 잎눈하고 다릅니다. 맑고 밝고 환한데다가 속이 깨끗하게 비치는 눈송이를 손바닥으로 받아서 들여다보다가 깜짝 놀랍니다. 어쩜 물방울이 이렇게 멋들어진 무늬로 바뀌었을까요? 시원하게 뿌리는 비구름이 아닌 포근하게 덮는 눈구름이 되면 그지없이 멋진 물조각으로 되는군요.
눈밭 곁에 섭니다. 눈덩이를 뭉치며 차가운 결을 느낍니다. 냇물이나 빗물이나 바닷물이나 샘물은 시원하지만, 얼음이 된 덩어리는 찹니다. 비가 내리는 철에는 시원하지만, 눈이 내리는 철에는 춥습니다. 더운바람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온통 찬바람입니다. 더위는 생각나지 않습니다. 맨 추위로 가득한 나날입니다.
겨우·껴묻다·묻다·품다·곁
이 겨울에는 옷을 두툼하게 껴입습니다. 가을에 얻은 새로운 살림으로 바지런히 지은 나날이었으니, 겨울에는 옹기종기 모이고 도란도란 다가앉아서 그동안 바깥에서 뛰놀고 일하고 살림하던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놀이살림을 털어놓고, 어른은 어른대로 일살림을 밝힙니다. 아이는 아이답게 노래하고 이야기하고, 어른은 어른스레 노래하고 이야기합니다.
오순도순 주거니받거니 흐르는 말이 포근포근합니다. 도톰히 껴입은 옷은 폭신폭신합니다. 솜을 둔 이불도 폭신하지요. 알을 품는 어미닭이 새로운 숨결로 태어날 병아리를 그리면서 포근한 기운을 오롯이 물려주듯, 봄여름가을에 지은 살림을 겨울에 한가득 누리면서 우리가 이렇게 해낸 솜씨가 얼마나 고마운가를 새록새록 되새깁니다.
여름에는 열매를 바라며 씨앗을 묻었다면, 겨울에는 새봄을 바라며 이야기를 묻습니다. 궁금한 대목을 물어봅니다. 알고 싶은 길을 여쭙니다. 손수 묻은 씨앗이 땅이라는 터에서 뿌리를 내리고 줄기를 올리고 잎을 틔우면서 자라듯, 마음에 묻은 궁금한 생각이 마음밭이라는 자리에서 고루고루 퍼지고 무럭무럭 크면서 모든 실마리를 스스로 알아갑니다.
봄여름에 묻는 살림이란, 스스로 피어나고 싶은 몸짓입니다. 마음자리에 생각을 묻는 이야기란, 스스로 알아차리면서 나아가려는 눈짓입니다. 따스하게 품는 길을 보여주는 어버이(어미·아비)마냥, 포근하게 품는 손길을 익히는 아이입니다. 겨울에는 품고 묻으면서 겨우살이(겨울나기)를 합니다. 겨우 하나를 알아채도 좋아요. 고작 하나만 깨달아도 돼요. 이 자그마한 한 가지가 새롭게 씨앗이 되어 우리 스스로 일으켜세워요. 아이들은 어버이 곁에서 포근한 숨결을 속으로 품으면서 든든하게 겨울맞이를 하는 나날입니다.
꿈·꾸다
어미닭 품에서 포근히 자라는 알씨입니다. 어미닭이 낳은 알에서 조그마한 씨눈이 겹겹이 퍼지면서 새로운 몸을 입습니다. 알이라는 곳에서 자라나는 병아리는 ‘아아, 어떤 분이 나를 맞이하려고 이렇게 포근히 품었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나는 앞으로 어떤 몸을 새로 입고서 이 알을 깨고 나가 바깥자리에서 해바라기로 뛰놀까?’ 하고 꿈을 그립니다.
실컷 뛰놀고서 한껏 먹은 아이가 어버이 품에서 잠듭니다. 어버이는 아이를 곱게 품어 주고 토닥토닥 달래면서 자장자장 노래를 합니다. 아이는 꿈결에 어버이 노랫가락이며 목소리를 듣습니다. 아이는 꿈나라에서 어버이 손길이며 마음길을 느낍니다. 이 땅에서는 두 다리로 땅을 박차고 달리며 놀았다면, 꿈누리에서는 사뿐히 하늘로 날아서 구름을 깡총깡총 뛰면서 놀아요. 보금자리에서는 나무를 타고 열매를 따먹으며 놀았다면, 꿈자리에서는 구름을 타고 무지개를 타고 별빛을 타면서 어디로든 마실하는 놀이판입니다.
겨울철이란, 겹겹이 묻은 마음을 새롭게 일으키는 꿈이라는 생각으로 포근히 감싸면서 새봄을 그리는 나날입니다. 겨울날이란, 거듭거듭 이야기하고 노래하고 어울리면서 차가운 눈밭에서 연을 띄우고 얼음을 지치고 눈사람을 굴리고 눈놀이로 짙은땀을 뻘뻘 흘리면서 스스로 활활 타오르는 때입니다.
다 다른 봄여름가을겨울에 맞게, 다 다르게 하루를 살아요. 언제나 새롭게 살림을 보고, 놀이를 찾으며, 일거리를 마련하고, 살림살이를 북돋웁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고, 어른은 어버이가 되며, 어버이는 새삼스레 아이를 품고, 이 아이는 꿈을 그리는 홀가분한 철을 고요히 건사합니다.
철맞이를 합니다. ‘어른 되기 = 철맞이’입니다. 철있는 사람으로 자랍니다. 나날이, 다달이, 철철이, 해마다, 조금조금 눈을 틔워 해곱게 어깨를 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