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생각합시다 8 왜 안 만들고 짓는가

2021.04.16 18:28:04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말 좀 생각합시다’는 우리를 둘러싼 숱한 말을 가만히 보면서 어떻게 마음을 더 쓰면 한결 즐거우면서 쉽고 아름답고 재미나고 사랑스레 말빛을 살리거나 가꿀 만한가 하는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말 좀 생각합시다 8

 왜 안 만들고 짓는가

 

  미처 살피지 못할 적에는 제때나 제자리에 제대로 쓸 낱말을 모릅니다. 서두르지 않으면서 꾸준히 살피려 할 적에는 제때나 제자리에 제대로 쓸 낱말을 알 수 있습니다. 말을 알맞게 잘 하는 사람이 있다면, 꾸준히 살피고 받아들이면서 배운다는 뜻입니다. 말을 아직 알맞게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아직 꾸준히 살필 줄 모르거나 엉성한 매무새 그대로 살아간다는 뜻이에요.


  제가 하는 일을 ‘말꽃짓기(사전집필)’라고 말합니다. 말꽃(낱말책)이라고 하는 책은 으레 ‘엮다’를 써야 어울리지만, 저로서는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말꽃을 쓰는 길을 가기에 ‘말꽃엮기’ 아닌 ‘말꽃짓기’입니다.


  ‘짓다’라는 낱말은 아직 없지만, 이제 처음으로 나타나도록 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국립국어원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선보인 낱말책을 살피면 ‘짓다’라는 낱말을 ‘만들다’라는 낱말로 엉뚱하게 풀이합니다. 두 낱말은 결이 다른데 정작 이 대목을 놓치거나 안 짚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짓다 : 1. 재료를 들여 밥, 옷, 집 따위를 만들다
[고려대학교 한국어대사전] 짓다 : 1. 재료를 들여 만들다

 

  낱말책뿐 아니라 사람들 입이며 책·새뜸·배움터까지 “밥을 만들”고, “요리를 만들”고, “빵을 만들”고, “책을 만들”고, “영화를 만들”고, “사진을 만들”고, “작품을 만들”고, “집을 만들”고, “옷을 만든”다고 말합니다. ‘만들다’는 지음터(공장)에서 틀(기계)로 똑같은 것을 척척 내놓는 자리에 써야 알맞습니다. 틀대로 줄줄이 내놓는 모습이 ‘만들다’입니다. ‘주어진 틀이나 연장이나 밑감에 따라 맞추어 이루는’ 때에 ‘만들다’를 써요. 밥도 책도 집도 옷도 ‘짓’습니다. 책은 때로 ‘엮’고, 빵은 ‘구우’며, 영화나 사진은 ‘찍’습니다. 작품은 ‘짓’거나 ‘이루’거나 ‘빚’습니다.


  자리에 따라 쓰는 말이 다릅니다. 그냥 있는 자리가 아닌 살아가는 자리인 터라, 살림새에 맞추어 우리가 쓰는 말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오늘날에는 틀로 척척 찍는 잿빛집(아파트)에 옷에 자동차에 만든밥(가공식품)에 떠밀리니 하나같이 ‘만들다’일는지 모르나, 손수 일구고 스스로 가꾸는 ‘지음길’을 아는 ‘지음벗’이 그립습니다. ㅅㄴㄹ

숲노래 글쓴이 hbooklove@naver.com
Copyright @배달겨레소리 Corp. All rights reserved.

경북 상주시 화북면 입석5길 189-8 등록번호: 경북, 아00595 | 펴낸날 : 2020.6.8 | 펴낸이 : 최석진 | 엮는이 : 박연옥 | 전화번호 : 010-3174-9820 Copyright @배달겨레소리 Corp.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