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에서 짓는 글살림 18. 옮김말씨는 우리말인가?

2021.05.29 13:01:08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에서 짓는 글살림”은 숲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시골자락에서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길에 새롭게 맞아들여 누리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숲에서 짓는 글살림
18. 옮김말씨는 우리말인가?


  제가 쓴 글을 받아서 싣는 곳에서 더러 글이름이나 글줄을 고칩니다. 그런데 글이름이나 글줄을 고치면서 고쳤다고 알리지 않기 일쑤입니다. 나중에 새뜸이나 책를 보면서 깜짝 놀라요. 저는 틀림없이 이렇게 안 썼으나 그곳 엮은이가 고쳤거든요.


  우리말을 우리말답게 가다듬거나 살피는 길을 걷는다는 사람으로서 엉뚱하거나 엉성한 글이 제 이름을 달고 나오면 부끄럽습니다. 비록 제가 그렇게 안 썼다고 하더라도, 새뜸이나 책을 엮는 분이 우리말을 제대로 짚지 않고서 고쳤으니 부끄럽지요. 그 엮는이는 틀림없이 다른 분 글도 엉뚱하게 고치겠지요. 이러면서 얄궂은 옮김말씨(번역체)는 끝없이 퍼질 테고요.


  엮는이는 엮는이 나름대로 알맞게 고쳤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멀쩡한 글을 옮김말씨로 고친다거나, 입으로 말하듯이 썼는데 딱딱하게 고친다거나, 쉽게 쓴 글에 한자를 입힌다면 좀 따질 노릇이라고 봅니다.

 

쓰레기를 생각해 본 적 있나 (글쓴이)
쓰레기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나 (엮는이 손질)

 

  “-에 대(對)해”나 “-에 관(關)해”는 옮김말씨입니다. 영어 ‘about’을 이 두 말씨로 옮기는 분이 많은데, 이는 알맞지 않아요. 자리에 따라 다르게 옮겨야 할 ‘about’인데 웬만한 자리는 ‘-을/-를’로 옮겨야 알맞습니다. 때로는 “-과 얽혀/-을 놓고”로 옮기지요. “-란 무엇인지”나 “-를 얼마나”로 옮길 수 있어요.

 

아이한테 말하다 (글쓴이)
아이에게 답하다 (엮는이 손질)

 

  저는 ‘-에게’라 글을 쓰지 않습니다. 글에서든 말에서든 늘 ‘-한테’만 써요. ‘-한테’는 입말이요 ‘-에게’는 글말이라고 낱말책 뜻풀이에 나옵니다만, 썩 알맞지 않은 풀이라고 느낍니다. 우리는 말하는 대로 글을 쓰면 됩니다. 광주사람이 서울말로 글을 쓸 까닭이 없고, 강릉사람이 굳이 서울말로 말을 할 까닭이 없습니다. 고장마다 고장말로 즐겁게 글을 쓰면 되듯, 입말·글말을 따지지 말고 부드러이 말하면 됩니다.


  제가 ‘-한테’로 쓰는 말글을 엮은이가 ‘-에게’로 고치는 몸짓이란, 고장말을 얕보거나 사람마다 달리 쓰는 말씨를 깔보는 셈이라고 볼 만하지 싶어요. ‘-한테’가 틀린 말이 아닌데 고치니까 말이지요. 오히려 ‘-에게’를 ‘-한테’로 고치면서 글결이 한결 부드러우면서 술술 읽히도록 하는 길이 나을 수 있습니다.

 

마을을 밝히고 감싸는 나무처럼 글을 쓰면 됩니다

▲ 마을을 밝히고 감싸는 나무처럼 글을 쓰면 됩니다

 

어린 날 (글쓴이)
어린 시절 (엮는이 손질)

 

  저는 ‘시절(時節)’이라는 한자말을 안 씁니다. 쓸 까닭이 없다고 여깁니다. 제가 쓰는 말은 ‘날·나날·때·적·철·즈음·무렵·쯤’ 들입니다. 자리에 맞추어 알맞게 낱말을 골라요. “어린 날”을 왜 “어린 시절”로 고쳐야 할까요? 거꾸로 “어린 시절”을 “어린 날”이나 “어릴 적”으로 고쳐야 알맞을 텐데요.

 

해마다 천 자락 (글쓴이)
매년 천 권 (엮는이 손질)

 

  제가 쓰는 말은 ‘날마다·이레마다·달마다·해마다’입니다. ‘사람마다·책마다·마을마다’입니다. ‘매일(每日)·매주(每週)·매월(每月)·매년(每年)’을 구태여 써야 할까요? 우리말 ‘-마다’가 있는데 왜 꼭 ‘매(每)-’에 매달려야 할까요? 한자 ‘각(各)’도 ‘-마다’를 가리키는데, 이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면 “각 개인마다” 같은 겹말을 쓰지요.

 

누가 울거든 (글쓴이)
누군가 울고 있거든 (엮는이 손질)

 

  말끝에 ‘있다’를 붙이면 겹말이자 옮김말씨에 일본말씨입니다. 일본사람은 영어 ‘-ing’ 꼴을 ‘중(中)’이라는 한자로 옮겼고, 이를 글꾼(지식인)이 총칼나라(일제강점기)이던 무렵에 ‘작업중·취침중·공부중·수업중’처럼 껍데기만 한글인 말씨로 받아들였어요. 이러다가 “작업하는 중”이라든지 “작업하고 있는 중” 같은 겹말이 번지기도 했다가 ‘중’을 ‘가운데’로 옮긴 “작업하고 있는 가운데”나 “작업하는 가운데” 같은 엉성한 말씨가 생기기까지 했습니다.


  우리말로는 “일하면서”나 “일하며”입니다. 우리말은 여느 말씨로도 ‘여기·오늘(현재형), 있는·하는(현재진행형), 어제·한(과거형)’까지 모두 나타냅니다. 우리말은 말끝에 다른 말을 안 붙이고 결이나 흐름을 살펴서 때매김을 가릅니다. 이러한 우리말씨를 헤아리지 않는 “-고 있다”는 찰거머리처럼 사람들 입에 들러붙고 말았는데요, 영어를 가르치는 자리에서도 자꾸 잘못 가르치고, 우리말로 글꽃(문학)을 펴거나 여느 글을 쓰는 분마저 제대로 살피지 않는 탓에 끝없이 퍼지지요.

 

요가를 한다 (글쓴이)
요가를 하는 중이다 (엮는이 손질)

 

연필을 깎을 적에 나오는 부스러기는 꽃이 됩니다. 나무한테서 왔으니 꽃이겠지요.

▲ 연필을 깎을 적에 나오는 부스러기는 꽃이 됩니다. 나무한테서 왔으니 꽃이겠지요.

 

  저는 “한다”라고만 말합니다. “하고 있다”도 “하는 중이다”도 “하는 가운데이다”도 “하고 있는 중이다”도 “하고 있는 가운데이다”도 안 씁니다. “한다”처럼 짧게 끊으면 될 말에 군더더기를 늘어뜨리지 않아요.


  우리가 글쓰기나 말하기에서 헤아릴 대목이 있습니다. 군더더기를 붙이는 일은 멋이 아닙니다. 글맛이나 말맛을 더해 주지도 않습니다. 우리말은 군더더기 아닌 꾸밈말을 넣으면서 새롭고, 말끝을 살살 바꾸면서 즐겁습니다. “요가를 즐겁게 한다”나 “요가를 고요히 한다”처럼 꾸밈말을 넣어요. “요가를 하지”나 “요가를 하네”나 “요가를 하는군”이나 “요가를 하더라”나 “요가를 한단 말이다”처럼 말끝을 바꿉니다. 군더더기는 겉치레일 뿐입니다.

 

우리가 잘 모르는 온갖 버섯 이야기 (글쓴이)
당신은 잘 모르는 버섯의 모든 것 (엮는이 손질)

 

  저는 “온갖 버섯 이야기”라고 적었습니다. ‘온갖’을 덜고 “버섯 이야기”라고만 적어도 됩니다. 이를 일본말씨 ‘-의’를 넣어 “버섯의 모든 것”이라고 고쳐야 할는지 아리송합니다. ‘-의’를 넣는대서 뜻이 살아나지 않고, 글이 멋있지 않습니다. 그저 일본말씨일 뿐입니다.


  저는 ‘우리’라고 말을 했는데, 엮는이는 ‘당신(當身)’이라는 한자말로 고쳤습니다. 저는 한자말 ‘당신’을 안 씁니다. 저는 ‘이녁’이라 하거나 ‘너·자네·그대·너희’ 같은 우리말을 써요.


  잘 모르거나 잘못 알아서 틀리게 쓴 곳이 있다면 얼마든지 고쳐야지 싶습니다. 그러나 멀쩡한 글은 멀쩡하게 살릴 노릇이라고 봅니다. 아무리 옮김말씨가 널리 퍼지더라도 글쓴이나 엮는이나 길잡이(교사)나 글꾼(지식인·작가)은 우리말씨가 무엇인가를 찬찬히 생각하고 돌아보고 되짚으면서 하나하나 새로 배우는 마음이 되어야지 싶어요.  ㅅㄴㄹ

숲노래 글쓴이 hbooklov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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