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글쓴이 숲노래 ]
맨발로 흙을 밟는 어린이
《펠레의 새 옷》
엘사 베스코브
편집부 옮김
지양사
2002.10.1.
스웨덴에서 1874년에 태어나 1953년에 숨을 거둔 엘사 베스코브 님이 빚은 그림책 《펠레의 새 옷》을 아이와 함께 읽습니다. 이 그림책은 2002년에 처음 우리말로 나왔고(지양사), 2003년에 다시금 새로운 판이 나옵니다
엘사 베스코브 님은 그림책을 새로 빚을 적마다 ‘그림님 딸아들’을 ‘그림책에 나오는 아이’로 그렸다고 합니다. 그림님 아이는 어머니가 그림책을 선보일 적마다 ‘내 그림책’을 하나씩 가지는 셈이었다지요. 이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어머니가 하나씩 갈마들며 물려준 이 그림책을 자랑스레 여겼다고 합니다.
인천 화평동에는 그림할머니 박정희 님(1923∼2014)이 물빛그림을 나누는 조촐한 배움마당을 열어 이웃사람한테 물빛그림을 가르치셨는데, 이 그림할머니도 이녁 네 딸하고 한 아들이 제금을 날 적에 아이마다 돌봄책(육아일기)을 따로 그려서 기쁘게 주었다고 합니다.
아이한테 잿빛집(아파트)을 사주어도 나쁘지 않겠습니다만, 아이를 어떤 사랑으로 낳아 돌본 살림이었다고 차근차근 글이며 그림이며 사진으로 엮은 꾸러미를 하나씩 물려줄 적에 더없이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대단하다 싶은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을 찍어야 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함께 살아가며 살림한 이야기를 즐거이 담아서 나누면 됩니다.
펠레는 할머니의 당근밭에서 잡초를 뽑았습니다. 그동안 할머니는 펠레의 양털을 빗어서 솜처럼 부풀렸습니다. (8쪽)
우리 집 아이들은 제멋대로 일어납니다. ‘제멋대로’란 마음이 가는 대로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푹 자고 싶으면 해가 하늘 높이 솟을 적까지도 자고, 일찍 깨고 싶으면 새벽 서너 시에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요.
지난밤 열 시가 넘도록 놀다가 잠든 아이가 새벽 네 시에 일어나기에 “어라? 더 자야 하지 않을까?” 하고 물으니 “일어날래.” 하면서 기지개를 켭니다. 겨울이라면 새벽 네 시가 어둡지만, 여름이라면 새벽 네 시가 환합니다.
이때에는 어쩔 길이 없습니다. 새벽놀이를 하다가 아침에 자든, 한낮에 꾸벅꾸벅 졸다가 곯아떨어지든 지켜보기만 할 뿐입니다. 새벽바람으로 일어나서 놀겠다는 아이를 어느 누구도 못 말립니다.
새벽에는 새벽바람을 쐬면서 새벽에 스러지는 새벽별을 바라보다가 풀잎마다 맺힌 새벽이슬을 톡 건드리면서 낯을 씻으면 매우 상큼해요. 풀벌레하고 숲짐승은 바로 이 풀잎에 맺힌 새벽이슬로 혀를 축이고서 하루를 살아낸다지요.
새벽잠이 사라진 아이가 몸을 느긋이 건사하며 놀도록 할 적에는 그림책이 매우 좋습니다. 곁에 같이 누워서 “자, 우리 누워서 그림책을 보면 어떨까?” 해봐요.
그림책 《펠레의 새 옷》을 들고 아이 곁에 눕습니다. “벼리, 책 읽을래.” 하는 아이한테 “그래, 책 읽고 싶으면 여기 누워.” 하고 말하며, 아이랑 팔베개를 하고서 누운 채 새벽녘 밝은 빛살을 머리 쪽으로 받으며 한 책 두 쪽 펼칩니다. 왼쪽에 적힌 글을 읽고, 오른쪽에 나오는 그림에 따라 글에는 안 적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덧붙여 들려줍니다.
그림책에 나오는 오빠는 늘 맨발로 다니는데, 오빠가 어디나 맨발로 다닐 수 있게끔 길은 흙길이고, 길에 깨진 조각이나 헌 못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빠가 돼지우리에 들어가 먹이를 주는 그림을 읽으며 오빠가 돼지우리에도 맨발로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는구나, 이렇게 씩씩하고 일 잘하는 오빠이지만, 돼지우리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에는 발을 씻어야겠지, 그런데 돼지란 매우 깨끗하게 있기를 좋아하는 짐승이라서 돼지우리는 아마 매우 깨끗할 테고, 그리 냄새는 안 나리라 생각해, 하고 여러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석 쪽 넉 쪽 넘기니 할머니가 나옵니다. 할머니는 나이가 많아 집에서도 추우니까 불을 피우는구나, 바느질꾼 아저씨네 두 아이 가운데 언니는 벼리보다 어려 보이는데 가위를 갖고 노네, 가위로 천조각을 자르면서 노는구나, 한 손에는 가위를 들고 다른 손에는 실패를 들었네, 펠레 오빠가 자작나무 땔감을 지고 나르니까 바느질꾼 아저씨네 두 아이도 가슴에 땔감을 한둘씩 안고 함께 일하는구나, 펠레 오빠는 언제나 맨발로 일하고 놀았는데, 양한테서 얻은 털로 지은 새옷을 입을 적에는 반짝반짝 신을 신었어, 그러고는 양한테 가장 먼저 찾아가서 고맙다고 꾸벅하는구나, 그림책에는 ‘아기 양’이라고 나오지만, 양한테는 ‘새끼 양’이라고 해야 어울려, 돼지는 ‘새끼 돼지’야, 같은 이야기를 줄줄 덧달아 들려줍니다.
펠레는 할머니의 암소를 돌보고, 할머니는 양털을 물레로 자아 실을 뽑았습니다. (12쪽)
천천히 천천히 그림책을 넘기면서 읽습니다. 그림책 하나를 천천히 다 읽고는 내려놓습니다. 아이를 더 재우려면 아버지도 함께 드러누워야겠구나 싶어 그대로 누운 채 팔을 아이한테 뻗습니다. 아이는 마음껏 머리를 요리조리 굴리며 팔베개를 즐깁니다. 아이는 제 어버이 팔이 어떠하든 마음껏 머리를 굴립니다. 팔에 힘을 빼고 아이가 하는 대로 지켜봅니다. 삼십 분 즈음 이렇게 뒹굴거리던 아이는 이윽고 잠이 듭니다. 아이가 조용히 잠들었을 무렵 살며시 일어납니다. 이불을 다시 여미며 발소리를 죽이며 잠칸에서 나옵니다.
펠레는 어머니한테 갔습니다. “어머니, 이 실로 옷감을 짜 주세요.” “그러구 말구. 그동안 네 여동생을 돌보아 주겠니?” 펠레가 여동생을 보살피는 동안, 어머니는 베틀에 앉아 옷감을 짰습니다. (20쪽)
그림책 《펠레의 새 옷》을 곰곰이 다시 읽습니다. 어린 펠레는 새 옷을 입었습니다. 어린 펠레는 양털을 고르거나 물레를 잣거나 베틀을 밟을 줄 모릅니다. 가위질이나 바느질을 아직 하지 못합니다. 그래도 어린 펠레는 실을 물들일 줄 알아요. 실을 물들이려고 나무를 해서 불을 붙일 줄 알며, 물그릇을 짊어지고는 불이 옮겨 붙지 않을 만한 물가에서 물을 끓여 실에 파란 물을 들입니다. 파란 물을 들인 실은 나무 사이에 줄을 이어 걸어서 말립니다.
그러고 보면, 어린 펠레는 당근밭에서 당근줄기 아닌 다른 풀을 알아보면서 김매기를 할 줄 압니다. 소를 몰거나 부릴 줄 압니다. 어린 동생한테 뜨거운 죽을 호호 불어 가며 찬찬히 먹이며 귀여워할 줄 압니다. 나룻배를 저어 냇물을 건널 줄 알고, 어른이 돈을 쥐어 주며 심부름을 시킬 적에 알뜰히 해낼 뿐 아니라, 돈셈을 바르게 해서 거스름돈을 받아 제 새 옷에 물들일 물감을 장만할 줄 압니다. 어린 동생들을 이끌며 땔나무를 즐거이 나를 줄 알아요.
무엇보다 고마운 마음을 잘 아는 어린 펠레입니다. 양한테 고맙다고 절할 줄 압니다. 할머니랑 아저씨한테 고맙다고 절할 줄 압니다. 하루하루 몸이 크면서 예전 옷이 작다고 느낄 줄 알며, 새로 옷을 맞추어야 하는 줄 알아요. 펠레는 저한테 작은 옷을 어떻게 할까요. 아마 이웃집 어린 동생한테 “자, 내가 아껴 입던 옷이야. 잘 빨았으니까 네가 더 크면 입으렴.” 하고 물려주지 않을까요?
그리고 일요일 아침, 펠레는 새 옷을 입고 아기 양을 찾아갔습니다. “아기 양아, 고맙다. 너의 털로 새 옷을 지을 수 있었어.” “음매애-애-애.” (28쪽)
할머니는 할머니이기 때문에 양털을 빗질할 줄 알며, 물레를 자을 줄 압니다. 어머니는 어머니이기 때문에 베틀을 밟을 줄 압니다. 그리고 할머니와 어머니는 어린 펠레를 귀엽게 바라보면서 도와줄 줄 압니다.
어린 펠레는 귀여움을 받고 자라면서 앞으로 저보다 어린 동생한테 여러모로 손길을 내밀어 돕겠지요. 어린 펠레가 어른 펠레가 되면, 지난날 저처럼 어린 아이들이 저한테 도와 달라고 찾아오면 지난날 어른들이 저한테 했듯이 ‘어린 몸에 걸맞게 어떠한 일을 해내’야 좋고, 이러한 일을 해내는 보람과 값과 사랑을 느끼도록 이끌면서 아주 기쁘게 선물을 하나씩 나누겠지요.
맨발로 흙을 밟으며 살아가는 어린이는, 흙 기운을 곱게 맞아들입니다. 맨발로 흙을 밟으며 흙을 좋아할 줄 알고, 흙을 좋아할 줄 아니까 흙을 어떻게 사랑하면서 돌봐야 하는 줄 알겠지요.
고마운 햇볕과 바람과 물과 흙에 둘러싸여 고마운 이웃과 짐승과 푸나무하고 어깨동무하는 펠레한테는 하루하루 새로운 나날이면서 언제나 즐거운 삶입니다. 시골 닭을 시골 닭답게 투박하고 수수하게 흙내가 나도록 지은 그림책이 무척 사랑스럽습니다. 온누리 모든 어버이가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려는 길에 처음 펴면 즐거울 그림책이라고 여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