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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우리말 2 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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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물과 '쏠-폭포'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한겨레 우리말’은 우리가 늘 쓰면서 막상 제대로 헤아리지 않거나 못하는 말밑을 찬찬히 읽어내면서, 한결 즐거이 말빛을 가꾸도록 북돋우려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우리 말밑을 우리 삶터에서 찾아내어 함께 빛내려는 이야기입니다.

 

 

한겨레 우리말
― 쏠, 즐겁게 노래하는 물


  둘레에서 쓰는 말을 그냥그냥 쓰면 모든 말을 그저 외우기만 해야 합니다. 둘레에서 쓰는 대로 우리가 나란히 쓰려면 참말로 다 외우지 않고서는 쓰지 못해요. 그런데 외우지 않고도 말을 하는 길이 있어요. 스스로 생각하면 됩니다. 그 말을 어떻게 지었을까 하고 밑바탕을 생각하고 살피다 보면 처음 듣거나 마주하는 말이어도 문득 느낄 만하고, 거듭 생각하는 사이에 뜻이며 쓰임새이며 결이 우리한테 스며들어요.


  한자말 ‘폭포’가 있어요. 우리말 ‘쏠’이 있어요. 두 낱말은 같은 물줄기를 가리킵니다. 아마 ‘폭포’란 한자말은 어린이도 익히 들었을 만하지만, ‘쏠’이란 우리말을 들은 어린이는 드물리라 생각해요. 어른도 거의 못 들었을 테고요. ‘폭로’란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를 가리킵니다. 자, ‘폭포’라 할 적에 이 한자말 어디에서 ‘쏟아진다’는 느낌이나 뜻을 알아챌 만할까요?


  우리는 한자를 쓰는 나라가 아니지만 여러모로 한자말을 곳곳에 써요. 그래서 예부터 쓰던 우리말은 말밑을 깊이 헤아리지 않아도 느껴서 알기 쉬워도, 한자말은 말밑을 낱낱이 안 파헤치면 낯설어, 그만 외워야 하기 일쑤입니다. ‘쏠 = 폭포’인 까닭을 말밑으로 살펴볼까요?

 

 쏠. 쏠리다.
 쏟다. 쏟아지다. 쏟아붓다.
 쏴. 쏴아아. 
 소나기.
 솟다. 소스라치다.
 솔솔. 솔잎. 소나무.

 

  자, 뭔가 눈치를 채면 좋겠어요. “쏠리는 물”이란, “쏟아지는 물”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소나기’는 갑자기 쏟아지는 빗물입니다. ‘소나무’에서 ‘솔’은 ‘솟다’하고 말밑이 맞물려요. 뾰족뾰족한 모습을 ‘솟다’로 나타내고, 이러한 생김새를 ‘솔·소나무’로 그리지요. ‘소스라치다’를 말할 적에는 쭈뼛쭈뼛 섭니다. 비가 쏟아질 적에 ‘쏴·쏴아아’란 소리로 나타내요.

 

 쏠 = 쏘 + ㄹ

 

  네, 물이랑 비를 생각하면 우리말이 태어난 얼거리를 꽤 재미나면서 수월하게 알아차릴 만합니다. 비가 쏴아아 오듯, 넘치는 냇물이 쏴아아 흐르듯, 이러한 소리와 결을 ‘소나기’로도 ‘쏠’로도 담아냈어요.


  말밑을 캐면 어쩐지 싱거울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쓰는 말뿐 아니라, 영어나 일본말이나 중국말도 이처럼 삶자리에서 문득문득 태어났답니다. 그리고 ‘쏠’에 ‘ㄹ’ 받침이 붙는 까닭도 생각해 볼 만해요. 쏠물(폭포수)은 끝없이 우렁차게 흘러요. 소리가 가락처럼, 노래처럼 자꾸자꾸 이어가는 물줄기이지요. ‘ㄹ’ 받침은 노래나 가락처럼 흐르는 모습을 나타낼 적에 으레 붙입니다. ‘즐겁다’에서 ‘ㄹ’ 받침도 매한가지예요. ‘놀이’에서 ‘ㄹ’도 그렇지요. ‘일’에서 ‘ㄹ’도 그런데요, 요새는 우리 삶터에서 고된 일이 매우 늘었지만, 지난날에는 들일이건 집일이건 늘 노래하면서 했어요. 옛날 어른들은 일하면서 일노래를 불렀고, 옛날 어린이는 놀이하면서 놀이노래를 불렀어요.

 

 라라라. 랄라라. 랄랄라. 라랄라.

 

  ‘ㄹ’을 넣는, 영어라면 ‘l’을 넣는 소리는 즐거운 가락을, 노래하는 결을, 가볍게 춤추고 뛰듯 놀거나 일하는 몸짓을 나타내면서 씁니다.


  이렇게 따지고 보면 ‘쏠·쏠물’은 즐겁게 흐르면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가리키는구나 싶기도 합니다. 왜, 그렇지 않나요? 물놀이터에서 미끄럼을 타고 높은 데에서 좌아악 내려오면서 다들 소리지르고 신나지 않아요? 짜릿짜릿하지요. 때로는 조금 무서울는지 모르지만, 물놀이터 미끄럼을 타다 보면, 또 모래놀이터 미끄럼에서도 똑같은데, 높은 데에서 쏴아아 바람을 가르며 내려올 적에는 다들 ‘ㄹ’이 됩니다. 노래가 되지요.


  즐겁게 흐르는 노래하는 물줄기가 바로 ‘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