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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아이] 2. 띠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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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2. 띠앗

 

  내가 태어난 날이라고 작은아이가 왔다. 볼이 해쓱하고 지쳐 보였다. 목소리도 쉬었다. 묻는 말에 고개를 끄떡인다. 말이 적은 아이인데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느라 목이 부었다. 동생이 쓰던 자리를 열고 짐을 푼다. 나는 손수건 하나 찾아 목에 두르라 하고 꿀물을 탔다.

 

  어릴 적에 워낙 조용해서 아프거나 좋은 일 있어도 그냥 지나칠 때가 있었다. 두 아이 사이에 치여 뒤에만 서던 아이를 잘 헤아리지 못했다. 그런데도 내 몫 집안일까지 잘 챙겨 나는 이따금 일거리를 맡긴다. 오누이가 다투기도 많이 하지만 서로를 감싸안는다.

 

  작은아이가 얼음을 먹고 난 뒤 배가 아픈 일이 있었다. 곁에서 두 시간을 지켜보다가 나아지지 않아 응급실에 갔다. 장염으로 알고 약을 지어 집에 돌아왔다. 그래도 아이는 더 아팠다. 이곳저곳 아픈 자리가 바뀐다더니 먹은 것을 다 게워냈다. 기운이 없어 눕기조차 힘들어하는 아이를 바라보기 안쓰러워 내가 아프고 싶었다. 맹장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서둘러 아이를 씻기고 이것저것 챙겼다.

 

  “큰누나하고 나하고 작은누나 병원에 데리고 먼저 갈게. 엄마는 천천히 챙겨”

  “수술하면 내가 돌봐줄 테야”

 

  두 아이가 하는 말이 미쁘다. 집 가까이에 있는 응급실로 다시 갔다. 병원서도 맹장으로 넘겨잡고 초음파를 찍기로 했다. 의사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들은 작은누나가 누운 침대에 걸터앉았다. 조그마한 공책을 꺼내 무언가를 골똘히 적는다. 작은누나 아픈 이야기를 쓰는 듯했다.

 

  내과 의사가 왔다. 한참을 초음파를 살피던 의사가 물었다.

 

  “뭐 좀 먹었어요?”

 

  옆에 있던 아들이 얼른 말한다.

 

  “누나는 달걀부침 먹고요. 나는 햄 먹었어요.”

 

  아들 말에 의사도 나도 까르르 웃었다. 아무런 꾸밈이 없는 말이 귀엽고 철없이 톡톡 끼어들고 대꾸하는 몸짓을 보니 철이 다 들었구나 싶다. 작은아이가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스르르 눈을 감고 두 아이가 곁을 떠나지 않고 보살폈다. 몸은 아픔을 가장 많이 느끼고 우리 가슴도 크게 움직이게 한다. 두 아이도 아파 보았기에 아픈 누나 마음을 잘 헤아리는 듯하다.

 

  또 하루는 서울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큰아이와 아들 저녁을 작은아이에게 맡겼다. 그날따라 차가 얼마나 밀리던지 세 시간 반이나 늦게 다다랐다. 집에 있는 아이들이 어쩌는지 궁금했다. 작은아이에게 쪽글을 넣는데 말이 없다. 큰아이에게 전화해도 안 받는다. 하는 수 없이 집전화로 걸었다. 아들이 받는다.

 

  “뭐해?”

  “숙제하는데...”

  “참말이야. 또 오락해 놓고 그러는 거 아냐?”

  “진짜야. 누나가 와서 난 애써 숙제하는데...”

  “이번 주는 오락 하지 말라고 했는데 또 그러는 거야? 집에 가면 셋 다 혼날 줄 알아!”

  “작은누나 혼내지 마. 작은누나 말고 내가 야단맞을 게.”

  “그런 게 어디 있어.”

  “작은누나 내가 오라고 불렀단 말이야. 내가 혼날게. 누난 혼내지 마!”

  “그럼 어떻게 혼날래?”

  “때리면 맞고 엄마 꾸중하고 싶은 대로 해.”

 

  내가 없는 동안 마음이 느슨해질까 좀 세게 말했다. 마음에 없는 말을 꺼내 윽박질렀다. 셋을 다스리려면 가끔은 무섭게, 아니 늘 무섭게 윽박질렀다. 그런 내 말이 익숙한 듯 아들은 아주 차분히 땀직땀직 말했다. 무릎맞춤이라도 한 듯 작은누나를 끔찍이도 감쌌다. 그래도 사나이라고 누나 말고 혼자 꾸지람을 맞는다니, 오래도록 싱긋이 웃으며 집에 들어섰다.

 

  “엄마 왔나?”

  “어, 안 잤어?”

  “문 소리에 깼어”

  “그랬구나 조용히 들어 와야 하는데 미안해. 얼른 자라”

  “근데 엄마 몇 시야”

  “새벽 5시 30분이야”

  “헐”

 

  밤은 낮에 일어난 우리 힘겨루기도 재운다. 우리는 부딪치며 조바심이 나던 그때만 지나가면 힘겨루기가 저절로 끝난다. 그리고 또 되돌아가기를 거듭한다. 조금도 내 곁을 떨어지지 않던 아들도 나이가 늘어나니 선뜻 따라나서지 않는다. 집을 살짝 비워보니, 여느 때는 샘바리였다가도 똘똘 뭉치고 보듬어 끌어안는 깊은 마음을 느낀다.

 

  꿀물을 마시는 작은아이 발끝에 기대 눕는다. 내가 아플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 위아래로 치이면서 조용히 잘 자라 어느덧 군대 간 동생에게 살림돈 보내고 생일에는 초콜릿도 슬그머니 보낸 듯하다. 마음결이 고운 작은아이가 우리 집 추임새로 오누이와 우리 사이를 잇고 북돋아 구순하다.

 

  ‘띠앗’이란 말은 내가 다섯 해 만에 하루를 다시 쓸 수 있던 때인 2017년 11월에 처음 알았다. 낱말책을 읽다가 솔깃하던 낱말이 뜻만큼 예쁘게 와닿아 늘 마음에 맴돌았다. 2018년 6월에 나보다 열세 살 적은 동생 잔칫날에, 아버지가 병원에 누워 오 남매가 큰오빠를 따르고 한마음이 되었다. 아이 잔치도 보지 못하는 아버지 생각에 하나뿐인 피붙이인 고모가 눈에 눈물이 갈쌍갈쌍 고이던 모습이 뭉클했다. 부부와 어버이와 아이보다 더 깊은 끈이 아이들이란다. 우리 아이들도 고모처럼 그때 우리처럼 띠앗머리 있게 지내라는 마음을 담는다.

 

2020.12.12. 토.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