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3. 코
남을 추켜세우는 일에 쩨쩨한 큰딸내미가 내 코에는 말씀씀이가 참으로 너그럽다. 턱 가까이 달라붙어 얼굴을 요리조리 뜯어본다. 거뭇하고 주름투성이인 얼굴을 살피면 뜨신 숨이 코로 훅 들어온다.
“엄마 코는 아주 잘 생겨서”
“어디가?”
“틀, 생김새가 고친 듯해. 높이하고 기울기하고 코볼하고 크기가 그래. 오죽했으면 한참 멋을 부리는 일에 마음이 쏠린 원이한테 엄마 코를 고쳤다 하니, 한달음에 넘어갔잖아.”
“너희들도 콧대가 있어 예뻐, 왜 그래”
“원이가 엄마 몰래 뭔가 코에 맞았는데 안됐잖아 엄마처럼 안 된대.”
“둘 다 낮은 코가 아닌데. 엄마 코는 안 높아.”
“엄마 코는 안 낮아. 높거든.”
“그래? 그라면, 네가 잘생겼다 하면 그냥 잘생긴 줄 알면 되겠네?”
“응”
내가 아버지 코 닮았나, 하고 중얼거리며 돋보기를 밀며 마른손으로 더듬어 보고 쓱쓱 쓰다듬는다. 내 코가 잘생겼다는 말을 딸내미한테서만 듣는다. 오늘뿐 아니라 큰딸에게 헤아릴 수 없이 듣는다. 제 코도 이쁘면서 왜 가만히 있는 내 코에 마음을 쏟을까. 한두 날도 아니고, 곰곰이 떠올려 보니 스무 해 앞서 코를 다쳤다.
그날 딸아이는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 영어를 배우고 돌아오다가 계단 기둥이 흔들거렸다. 아무것도 잡지 않고 그냥 내려오다가 넘어지면서 데굴데굴 굴렀다. 계단에는 아무도 없고 코피가 터졌다. 울지도 않고 몸을 일으켜 다시 교실로 들어가서 도움을 받았다. 바닥에 떨어진 얼룩도 닦아 주었다.
집에 온 딸내미 얼굴을 가만히 보니 코가 삐뚤었다. 차츰 코가 붓는다. 눈도 부어오른다. 놀랄 틈도 없이 서둘러 응급실로 갔다. 사진을 찍으니 어림한 대로 코뼈가 부러졌다. 붓기가 다 빠져야 손댈 수 있단다. 달리 뾰족한 길이 없어 붕대만 감았다.
나는 셋째를 배어 배가 몹시 불렀다. 아기 낳기 이레 앞서 큰딸내미가 코를 다쳐서 놀랐다. 몸이 힘들었다. 딸래미 수술 날을 잡고 내 수술 날도 잡는다. 수술 날보다 하루 일찍 배가 아팠다. 하루 앞서 집 옆에 있는 병원에 다친 큰딸하고 작은딸 손잡고 갔다. 어린 두 딸이 나를 돌봐주어 무사히 배를 갈라 아들을 낳았다. 딸래미는 이틀 뒤에 대구에 있는 병원으로 갔다. 곁님은 대구서도 수술한 딸내미 돌보고 나는 우리엄마가 곁에서 돌봐주었다.
내가 딸내미보다 이틀 일찍 나왔다. 저도 꽤 아플 텐데, 찾아와서 내게 마음을 쓴다. 이레 동안 서로 다른 곳에 흩어졌다가 집에 먼저 온 아기를 반갑게 맞았다.
“자꾸 울고 먹고 자고 똥을 싸네. 둘레에선 애기 똥이 구린내 난다고 하던데……. 우리 아기 똥은 구린내 안 나. 참 재미나네. 왜 똥내음이 안 나지?”
“하하. 네 코 다 막아놨으니 안 나지”
코를 수술했다지만 이쁘게 한다는 칼을 대지는 않았다. 두 콧구멍으로 연장을 넣어 부러진 뼈를 들어올렸다. 이참에 콧대라도 조금 올렸으면 싶지만, 처음처럼 뼈가 잘 붙게 했다.
아들을 얻어 기뻤다. 어렵게 얻은 아들이 곧 태어나는 기쁜 일을 앞두고 곁님은 승진 시험에 붙고 딸내미는 코가 부러지는 아찔한 일이 한꺼번에 왔다. 얼을 다 뺐지만, 하마터면 미운 얼굴이 되었으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나는 이날에서야 얻고 잃음과 좋고 궂음도 숨빛처럼 오가는구나 하고 알았다.
두 해 뒤 5학년이 되었다. 딸내미가 또 다친다. 영어를 배우러 가다가 길에서 차에 부딪혀 붕 뜨고 차 앞에 떨어졌단다. 엉덩이와 허벅지에 멍이 많이 들었다. 나도 보았다는데 그때 일을 말하지 않았기에 얼핏 지나쳤다. 할머니처럼 비가 오면 몸이 쑤신다던 말이 이 일 때문이란다. 그날 내게 말이라도 하지. 목숨보다 학원이 더 먼저였다는 말에 놀랐다. 더 시키면 잘 되는 줄 알고 내몬 듯해서 마음이 미어졌다.
차에 치인 지 한두 달 지났다. 이제는 학교에서 얻어맞고 왔다. 쉬는 틈에 또래 여자애들과 골마루에 모여서 이야기할 때 남학생 하나가 웃는 저를 비웃는 짓으로 여겼단다. 불끈하며 갑자기 달려와 마구 딸내미 왼쪽 얼굴을 주먹으로 세게 쳤다. 나는 딸래미가 얻어맞아서 온 줄도 바보같이 몰랐다. 다저녁때에 밥 먹자고 부르니 몸살 돌아 잔다며 나중에 먹겠단다. 이마를 만져 보려고 이불을 걷으려니 이불이 꼼짝 않는다. 이불 잡는 몸짓이 여느 날과 달랐다. 끝까지 얼굴을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어쩌나, 얼굴에 피멍이 들었다. 한쪽 볼이 퉁퉁 붓고 눈까지 부었다. 코는 어떠냐고 나도 모르게 먼저 튀어나왔다.
한참을 다그치고서야 한 대 맞았다는 말을 꺼냈다. 학교에서 딸내미 반이 외톨이 같았다. 5학년이 참 고울 때인데, 딸내미 반은 담임이 다섯 번이나 바뀌었다. 학교에 못마땅해도 어쩔 길이 없다. 교무실로 전화해 때린 아이어머니와 이야기했다. 두 해 앞서 다친 코가 또 부러지면 어쩌나 싶어 하늘이 무너진 듯했다.
엄마라는 자리에서 학원에 매달리고 시험에 쏠렸다. 일찍 배울수록 혀가 잘 구르는 줄로만 여기고 일곱 살 때부터 내몰았다. 그 나라 사람하고 배우면 길에서 외국사람을 만나도 떨지 않고 이야기를 하기를 바랐다. 내가 가르칠 수 없으니 밑바탕만큼은 힘을 빌려서라도 탄탄하게 닦아주고 싶었다. 어린 것이 잘 배우면 앞으로 좋을 줄 알고 나 또한 그렇게 믿었다.
어쩌면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한 내가, 아이한테서 보람을 받고 싶은 배움이었을까. 시간 맞추어 보내면 차에 안 치일 수 있을 텐데. 굳이 일찍 가라고 보낸 내 탓 같다. 다 잘되라고 한 짓이었다지만, 어느새 짐이 되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떠오를 부러진 코. 그래서 엄마 코가 잘나 보였나, 쓴소리를 마구 퍼붓는다.
그래, 너 말따나 엄마는 애 키우면 안 된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그렇겠지. 부디 엄마를 봐주렴.
2020.12.17.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