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5. 물렁팥죽
첫째한테 안경을 언제 꼈는지 묻다가 두 동생 일도 물었다. 날이 추워서 그러나, 돌아오는 말이 쌀쌀맞다.
“엄마가 떠올려야 할 걸 나한테 묻지 마.”
“…….”
뾰족한 날에 베인 듯 아린 금 하나가 가슴을 타고 밑으로 살짝 스친다. 내가 어릴 때 우리엄마가 부지깽이 들고 때리러 올 적보다 더 아프다. 둘째하고 셋째는 생각나면 생각나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물음에 애써 글을 준다. 조금 앞서도 앞머리를 내릴까 말까 머리 손질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묻더니, 맞춤 때라 바빠서 그랬을까. 한마디 말에 왜 이렇게 기운이 다 빠지는지. 일이 손에 안 잡힌다. 어린 날에 둘째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여느 때보다 일을 일찍 마무리하고 백 킬로미터로 밟으며 작은딸 집에 갔다. 바쁘게 사느라 사진첩을 두고 온 일도 잊었다. 어느덧 여덟 해가 지나고 이제야 챙긴다. 마당에 들어서서 작은딸한테 비밀번호를 물으며 계단을 오른다. 땡 소리 나고 12층 문이 열린다. 길이 길다. 5.3.2호를 지나 문을 열려다 멈춘다. 한때 아이 달랜다고 내 집처럼 드나들던 비상구를 연다.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고 군데군데 있던 낡은 집들이 사라졌다. 새로 지은 집들이 하나같이 높다. 문을 잠그고 1호 문을 열려니 가슴이 도근도근 뛴다.
가만히 머리를 도리도리하고 생각을 흩뿌리고 문을 연다. 비도 오지 않는데 우산이 바닥하고 신발장하고 가스관에 주렁주렁 걸렸다. 한 자리로 모으고 베란다에 갔다. 능금빛 벚꽃빛 두 바구니를 꺼내고 바나나 상자도 차근차근 펼쳐 보고 덮는다. 묵직한 상자를 끙끙거리며 질질 끌어서 문 앞에 둔다.
방 세 칸하고 부엌을 닦는다. 화장실 앞에 작은 바구니에 빨래해야 할 옷이 수북이 담겼다. 두툼한 털옷은 안방 앞에 어지럽게 놓였다. 바구니를 슬쩍 뒤져보니 하얀 티 두 장과 까만 바지 하나 수건 두 장 목도리하고 털 옷 담요가 있고 양말하고 속옷이 들었다. 한꺼번에 세탁기에 돌리려다가 멈춘다. 흰옷에 검은 물이 스며들겠고 물짜기를 하면 옷이 구겨지니 손빨래를 한다. 세면대에 흰 티를 담그고 욕조에는 나머지 옷을 담고 물비누로 씻는다.
흰옷은 손으로 주물럭거려도 하얀 거품빛이 돈다. 그 물에 속옷을 담그고 양말을 주무른다. 그래도 물이 깨끗해서 목도리를 치댄다. 물을 빼고 다시 물을 틀고 욕조에 담은 옷을 치댄다. 나들이 바지부터 팍팍 밀었다. 검은 물이 조금 나온다. 가벼운 털옷을 물에 넣어 주물럭하고 들어올리려는데 물을 먹어 무겁다. 손으로 짤 수 없어 욕조에 걸치고 두 손으로 꾹 누르며 물과 거품을 뺀다. 향긋한 냄새로 마무리하고 하나씩 꼭꼭 짠다. 바지랑대에 널고 바닥에 마른 수건을 깐다. 옷에서 물이 똑똑 뚝뚝 떨어진다. 털옷은 바가지에 담아 밖으로 들고 나가서 짠다. 그 무겁던 옷이 깃털처럼 가볍다.
한 생각이 들어 욕조에 낀 때도 쇠수세미로 팍팍 씻는다. 흩어진 다 쓴 치약 하고 헌 칫솔을 버리고 새 치약을 셋 까 놓는다. 입고 온 바지를 걷어도 물이 튀고 웃옷도 축축하다. 팔이 후들거린다. 방에서 몸을 말리자니 침대에 벗어 놓은 작은딸 잠옷이 눈에 띈다. 문 앞을 들어올 때 가슴 뛰던 일이 차올라온다.
그날도 오늘처럼 추운 이맘때였다. 작은딸하고 큰딸을 속옷 차림으로 내쫓았다. 나는 주말에 치를 학과시험으로 부엌 귀퉁이에 앉아서 배운 책을 보았다. 네 살인 셋째는 울고 열두 살 첫째와 아홉 살인 둘째는 학습지를 풀지 않고 둘이서 입씨름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지 꼬집어 떠오르지 않는다. 어렴풋하나 잘못은 첫째한테 있었다고 느낀다. 첫째를 나무라야 하는데 나는 둘째에게 어깃장을 놓았다. 말이 없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잘 참는다는 까닭으로 큰소리로 다그쳤다. 둘째는 허우룩한 눈빛을 보이며 엉두렁엉두렁한 얼굴로 주눅이 들었다. 문밖에서 꿇어앉고 두 팔을 들게 했다. 첫째는 제가 맞을 꾸지람을 동생이 맞으니 살짝 어리둥절했다. 나는 눈짓을 주며 같이 손들라고 말했다.
한동안 집안이 고요했다. 칭얼거리던 셋째도 누나들이 속옷 입은 채 밖에 나가 손을 드는 줄을 알고 저절로 뚝 그쳤다. 얼마나 지났을까. 옆집에서 내 큰소리를 듣고 문을 연다. 손을 든 두 딸에게 ‘왜 이러느냐’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나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 두 아이 볼이 찬바람에 빨갛다.
이날은 작은딸 잘못이 없었다. 마음이 여리고 두 아이 사이에서 버티는 길이 너그러움(양보)이라고 여기기나 한 듯 늘 물러나는 애를 물렁팥죽으로 여겼다. 나는 아이들이 잘하면 치켜세우고 잘못을 하면 닦달을 했다. 이날 이렇게한 까닭을 보탠다면 세 아이로 갈팡질팡할 때에는 물러터진 둘째를 다그쳤다. 셋에서 하나만 잡으면 며칠은 넘긴다. 첫째는 빤히 제 잘못인 줄 알아차리고 눈치껏 잘했다. 셋째는 내 장단을 맞추었다.
셋째가 태어나기 앞서는 둘째를 곱게 여겼다. 셋째가 태어나면서 받던 사랑을 빼앗기며 열 해를 억울하게 꾸중을 많이 맞으며 지내다가 열 해 만에 다시 이 집에 왔다. 이제는 그때 왜 꾸중들었는지 떠올리지 못하지만 추운데 밖에서 받은 호통은 가끔 떠올린다. 어린 날 가장 많이 타박했던 딸이다. 딸이라고 했으면 지울 뻔했던 딸이다. 저를 품고 다섯 달이 되었을 때 옷가게에서 쓰러져 119구급차에 실려 병원 간, 하마터면 잘못될 뻔한 딸이다. 배가 부른 여덟 달 때는 일을 나가려고 3층 계단을 내려오다 그대로 앞으로 엎어져 두 층을 배를 움켜잡고 털털거리며 미끄러졌다. 내 손하고 발등을 찢고 살아난 딸이다. 시골 할머니 손에 클 때 새벽에 숨을 쉬지 않아 할아버지 할머니를 애타게 했던 딸이다. 내가 빨았던 딸아이 옷처럼 축축하게 하며 살았다.
사진첩을 펼쳐 보다가 내가 안경 쓴 사진을 보았다. 둘째 낳고 몸을 돌볼 적에는 책을 보면 안 되는데, 아기돌봄이 끝나면 곧 있을 업무능력평가시험을 챙긴답시고 책을 보았다. 그때부터 안경을 열두 해하고 일곱 달을 꼈다. 두 동생도 안경을 꼈기에 언제 꼈을까 갑자기 궁금해서 첫째에게 물었다. 묻지 말라는 말은 내가 그토록 서운하게 한 둘째한테서 들어야 마땅할 듯한데, 가장 잘해 주었다고 여긴 첫째한테서 듣는다. 그동안 첫째라서 사랑을 다 차지했던 아이보다 이제는 둘째가 첫째하고 동무도 하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동생에게 치사랑 내리사랑을 두루 건넨다.
내가 제 옷을 빨래하며 얼룩을 팍팍 지우고 하얗게 빤 옷처럼, 털옷을 짜서 깃털처럼 가벼웁듯, 작은딸 가슴에 든 멍을 말끔히 지워 주고 싶다. 아침저녁으로 문을 여닫으며 억울하게 애먼 호통을 쓰며 엄마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때가 문득 떠오르겠지. 모질게 한 일들을 까맣게 잊고 엄마가 빨래하고 치우기까지 해놓았다고 보사시 웃는다. 갈비를 사주고 돌아오려고 했는데, 밥값을 낸다. 일을 하고 돈을 벌면서 어버이를 떠받든다. 누가 키웠는지 참 잘 자랐다. 지난날 물렁팥죽으로 보던 내가 참으로 부끄럽다.
2020.12.21. 월.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