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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아이] 6. 이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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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6. 이불

 

  말린 이불을 꺼내려고 뚜껑을 연다. 뺨에 뜨거운 기운이 부딪치며 한 김 빠진다. 따뜻한 이불을 꺼내 가슴에 꼭 안으니 새물내가 풍긴다. 이불이 뺨에 닿으니 부드럽고 뽀송뽀송하다. 큰방하고 작은방을 다니며 침대에 올린다. 얇은 이불을 깔고 덮을 이불을 가지런히 놓는다. 밖에 걸어 둘 틈도 없이 말라 일손 하나를 덜어 준다.

 

  바깥바람이 차갑고 이불 밑에 불을 넣어도 발이 자꾸 바싹 마른다. 곁님 발뒤꿈치 껍질이 하얗게 일어난단다. 이불에 부스러기가 떨어진 듯하니 이불을 털자고 했다. 걷으려는 이불을 놔두라 하고 그대로 말아서 돌린다. 새집에 들어오기 앞서는 이불 하나 말리려면 이곳저곳 닥치는 대로 보이는 대로 얹고 걸쳤다. 새집에 들어오니 두레벗(조합원)이라고 이백만 원 하는 세탁기 닮은 건조기 한 대를 거저로 받았다. 빨래가 끝나면 꺼내어 옆에 옮겨 단추를 누른다. 꾸물거리다 보면 어느새 다 마른다. 일 마치고 와서 저녁에 빨아도 잠잘 때는 덮는다. 스무 해 서른 해 앞서 아이들을 키울 때 샀더라면 얼마나 수월했을까.

 

  셋째 키울 적에는 이불을 자주 빨았다. 날마다 오줌을 싸서 옷하고 이불만 빨래통에 넣어도 꽉 찼다. 다섯 사람 벗어 놓은 옷은 따로 한 판 더 돌린다. 첫째와 둘째는 네 살 앞서 오줌을 가리던데, 이제 와 밝히지만 아들은 열 살이 되도록 오줌을 쌌다, 오줌도 많이 누고 어른 오줌처럼 노랬다. 날마다 빨았으니 방에 지린내가 나서 추운 날 문을 열어 두고 떨어야 했다. 아이가 파란빛을 좋아해서 모자나 겉옷 신발까지 온통 파란빛으로 입고 파르스름한 이불을 덮었다. 이불을 하도 빨아서 누더기 같았다. 모지라져도 버리지 못하게 하고, 오줌싸게 허드레 이불로 두었다.

 

  아홉 살 겨울에, 하루는 새벽에 아이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못 들은 척하고 말을 하지 않자 우리가 자는 문 앞에서 또 부른다.

 

  “나, 옷 젖었어. 꿈속에서 오줌 쌌는데 시원하게 다 누고 나니 이불이 젖었어.”

 

  꿈꾼 이야기를 하며 나를 깨우고 오줌 싼 일을 부드럽게 얼버무린다. 문을 열고 나왔다. 단잠을 깨워 짜증도 났는데, 뜻밖에 마음이 가라앉았다. 고요히 아이가 입은 범무늬 잠옷을 벗기고 속에 입은 길고 짧은 옷까지 벗기고 닦여 마른 옷으로 갈아 입혔다.

 

  “엄마 자리에 누워서 더 자거라”

 

  마땅히 방에 들어가 잠을 자야 하는데 아이는 한동안 멀뚱히 선다.

 

  “얼른 이불하고 침대 이불 걷어 모두 치워”

 

  덮는 이불하고 침대 이불을 걷어내니 침대가 주먹만큼 젖었다. 마른걸레를 포개 얹고 밟으며 폴짝폴짝 뛰었다. 조금이라도 스며든 오줌을 빨려 나오게 했다. 내가 어련히 알아서 치울까. 이제는 걷어 놓은 이불을 얼른 치우라고 조른다.

 

  “누나 안 보게 빨리 빨아 줘”

 

  이불하고 벗은 옷을 둘둘 말아 들고 세탁기에 넣으러 가는데도 아이는 무엇이 못 미더운지 이불 하나를 통에 넣어 돌리자 그제야 마음을 놓고 우리 방에 들어갔다.

 

  아침이 되었다. 다들 나가고 새벽에 돌려놓은 이불 하나 널려다가 천장에 걸린 빨래 횟대 하나가 뚝 떨어졌다. 횟대를 제자리에 끼우다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오늘 저 빨래 횟대에 얻어맞지나 않을까, 싶었다. 빤 이불에 찌꺼기가 뭉쳤기에 거름그물을 씻어내고 다시 헹구었다. 첫째 횟대에 널려고 이불을 겨우 넘기고 한쪽을 끌어내리려고 뒤쪽 이불을 잡아당기는데 셋째 횟대가 갑자기 콧등에 뚝 떨어졌다. 나는 코를 막고 펄쩍펄쩍 뛰었다. 얼마나 아픈지 오래도록 코가 찡했다. 코에 금이 간 듯했다.

 

  “코 아파 죽겠어. 말림판 고쳐 줘!”

 

  수건 하나 널 때도 자주 떨어지곤 했는데, 고쳐 놓지 않아 잔뜩 성나서 일하는 곁님한테 전화로 퍼붓고는 끊었다.

 

  코가 바로 멍이 들고 조금씩 부어올랐다. 쉬는 날이지만 국학진흥원에 나갈 일이 있었다. 얼굴에 제대로 찍어 바르지도 못하고 나갔다. 도무지 견디다 못해 병원 가서 사진 찍어 볼까 싶어 곁님한테 또 전화했다. 코는 부러져도 뾰족한 수가 없다고, 가지 않아도 된단다.

 

  이젠 시퍼렇게 멍든 티가 확 드러났다. 학교 다녀온 아들한테 멍든 코를 보였다. 아들은 보자마자 병원 가자고 먼저 나선다. 그런 아들을 보고 나니 오줌 탓하면서 못마땅했던 마음이 싹 달아났다. 장난삼아 아들한테 보여준 마음도 쪼끔 있었지만, 되레 쑥스러워하는 아들을 보니 마음이 다 풀어진다.

 

  새참으로 찰떡을 구워 먹였다. 이제 학원에 간다고 막 나간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다. 받으니 끊기고 오 분 뒤쯤에 다시 왔다.

 

  “가방 안 가지고 왔어”

 

  처음 건 공중전화였다. 우리 집 바로 밑에 있는데, 무얼 믿고 길 건너로 쪼르르 쫓아가서 내보고 가방 갖고 오라고 하는지. 와서 갖고 가라고 말하려다 종이 울릴 때가 되어 후딱 갖다 주었다. 엄마가 코를 다쳐도 조금도 가만두지 않지만 사랑스러워 귀엽게 봐주었다. 어느새 마치고 와서는 가방만 휙 던져 놓고 나간다. 동무하고 신나게 놀다 온 아들이 이제야 내 코가 보이는 듯했다.

 

  “엄마 코 안 아파?......멍 많이 들었네”

  “넌 미안하지 않니?”

  “내가 그런 거 아니야. 이불한테 잔소리 해. 난 잘못 없어”

  “그러면 이불이 너무 슬프지 않아?”

  “이불이 잘못했으니 맞아야지.”

  “이불이 어떻게 잘못을 해?”

  “이불이 마음대로 폴짝 뛰었잖아”

  “근데, 이불은 왜 거기 걸러 있을까?”

  “뭐, 잘못했으니깐 손 들었잖아”

 

  참, 이렇게 어이없이 말하는 아들한테 할 말을 잃는다. 하는 말끝마다 허허 웃게 한다. 자다 깨서 옷을 갈아입고 이불을 치우고 기다리는 번거롭던 일을 날마다 되풀이하는데, 그냥 벌떡 일어나 화장실에 곧장 가면 어디 안 될까. 왜 버티지 못하고 엄마를 못살게 구는지. 그러면서도 부끄러운 짓인 줄은 안다니 우리 아들이지만 참 웃긴다 싶다.

 

  어리둥절한 잠결인데 누나한테 오줌 싼 일을 들키고 싶지 않던 아들이 제법 길들어 갔다. 놀림받을 짓인 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하고 눈치를 살피는 마음이 안쓰럽다. 철이 드는 몸짓을 할 적마다 반가우면서도 허전했다. 그때 건조기가 있었더라면 기꺼이 오줌 싼 빨래를 했을지도, 애들 훌쩍 커버린 뒤에 좋은 물건을 쓴다. 다시 그런 날이 와서 아이하고 씨름해 보고 싶다. 껌딱지 같은 아들이 참 많은 몸짓으로 내게 말을 건넸다. 마치 내게 온 까닭을 몸짓으로 알리려는 듯 귀염을 부린다.

 

2020.12.24.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