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7. 잠
늦잠을 잤다. 알림소리를 잠결에 두 차례 들었는데 끄고 다시 잤다. 깨어나니 여덟 시쯤 되었다. 눈이 뻑뻑하여 거울을 보니 퉁퉁 부었다. 나이가 들수록 눈꺼풀이 밉게 바뀐다. 잠을 푹 자면 붓고 덜자면 깊은 주름이 드러나고 눈도 뒤통수로 당겨 움푹하다. 어떤 사람들은 아무리 늦게 자도 새벽 네 시나 다섯 시만 되면 깨는 몸이라는데, 나는 여섯 시간이나 일곱 시간은 자야만 하루를 버틴다. 자다 깨면 다시 잠들기까지 한두 시간 걸리고 곁님이 뿜는 큰 숨소리하고 입을 쩝쩝 다시는 소리에 쉽게 깬다. 잠귀가 밝다.
셋째가 태어나고 열 살까지 같이 잤다. 열 해를 두 남자 사이를 오가며 자느라 잠이 모자랐다. 아들은 아무리 꾸지람해도 못 고쳤다. 잠들었는가 싶어 슬그머니 나오면 바로 안다. 다시 곁에 가서 재운다. 이런 일이 잦아 큰방으로 건너와도 내 귀는 아들 방에 두고 아들은 내 발끝에 둔다, 둘 다 잠귀가 밝다. 갓난아기 때는 아기라서 그렇다지만 일곱 살이 넘어서도 같이 자고 열 살까지 이어졌다. 내 가슴팍에 헐렁하게 안기거나 맨손이 제 몸에 닿아야 포근하게 잤다.
나는 말할 때 뜸을 안 들고 바로 말하고, 아들은 에둘러 말한다. 아들이 등을 내밀고 가렵다고 긁어 달란다. 가렵다는데 안 긁어 줄 수 없다는 마음을 읽고 나를 붙잡는 꾀가 높다. 엎드리고 옷을 올리고 내 손을 잡고 속으로 집어넣고 몸을 살래살래 흔든다. 빨리 등을 만져 달라는 말로 몸짓을 보낸다. 책을 읽을 적에도 내 손을 등에 올린다. 손바닥을 펼쳐 동그라미로 살살 쓰다듬는다. 잠은 오고, 엄마는 밖에서 무엇을 하니 답답한 아들이 베개를 안고 와서 슬그머니 곁에 엎드린다. 몸을 살랑살랑 흔들면 토실토실한 엉덩이와 오리 궁둥이도 살래살래 흔들린다.
밤마다 곁님하고 아들 곁을 오가느라 늘 몸이 뻐근했다. 자다 깨서 내가 안 보이면 놀란 듯이 ‘엄마’하고 큰소리로 우렁차게 부른다. 소리가 얼마나 씩씩한지 잠든 아이가 맞나 싶다. 내가 곁에 갈 때까지 목이 쉬도록 부른다. 나는 일어나 아들 방으로 건너와서 나도 모르게 고단히 잠든다. 깊이 잠든 어둑새벽에 또 깨운다. 그리고는 귓속말로 조곤조곤 속삭인다.
“엄마, 옷 좀 줘”
“왜?”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마”
“쉬 했구나”
“아니야, 땀 흘렀어.”
엄마 목소리가 문밖으로 새어 나갈까 싶어 귀를 잡아당긴다. 젖내를 풍기며 속삭이면 귀가 간질간질해서 움츠린다. 열 살 나이가 들도록 오줌을 싸고 부끄러운 짓인 줄 알면서도 땀을 흘렸다고 우긴다. 뭐라고 하면 마음이 삐뚤어지거나 잘못될까 싶어 오줌을 싸도 크게 나무라지는 않는다. 아들은 아기처럼 오줌싸면 엄마 마음을 끌고 같이 잘 수 있다고 여길까. 오냐오냐 다 받아주어서 오히려 나쁜 버릇만 생겨 오랫동안 오줌싸개로 부추긴 듯하다.
그래도 같이 있으면 아들이 재미로 갚는다. 궁금해하고 엉뚱한 구석이 있는 아들하고 같이 있으면 오늘은 어떤 일이 일어날까, 늘 아슬아슬하니 다음은 어떤 일이 일어날까 외려 궁금해서 기다린다.
“엄마, 나 조금만 기절할게”
낮에 공부하다 쉴 적에도 한마디씩 웃긴다. 잠이 온다는 말을 이렇게 말하고 그대로 쪽잠을 잔다. 깨어나면 또 어떤 재미난 일을 찾아낸다.
“엄마, 이상해”
-중국 중칭에 기관차 그림
-그리스 파르테논신전
-좀 많이 바뀌었어, 가끔.
-특히 북아메리카 쪽
-시카코 시어스타워
-워싱턴 국회의사당
-뉴욕 자유여신상
-디틀로이트 시엔타워
“이건 몇 달 앞서 나온 것이야”
책상맡에 걸린 세계그림을 하나하나 손으로 짚고 중얼중얼 쉴 사이 없이 이렇게 말한다.
“왜 자꾸 새로운 것이 생겨? 새로운 나라가 생기니 이상해, 귀신이 있나봐”
“처음 네 눈에 띄지 않다가 잘 보니깐 눈에 들어왔지.”
“아니야, 분명 셋으로 알았는데 넷으로 생겼어. 왜 그럴까?”
“아는 만큼 자꾸 보이지”
달라진 그림 이야기를 하고 어느새 아이스크림을 다 먹는다. 나무막대기를 휴지에 싸서 창던지기 흉내로 어림하고 쏙 날리면서 또 한마디 던진다.
“엄마 주검이야”
“왜 주검이니?”
“아이스크림이 죽었으니깐”
깜찍하게 말하고 귀엽던 아들이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니 어릴 적하고 거꾸로 바뀌었다. 앞서 살던 집이 서쪽으로 창이 나서 겨울이면 춥고 여름이면 후끈후끈한 찜통 같다. 큰길에 차들은 집을 흔들 만큼 쌩쌩 달리며 시끄럽다. 창문도 열지 못하고 열어도 뜨거운 기운이 들어온다. 선풍기를 틀어도 뜨겁게 달아버린 이층 벽과 바닥은 아궁이에 불을 지핀 듯하다. 에어컨 없이는 단 하루도 숨쉬기조차 어려운 집에서 한 시간도 버티기 힘들다. 어지간한 사람 아니고서는 잠들지 못한다.
아들 방에 갈까 말까. 수능 다툼에 해를 끼칠까 참다가 도무지 숨을 쉴 수가 없어 밤마다 이불하고 베개를 들고 아들 방에 슬그머니 들어간다. 엄마가 늦도록 일하고, 더위 탓에 오는 일을 봐주었다. 에어컨이 없고 와이파이가 잘 잡히지 않는 우리 방에서는 강더위에 무엇을 하기란 어림도 없다. 시원한 아들 방에 들어가 시원한 맛을 보면 여름이 끝날 때까지 빠져나오지 못한다.
더운 집에서 저 혼자만 시원한 방을 쓰는 일이 찔리기라도 하듯이 기꺼이 들어오게 했다. 그렇지만, 이른 아침 다섯 시에는 남긴 자국을 없애기로 했다. 이불을 고이 포개놓고 바로 나와야만 한다. 아들 방에서 자며 나름대로 이렇게 한다. 그래야 수능 날까지 맞춤해서 일어나겠지. 이렇게 되풀이하고서는 책을 본다. 이때는 두 남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느라 잠을 못 자기보다는, 이른아침에 아들 방에서 쫓겨나오느라 잠이 모자랐다. 이제는 훌쩍 커버려 내가 아들한테 헤살꾼이다. 어린 날 품고 잘 때가 좋았다 싶다. 목소리가 크면 따랐다.
두 남자 사이를 오가며 오래도록 길들인 내 잠이 아직도 살아 있어 곁님한테 물려준다. 말뚝을 박아 놓은 듯 앉은 내 방 하고 아들 빈방 사이를 이제는 곁님이 어린 날 짓궂던 아들처럼 이 방 저 방 왔다갔다 아침저녁으로 이리 기웃 저리 기웃을 한다. 아직도 조그만 소리에도 귀를 연다. 문을 여는 소리, 발소리, 짐을 나르는 소리, 물꼭지 트는 소리, 오줌 누고 물 내려가는 소리, 지니 소리. 열 해를 쫑긋 세운 귀는 지칠 줄 모르고 깨어난다.
2020.12.28.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