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8. 숨
스물넷 봄에 함께한 뒤 시골에서 살았다. 아침에 일어나면 우리옷을 차려입고 아버님께 절을 드린다. 어머님이 차리신 밥을 먹고 일을 다녔다. 세 어른하고 지내면서 집안에서 하는 일을 차근차근 배웠다. 한 달 남짓 함께살다가 따로 살림을 차렸다. 곁님이 어버이 집을 끔찍이 챙기느라 쉬는 날이면 찾아가 하룻밤 묵는다. 함께살고 여섯 달이 지날 무렵 큰할머니 제삿날에 우리가 쓰던 방에서 첫째 아이를 품었다.
아기가 조금만 늦게 오길 바랐다. 일터에서는 짝을 맺으면 어떤 구실을 달아 내쫓던 때인데, 아기가 있으면 더 눈총을 받는다. 이 무렵 높은 자리 어느 분이 주식하고 증지로 장난질을 하고 밑사람들은 그분을 몰아내려고 자리가 어수선했다. 우리 살림도 넉넉하지 않았다. 곁방 하나 딸린 집이고 어설픈 부엌에서 사글세로 살고, 곁님이 예전에 몰고 다니던 자동차 값을 나눠서 갚느라 둘이 벌어도 살림이 빠듯해 아기를 새로 맞아들일 겨를이 없었다.
옛사람이 보내주신 빛으로 여기면서도 나쁜 마음을 먹었다. 딸이면 지우고 아들이면 낳기로 했다. 앞서 아이를 없앤 일이 있어 또 지우면 다시는 아이를 못 밸 듯해 두렵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의사한테 보였다. 아기집을 보고 나니 마음이 바뀌었다.
다섯 달이 되자 배가 불러오고 아기가 꿈틀거렸다. 일터에서 똑같은 옷차림을 하다가 혼자 긴 치마로 바꾸어 입자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이쪽 일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내가 첫 맞벌이를 하고 첫 아이를 뱄다. 티 하나 흉 하나 보이지 않으려고 아가씨 적보다 더 애쓰며 일하고 나를 돌봤다. 걸상에 오랫동안 앉고 일이 끝나면 고삐를 늦추고 몸을 누이며 쉬었다. 일곱 달이 되자 부른 배가 무거워 두 손을 깍지 끼고 배를 안고 다녔다. 뱃살이 빵빵하게 늘어났다. 살갗은 거무데데하고 시퍼렇고 가려웠다. 열 해 만에 찾아온 더위로 숨쉬기도 벅찼다.
아기 낳을 날이 월요일로 다가왔다. 쉬기로 하고 온 토요일 밤부터 몸이 찌릿했다. 일요일 아침 엎드리고 물걸레질을 하는데, 밑으로 물이 쏟아졌다. 두려워서 엄마한테 전화하니 이슬이 터졌단다. 오 분마다 아팠다. 응급실에 물어보니 삼 분마다 아프면 병원에 오란다. 너무 아파서 집에서 기어다녔다. 입원하려고 몸을 씻다가도 몸짓을 멈추고 벽을 잡고 소리를 질렀다. 몇 분마다 아픈지 재느라 더 아팠다. 이제나저제나 손짐 하나만 들고 병원 갈 마음을 추스르는데 엄마가 우리 집에 왔다. 엄마가 오자 기쁘고 마음이 놓였다. 나는 밤새도록 앓고 엄마는 나를 돌보느라 뜬눈으로 지새웠다. 아침이 되자 병원에 갔다.
자궁이 삼 센티미터 열렸다. 아기가 빨리 나오는 약을 두 병을 맞아도 그대로 집에서는 밑이 아프더니 병원에 오니 허리를 틀었다. 허리가 얄궂게 아프니 자궁이 열리는 느낌을 몰랐다. 아이하고 나하고 힘을 같이 쓸 때를 놓쳤다. 엇박자로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똥오줌을 쌌다. 열세 시간째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소리쳐서 힘이 빠졌다. 몸을 추스르고 기운을 냈다. 다시 힘을 주었다. 그런데 발끝이 저리다. 종아리를 타고 올라올 때 어머니는 침대 위로 올라왔다. 혼자 중얼거리고 내 배를 타넘었다. 내 발치에 엎드려 안쪽 다리를 주무르고 엄마는 바깥쪽 다리를 주무르고 곁님은 두 팔을 주물렀다. 검은 기운이 무릎에서 배로 차올랐다. 어머니는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 싶었는지, 시골에 계신 할머니한테 물 한 그릇 떠서 장독대 앞에 놓고 삼신한테 빌게 하고, 곁님한테는 집에 가서 갓 찧어서 갖다 놓은 쌀자루 끈을 풀게 한다.
검은 기운이 가슴께를 지나서 목에 올라왔다. 숨을 쉴 수 없다고 말하고 나는 버틸 기운이 다 빠졌다. 산소통을 달고 낳을는지, 배를 가를 것인지. 바쁘게 말이 오갔다. 실눈을 떠 보니 내 몸이 들것에 실려 나가고 차가운 침대로 또 옮겼다. 그때부터는 눈을 꼭 감았다. 아기하고 나하고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무서워서 뜰 수가 없다. 수술실은 추웠다. 몸을 움츠릴 때 내 몸에 차가운 소독약을 바른다. 둥글게 생긴 고무가 입하고 코를 덮쳤다. 숫자를 헤아려 보라는 말을 듣고 하나둘, 하고는 잠이 들었다.
누가 내 볼을 때리며 깨웠다. 내 몸이 수술실을 나오고 병실 침대로 옮겨진다고 어렴풋이 알았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엄마가 나를 깨우고 곁에서 시어머니가 애썼다는 말소리가 들렸다. 말은 들리는데 눈이 뜨이지 않았다. 자꾸만 졸렸다. 자다 깨다 하는 사이 머리가 조금씩 맑아진다. 나는 곁님한테 우리 아기 멀쩡한지 먼저 물었다. 손가락 발가락 다 있는지도 물었다.
배를 가르고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나흘째 드디어 뿌웅 하고 나왔다. 얼마나 반갑던지. 방귀가 소중한 줄 그때 처음 알았다. 며칠 만에 미음이라도 먹으니 꿀맛이었다. 곁에서 나를 돌보던 엄마는 내가 밥을 먹는 날까지 내 앞에서 먹지 않았다. 배고플 딸내미가 안쓰러워 밖에 나가서 먹었다. 수술할 때 오줌보를 잘못 건드렸는지, 오줌이 나오지 않아 주머니를 이틀 더 매달고 다녔다. 오줌줄을 달고 아기를 보러 가는 마음이 들떴다.
내가 낳은 아기를 내가 꼴찌로 본다. 어떻게 생겼을까. 몹시 궁금했다. 아기를 창 너머로 처음 마주한다. 포대기에 꽁꽁 쌓아 얼굴만 보였다. 손하고 발도 보여 달라고 손짓했다. 다른 아기 보다 우리 아기가 컸다. 머리가 노랗고 눈을 감고 하품을 했다. 돌봄이가 아기를 흔들어도 눈을 뜨지 않는다. 아기는 우리하고 안 닮고 시어머니를 빼닮았다. 이레가 되는 날에 병실에서 젖을 짜서 아기칸으로 보냈다. 아기한테 첫젖을 먹이지 못하나 싶었는데 한끼 먹였다. 아버님은 아기가 태어나고 이튿날에 이름을 지어서 보냈다. 아기를 하늘빛 포대기에 싸서 열하루 만에 집에 데려왔다.
우리 엄마는 밭매다가도 집에서 잘만 낳았다. 나는 눈을 찍 감고 한 판만 힘주면 되는 일인데, 그렇게 안 되는지, 죽을힘을 다해도 나오지 않고 목숨을 맡기니 아기가 마음을 놓고 이 땅에 왔다. 숨을 쉬면 안 되는 물속하고 달리 아기하고 나는 숨을 때맞추어 쉬어야만 했다. 숨을 쉬려고 나와야 하는 아기와 숨을 쉴 수 없는 나, 몇 분만 늦었더라면 오늘 이렇게 숨을 쉴 수 있었을까 싶다.
이때처럼 목숨 걸어 본 일도 없는 듯하다. 사람이 사람을 낳는 일이 목숨을 내놓지 않고는 아기를 얻을 수 없는 노릇이다. 내가 목숨 내놓고 낳은 큰아이한테 어떻게 했는지. 부끄러운 일이 많다. 새해가 밝아오면 첫째가 서른 살이 된다. 흙이 풀나무를 부드럽게 품듯이 내 숨을 마시고 찾아온 때를 아로새기며 부드러운 엄마가 되어야지 싶다.
2021.01.01.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