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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우리말 4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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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잇고 잇는 마음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한겨레 우리말’은 우리가 늘 쓰면서 막상 제대로 헤아리지 않거나 못하는 말밑을 찬찬히 읽어내면서, 한결 즐거이 말빛을 가꾸도록 북돋우려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우리 말밑을 우리 삶터에서 찾아내어 함께 빛내려는 이야기입니다.

 

한겨레 우리말
― 이야기, 잇고 잇는 마음


  동무하고 말이 안 맞아서 부아가 난 적 있지 않나요? 동생이나 언니하고 말다툼을 한 적이 있지 않나요? 어머니나 아버지하고도, 배움터에서 여러 길잡이하고도 자꾸자꾸 말이 어긋나서 뾰로통한 적이 으레 있으리라 생각해요.


  우리가 하는 말하고 저쪽에서 하는 말은 왜 안 맞거나 어긋날까요? 싫거나 짜증난다고 여기는 그러한 자리를 가만히 돌아보면 좋겠어요. 우리가 말을 못 알아듣지는 않았을까요? 저쪽에서 말을 못 알아차리지 않았나요? 어쩌면 둘 다 서로서로 무슨 말을 하는지 종잡지 못했다고 볼 수 있어요.


  요새 어른들은 ‘소통’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소통’은 한자말이에요. 여기에 다른 한자말 ‘의사’를 붙여 ‘의사소통’처럼 쓰기도 해요. 이런 말씨를 어린이가 얼마나 알아듣기에 좋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어른이란 몸입니다만, 저는 이런 말을 안 씁니다. 저는 ‘이야기’ 한 마디만 씁니다.


  ‘이야기’ 한 마다이면 넉넉하다고 여겨요. 굳이 ‘소통·의사소통’처럼 어린이한테 낯설 뿐 아니라, 말밑을 캐기도 어려운 말씨는 멀리해야지 싶습니다. 먼저 한자말부터 짚고 넘어간다면, ‘의사 = 뜻/생각’이요, ‘소통 = 안 막힘/막히지 않음’입니다.

 

 이야기. 이바구. 얘기.
 옛날이야기. 옛날얘기.

 

  옛날이야기 좋아하나요? 옛날 옛적부터 흘러온 이야기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아스라이 먼 옛날, 그러니까 즈믄 해도 훌쩍 넘는 머나먼 옛날에 있던 이야기라면 재미있어도, 어른들이 어릴 적 겪은 일을 놓고서 가르치려고 드는 이야기라면 좀 따분하거나 고리타분하다고 여기리라 봅니다.

 

 옛날이야기 : 옛날부터 흐르거나 이어온 삶·살림·사랑·일·놀이·하루·모습·꿈 들을 오늘에 맞게 새롭게 그려내어 들려주는 말.

 

  옛날이야기(옛이야기)는 어른이 어린이한테 들려주는 말입니다. “들려주는 말”인데, 옛날부터 사람이나 뭇짐승이나 새나 풀벌레나 풀꽃나무가 어떻게 살았고 지냈으며 있었는가를 들려주는 말이에요. 옛날에 있던 일을 바탕으로 오늘을 새롭게 읽고 생각하자는 뜻으로 들려주는 말입니다.


  이 옛날이야기는 즐겁게 들려준다면 재미나요. 이 옛날이야기를 앞세워 억지로 가르치려 들면 지겹거나 따분하거나 고리타분하다고 느끼기 쉬워요. 같은 말이지만, 말을 하는 사람이 어떤 마음인가에 따라 사뭇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동무나 이웃하고 말이 안 맞는다면, 둘 다이거나 어느 한쪽에서 ‘혼자 할 말’을 앞세운 탓이라고 여길 만해요. 마음을 담은 말이 아닌, 생각을 몰아붙이는 말을 하면, 말이 안 흐르지요. 말이 막혀요.


  말이 막히니 “말이 안 되네” 하고 느끼겠지요. 마음을 말로 그리지 않으니 “말이 안 맞네” 하고 느낄 테고요.

 

 

 마음. 말.

 

  ‘말’이란, 마음에 담는 생각이고, 마음에 담으려고 심을 씨앗이 될 생각입니다. 또는, 마음에 깃든 생각을 꺼내어서 귀로 알아듣도록 그린 소리가 말이에요. ‘마음·말’은 밑뿌리가 같아요. 그래서 마음을 제대로 담아서 소리를 그려내는 말이 된다면, 마음이 안 맞거나 막히는 일이 없어요. 마음 없이 내는 소리는 그저 소리요, 마음 있이 내는 소리여야 비로소 말이랍니다.

 

 이야기 : 나누는 말.

 

  ‘이야기’는 어느 한쪽에서만 나오는 말이 아니라, 이쪽에서도 하는 말이랑 저쪽에서도 하는 말이 있어야 합니다. 두 쪽에서, 또는 여러 쪽에서 나란히 흘러나오는 말이 될 적에 ‘이야기’라고 해요.

 

 나누다 = 잇다.
 나누는 말 = 잇는 말.
 잇는 말 = 이야기.

 

  잇는 말인 이야기입니다. 이어가는 말, 이어온 말이 이야기예요. 옛날부터 이어온 말이라 옛이야기·옛날이야기입니다.


  어떤가요? 문득 실마리를 잡을 만할까요? 동무나 이웃이나 어버이하고 말이 안 맞는다면, ‘혼잣말’만 하고 ‘이야기’를 안 한 탓이에요. 우리가 저쪽 말을 안 들었다든지, 저쪽에서 이쪽 말을 안 들으면 이야기가 안 되거든요. ‘나눔·이음’이 바탕이어야 이야기입니다.


  즐겁게 이으면 좋겠어요. 서글서글 나누면 좋겠어요. 도란도란 하는 이야기로, 오순도순 지피는 이야기로, 서로 마음을 열어 소리를 가다듬는 말꽃을 피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