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9.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날인데 크리스마스 노래를 듣기 어렵다. 아이들이 훌쩍 커서 나가고, 믿는 종교도 없어, 아무런 생각 없이 사는 듯하다. 그저 쉴 수 있는 날로만 여기지 싶다. 기분을 내려고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노래를 올렸는데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대꾸가 없고 딴말만 한다.
내가 어릴 때는 크리스마스가 가까우면 교회에 갔다. 며칠 도장 찍는 재미로 가고 선물 받는 재미로 갔다. 그런데 엄마는 교회 나가는 사람을 예수쟁이라 부르고 무엇이 못마땅한지 교회를 가지 못하게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여름 수련회도 가지 못하게 해서 겨우 갔다. 그날부터 교회는 가고 싶어도 참다가, 고2 때 동무 따라 몇 번 가고, 마흔이 되어서는 종교를 하나 갖고 싶었다. 목사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좋았다. 나라밖으로 나들이하는 길로 여겼다. 스스로 아는 언니한테 교회에 좀 데리고 가라고 졸라서 몇 번 나갔다. 다섯 번쯤 나갔을 때 곁님이 눈치를 채고, 교회 나가려면 통장 다 꺼내놓고 아주 가란다. 언니하고 다짐한 세 번을 더 채우고 다시는 교회에 가지 않았다.
우리 집안은 종교가 없지만, 시집에서는 교회 다니는 일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긴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깊이 빠지지 않는다면 둘 다 해도 좋다 싶다. 첫째와 둘째를 교회에 보내 사람들과 더불어 어울리는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몇 번 나가고는 등을 떠밀어도 안 가고, 셋째는 두 번 보내고 나니 곁님이 턱없다 소리로 아들은 발도 못 내밀게 말렸다.
우리 집 다섯 사람이 만나 산 날을 더해 보니 백삼십육 년이다. 21· 26 · 29 · 30 · 30년 동안 크리스마스 날 무엇을 했을까, 떠오르는지 물어보니 아무도 생각나는 일이 없단다.
아이들이 일곱 살이 될 때까지는 산타가 온다고 믿는다. 착한 척 흉내내고 잘못을 낱낱이 털어놓는다. 밤새 머리맡에 선물을 두고 가기를 바란다. 주머니가 쪼들려도 어린이집하고 유치원에서 크리스마스 잔치를 벌인다. 아이에게 살짝 마음을 떠보고 갖고 싶다는 것을 사서 선물을 맡긴다. 동무들 앞에서 큼직한 선물을 받아 좋고 산타한테 받아 아주 좋아한다. 아이들이 좀 커서는 맛있는 밥을 먹거나 어디 놀러 가는 날로 바뀐다.
2009년도에 단양 장회나루에 갔다. 두 딸은 제법 컸다고 따라나서지 않고 셋째하고 나섰다. 크리스마스 하면 눈이 빠지면 밋밋하다. 소백산을 지날 무렵 눈 덮인 산을 바라보며 김홍도가 그린 산을 본다. 얼마나 대단하길래 ‘열 걸음 걷다 아홉 번을 되돌아볼 만큼 절경이다’ 치켜세웠을까, 배를 타고 구리빛 바위와 산을 보며 입이 딱 벌어졌다. 앞서 가을에 군자마을에서 퇴계하고 두향이 사랑을 다룬 마당놀이를 보고 더 이끌렸던 곳이었기에 두향이 무덤도 눈길을 끌었다.
나들배를 타고 보았던 거북바위에 올랐다. 잘 닦아 놓은 길이 끝나고 둘로 갈라지는 곳에서 구담봉으로 갔다. 큰 바위가 많아 낭떠러지로 떨어질 듯한 길을 아슬아슬하게 올랐다. 꼭대기에 납작한 바위에서 라면을 끓여 먹으며 몸을 녹였다.
“오늘 집에 못 가겠다. 이곳에 왔으니 한 이틀은 자고 가야지”
곁님은 아들을 애태우는 말을 하고 나는 아들하고 끝말잇기를 하는 동안 흙길을 다 내려왔다. 다시 잘 닦인 길이 이어지자 곁님이 닥나무 푯말을 보더니 구수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제사에서 꼭 빠질 수 없는 과일이 무엇인지 아나?”
“대추, 밤, 감”
대추는 꽃이 절대 떨어지지 않아.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은 오직 대추뿐이란다. 대추는 틀림없이 씨앗이 품은 힘을 말한다. 밤을 심어서 나무로 자란 밤나무는 죽기도 하지만 땅속에 묻힌 밤톨 씨앗은 죽지 않는단다. 먼저 흙이 된 사람하고 살아 있는 사람하고 서로 맞닿아 느낀단다. 감은 씨앗에서 반드시 감나무로 자라지 않는다. 씨앗이 자라면 고욤나무가 되고 잘라서 붙여야만 감나무가 된단다. 살다 보면 몸이 꺾일 만큼 아프기에, 꾸준히 배워야 한다는 말을 곁들여 세 가지를 아들한테 들려주었다.
아들이 몹시도 아끼던 놀잇감(오락기계)을 뺏어 풀이 죽었기에 살살 꾀어 데리고 나온 날이었다. 그 앞서 해에는 놀잇감을 크리스마스날에 선물했고, 이때는 억지로 빼앗은 날이다. 동무들보다 없는 게 너무 많다고 간밤에 울고불고했다.
“엄마 말 못 이긴 척하고 따라오니 바람 쐬고 좋제?”
“글쎄다.”
싱긋 웃으며 아들이 대꾸한다. 우리는 멧길에서 손을 꼭 잡았다. 왼쪽 손은 아빠하고 잡고 오른 손은 엄마하고 잡고 끝말잇기 하면서 즐겁게 내려왔다.
“엄마는 이젠 나보다 산을 더 잘 타네!”
“참말로 즐겁다. 아들 우리 뽀뽀하자.”
나는 아들 낳고 몸이 해쓱했다. 세 번 배를 가르고, 배를 가른 김에 맹장을 떼어내고, 자궁도 묶는 수술을 한꺼번에 한 탓에 세 해 동안 한 달에 스무날이나 핏물이 샜다. 아들은 네 살부터 아빠하고 산을 올랐다. 늘 엄마가 없는 아이처럼 둘이서 다녔다. 나는 이때부터 산을 조금씩 탔다.
2012년도 크리스마스 날에는 나쁜 꿈을 꾼 듯했다. 흰 눈이 펑펑 내렸다. 사업 새내기가 되려고 여섯 달을 대구를 오가며 자리를 알아보았다. 터를 계약하러 갔다가 못하고 내려오던 길에 고향 선배가 말을 잘해서 되돌아가서 매매계약을 했다. 눈길을 즐겁게 올라오는데 고향 선배가 열 번쯤 전화를 했다. 처음에는 말을 끝내지도 않고 끊더니 마지막 가서 속마음을 드러냈다. 조금 도와준 값으로 오백만 원을 달란다. 안 주면 가게를 열지 못하게 빼앗겠단다. 잔뜩 무섭기도 했지만, 미운 놈 떡 하나 더 주는 셈 치고 현금지급기에서 몇 차례 돈을 빼서 다발을 확 던져주고 나왔다. 나는 얼마나 아깝고 속이 쓰리던지. 여덟 해가 지났는데도 크리스마스 날만 되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살면서 가장 비싼 배움삯을 치렀다.
2018년 크리스마스는 큰 선물을 받았다. 무엇이든 첫째 한 일은 오래도록 머리에 남는다. 아들이 대학에 붙고 그 학교에 간다. 미리 길을 알려고 하는 속마음이지만, 엄마한테 제가 다닐 학교를 구경시켜 주고 싶었단다. 나도 길을 모르고 아들도 몰라 마음을 바짝 차렸다. 나는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차표를 보여주며 타는 곳을 묻고 아들은 우리가 탈 차가 서는 자리에서 꼼짝도 안 한다. 저도 떨었는지 어릴 때처럼 내 곁을 떨어지지 않는 낯빛과 손짓을 건넨다.
아들이 첫 기차 여행을 한 사람이 나, 엄마여서 기뻤다. 아들에게 첫사랑 같은 느낌이랄까. 버스 한 정류장 반 길을 걸어 학교에 다다랐다. 아들은 앞문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 먹고 자고 할 집도 둘러보면서 사진을 찍는데, 팔다리를 가만히 두지 않는다. 하늘 높이 뛰고 두 팔을 뻗었다가 한쪽 다리를 들었다가 하늘을 보며 두 팔을 뻗는다. 눈은 크게 뜨고 밝고 환하게 방긋방긋한다. 아들이 어릴 때처럼 신났다. 학교를 걷고 나니 만 걸음이다.
여느 때는 사진을 안 찍는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자 얼굴 사진은 찍지 못하게 굴었다. 수능이라는 짐을 내려놓고부터 아이가 달라졌다. 그동안 어떻게 억눌렀나 싶다. 사진을 찍으면서 어깨동무도 하고 와락 끌어안아도 주고 둘이 얼굴이 부딪칠 만큼 가깝게 맞대고 사진을 찍는다.
아들이 커서 처음으로 안아 준 날이다. 아들이 커서 처음으로 기차 여행을 한 날이자, 아들이 커서 처음으로 함께 간 여행이다. 곁님은 잘 닿았나, 우린 밥 먹는데 너도 밥 먹어라, 맛있는 것도 사 먹어라, 몇 번이나 전화하는 아들바라기이다. 우리한테는 학교에 들어간 일이 기쁨이다. 아들하고 함께 보낸 대학교 나들이가 가장 큰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2021.01.07.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