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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아이] 10. 운전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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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10. 운전기사

 

  시동 단추를 켜자 빨간 그림(!)이 뜬다. 집으로 오는 길모퉁이에 있는 바퀴집 마당에 차를 세운다. 아저씨가 바퀴를 빼서 바람을 넣고 물속에 담그고 꾹 누른다. 뽀글뽀글한 물방울이 안 일어나면 바람이 안 센다고 보여준다. 다른 바퀴도 봐야 하는데 바람 넣는 긴 줄 기계가 얼었다. 슬쩍 본 앞바퀴가 무척 닳았다. 곁님은 바퀴를 바꾼 지 몇 해 안 된다고 잘못 몬 버릇이라고 거든다.

 

  차를 몬 지가 스물일곱 해가 넘는다. 갓 면허를 받고 곁님 차를 몰았다. 일터가 집에서 가까운 곁님은 자전거를 타고 나는 곁님 차를 몰거나 가끔 버스를 탄다. 1999해 12월에 빨갛고 작은 차를 샀다. 아들을 밸 적에 몰던 차를 열일곱 해를 몰았다. 기어가 옴짝달싹하지 않아 차를 버렸다. 일터에서 쓰는 차도 있고 곁님 차도 있어 나는 차를 사지 않으려고 했다. 곁님은 안 그래도 된다고 하지만 일터를 잘 꾸려가라고 어머님이 보태주셨는데, 차를 사면 시골 어른이 못마땅히 여길 듯했다. 곁님이 시골에 갈 적에 이러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어미는 차를 몰 만하다. 그 차 오래 탔으니 바꿀 때도 됐다. 너도 조금 보태고 나도 조금 보태 줄테니 어미 차 사줘라.”

 

  어머님 말씀을 듣고 기쁘게 차를 장만하고 석 달로 나눴다. 첫 달은 곁님이 내고 1월에는 어머님이 내고 2월에는 내가 냈다. 어느덧 잿빛 차로 바꾼 지가 여섯 해가 된다.

 

  갓 면허증을 받고 곁님 차를 몰 적부터 씩씩했다. 쉬는 날마다 시골에 있는 첫째 아이를 데리고 나올 적에 무릎에 앉히고 몰았다. 이 아이가 자라고 빨간 차를 산 날부터 아이들 운전기사가 되었다. 어느 해 모내기를 할 때 시동생을 태웠다. 맞선을 보는 날인데, 신호를 그냥 지나가서 경찰한테 잡혔다. 첫 범칙금을 끊었다. 그리고 빨간 차로 딱 한 판 대리운전을 했다.

 

  “자나?”

  “아니”

  “그라면 미안하지만, 택시 타고 마트 앞에 좀 나온 나”

  “왜 그러는데?”

  “술을 좀 마셨는데 운전 못 하겠어.”

  “좀 귀찮은데. 그럼 자기가 택시 타고 온 나”

  “차는 어떻게 갖고 가지?”

  “다음날 일터에 내 차로 가고 틈내어 날 그 자리에 데려다주면 되잖아”

  “그냥 택시 타고 네가 좀 나온 나”

  “흠, 알았어”

  “언제 오는데?”

  “옷 갈아입어야 하니깐 오 분 뒤에 나설게”

 

  길이 얼어 굴다리를 지날 때 곁님이 소리쳤다. 얼음 길에서 멈추개를 밟는 줄 알고 술기운에도 마음을 놓지 않고 마당에 잘 왔다. 이날 앞서 곁님 말에 서운해서 토라졌다.

 

  “나를 싫어하는구나 싶어서, 난 아직도 새살림 같은데…….”

  “마음이 서운한데 함께 자면 거친 숨소리하고 이불 들썩이면 잠이 깨서, 그런 날은 혼자 조용한 마루에서 자야 홀가분해”

  “그제 새벽 3시에 잠이 깨서 아침까지 잠이 안 와서 네 곁에 가고 싶었는데 그러면 네가 또 잠 못 잘까 봐 그냥 있었어. 우리 즐겁게 오래오래 같이 살자. 응”

  “그래요. 그러니까 자꾸 뭐라고 하지 말아요. 가슴이 날카로운 칼에 베인 듯 아파요.”

  “내 사랑이 모자라서 그런가 보다”

  “팔짱 끼어 봐”

  “살이 많이 쪘지. 어깨동무하니 좋네.”

 

  같이 살면서 열여덟 해 만에 대리운전을 한 일 빼면 세 아이 태우고 다니는 운전기사 삶을 보낸 듯하다.

 

  첫째가 중학생 때부터 차를 거칠게 몰았다. 아침에 학교에 태워 주고 마칠 때에 맞추어 태우러 가고 차에서 새참 먹여 서당에 데려다주고 집에 왔다가 다시 마칠 때 맞추어 영수학원에 태워 주고 집에 왔다가 마칠 때 태우러 간다. 토요일마다는  대학교 과학영재반에 뽑혔다고 세 해를 태웠다. 생물을 배우고 있을 때 나는 하릴없이 차에 있거나 뜰을 거닐며 시간을 때우다 마치면 태워 온다. 더 커서는 밤마다 학교로 태우러 다닌다. 아이가 기다릴까 싶어 먼저 가서 기다린다. 빨리 가고 바삐 멈추고 울컥하며 밟는 일이 몸에 뱄다.

 

  셋째 아이는 내 차를 더 많이 탔다. 길 하나 건너면 학교인데도 태워 준다. 또래 엄마들이 동무들을 태워 간다고 엄마도 태워 달라고 졸랐다. 중학교를 낯선 도시로 들어갔다. 우리 일도 바뀌었다. 버스를 탄 다음 날부터는 자꾸 놓친다. 집에서 버스 타는 곳까지 걸어가고 놓치면 다음 버스가 오는 때에 내 차로 움직이면 잠을 삼십 분 더 자고 학교도 늦지 않는다. 딱해서 태워 주다가 버릇되어 운전기사를 한다. 아들도 아예 버스 탈 마음이 없다. 아침에 태워 주고 마칠 때 학교 앞에서 기다린다. 아들을 학원에 태워 주고 다시 일터에 가서 일을 마무리짓고 집에 왔다가 세 시간 쉬고 밤 열 시에 데리러 간다.

 

  하루는 낮에 아들을 태우러 가다가 mbc 네거리에서 사고가 났다. 나는 신호가 바뀔 때 멈추는데, 뒤차가 빨리 달려 찻길을 바꾸려다 내 차를 들이박는다. 어찌 된 일인지 박은 차가 내 차 옆에 나란히 선다. 쿵 소리에 떠느라 차에서 한참을 내리지 못했다. 가슴이 벌렁벌렁하고 다리에 힘이 빠졌다. 언젠가 이 네거리 신호 바뀔 때 달리다가 범칙금을 냈다. 그래서 이 네거리는 신호만 바뀌면 바로 멈춘다. 학교 앞에서는 아들이 나를 기다리고, 나는 사고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보험회사 사람이 올 때까지 길 가운데서 꼼짝을 못했다. 아들한테 사진을 찍어 보내고 버스 타라는 쪽글만 보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안 다쳤냐고 묻는 말에 마음이 놓였다.

 

  아들이 학교에서 나오는 때가 늘 달랐다. 어떤 날은 갑자기 늦게 마쳐 한 시간도 넘게 시동 걸어 둔 채로 기다린다. 또 어떤 날은 아들이 먼저 나와 기다린다. 책을 빠트리면 집에 가서 갖고 오라고 시킨다. 아들도 첫째 아이처럼 주말에도 태웠다. 학원 태워 주고 도서관하고 치과하고 피부과도 말만 하면 하던 일 멈추고 달려간다. 낯선 도시에 오자마자 방 한 칸뿐인 집에 살고 동무도 없고 우리는 일에 매달리느라 아들이 중요한 때마다 어려움이 겹쳤다.

 

  우리는 일도 힘들었지만, 아들을 태우는 일이 이루 다 말할 수 없이 힘들었다. 우리 일은 미룰 수 없는 일이 많다. 그때그때 맞닥뜨리며 손님을 맞고 쉬는 때도 없이 찾아오는 거래처 검수도 한다. 손이 모자랄 때 아들이 부르거나 학교 마치는 무렵이 될 때는 진땀을 뺀다. 일꾼이 자주 들락날락하느라 자리에 없는 날에는 아들 운전기사 노릇이 힘에 부친다. 그렇게 어수선해도 아들 태우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도무지 태우러 가지 못할 적에는 택시를 타게 해도 택시 잡는 일이 시간이 걸려 마지못해 서둘러 달린다. 중고등학교 여섯 해를 다니는 동안 버스 타고 간 날은 다섯 손가락에 안 꼽히고, 버스 타고 집에 온 날은 열 손가락쯤 꼽힐까 싶다.

 

  아들 짐은 꽤 무겁다. 가끔 내가 들어 주는 데 몸이 뒤로 휘청거린다. 이렇게 무거운 아들 짐을 들어 보면 더더욱 안 태울 수가 없다. 일터에서 책가방을 저울에 달아 보았다. 세상에나 9kg 나간다. 한창 클 나이에 무거운 걸 매고 왁자한 버스를 놓치면 걸어서 다닐 짐이 아니다. 잠만 집에 와서 자니 아이도 딱하고 우리도 참 딱했다.

 

  빨간 차를 뽑을 때 스스로 기사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큰 딸아이 여섯 해하고 아들이 고등학교를 마친 열아홉 해를 나도 아이들 따라 학교를 두 번씩이나 더 다닌 느낌이다. 둘 다 일을 나가고 아들이 집에 오면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낮에 공부하고 밤에는 머리 식힌다며 컴퓨터를 마주하니 우리와 얘기를 할 틈이 없다. 그러라고 태워 준 것도 아닌데, 속이 탄다.

 

  내 시간을 바치고 하나 얻었다. 차에서 아이와 열 살 때 같이 이야기를 할 짬을 준다. 아침에 태워 가는 십 분, 낮에 움직이는 데 십 분, 밤에 데려오는 데 십 분, 사이에 움직이는 데 몇 분, 그러니까 이 삼사십 분만이 오직 아들하고 말을 나누는 하루가 된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전화도 하고, 쪽잠을 자기도 하고, 걸상을 뒤로 젖히고 구름을 보고 지는 해를 바라본다. 그때는 하늘을 쳐다볼 틈조차 없던 때라 아들을 기다리면서 그제야 하늘을 바라볼 틈을 준다.

 

  바쁘게 설치며 죽기살기로 태우고 다닌 일을 아들은 마땅히 여긴다. 버릇없는 애들로 키웠지만, 내가 쓴 그 하루가 아깝지는 않다. 학교 버스만 타고 다니던 둘째하고 달리 둘은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운전이라도 있어 기뻤다. 길에 뿌리느라 잃어버린 내 하루는 어떻게 찾을까. 두 아이에게 써버린 나날을 요즘 조금씩 누린다.

 

  쉼 없이 달려서 내 발이 되고 아이들 발이 되어 준 자동차를 곁님이 바람을 잔뜩 채운다. 이제는 때 맞추어 차를 데워 태워 줄 아이가 없어 그리 바쁠 일도 없는데, 내 바퀴는 아직 바쁘다. 쉬엄쉬엄 가자고 건넨다. 서두르며 멈추던 바퀴처럼 덜컹거리며 내 삶을 찾는다.

 

2021.01.08.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