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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아이] 11. 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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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11. 콩

 

  콩을 아무렇게나 흙에 묻었다. 하룻밤 지나고 나니 싹이 돋았다. 머리에 까만 껍질을 뒤집어쓰고 쑥쑥 오르고 줄기가 가느다랗게 웃자라 넝쿨로 자랐다. 혼잣힘으로 서지 못해 나무젓가락을 꽂아 기대 준다. 몇 밤 자고 나니 더 높이 자라 젓가락을 훌쩍 넘는다. 꽃집에서 얻은 꼬챙이를 둘 꽂았다. 해가 잘 드는 창가로 자리를 옮겨도 줄기가 시들시들 자란다. 잎이 타듯이 말라 한 잎 두 잎 떨어지길래 저절로 폭삭 내려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어느 날 물을 주다가 눈이 동그래졌다. 잎이 떨어진 줄기에 콩꼬투리가 주렁주렁 달렸다.  콩을 심은 지 넉 달이 접어든다. 지난해 시월에 냉장고에 있던 검은 콩 몇 알을 작은 나무 곁에 심었다. 물을 좋아하는 나무 곁이라 물을 먹는 흙을 눈여겨보았다. 한 마디마다 떡잎을 벌리며 무럭무럭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알이 여물지 않은 것이 더 많지만 두 알씩 든 꼬투리 둘은 단단하게 여물었다. 내 손으로 처음 키워낸 콩꼬투리를 만졌다.

 

  콩나물로 기르는 일하고 사뭇 다르다. 우리 집 숟가락통을 처음 살 적에는 시루로 쓰려고 했다. 구멍이 숭숭 나고 둥근 도자기가 둘 붙었다. 메주콩을 담아 물을 주면서 아이들하고 콩나물을 길렀다. 젓가락으로 엮은 시렁에 올려 두고 보자기를 덮고 틈날 때마다 물을 줘서 한 뼘 크기로 자라면 뽑아 국을 끓여 먹었다. 콩나물은 빛을 보지 않고 물만 먹고 자란다. 내가 심은 콩은 흙 품에서 스스로 싹을 틔우고 해를 먹는다. 떡잎을 내고 또 자라고 얼마큼 오르고 스스로 꼬투리로 열매를 맺는다. 스스로 서지 못하지만, 나무가 되었다.

 

  그렇게 가는 줄기로 열매를 맺으려고 스스로 잎을 떨군다. 작은 꽃이 언제 피었을까. 못 본 사이에 마디마다 꼬투리가 가득 달렸다. 콩을 심어 콩을 낳다니, 씨앗이 준 기쁨에 마음이 설렜다. 이때 내 마음처럼 아들도 콩꼬투리를 떠올린 적이 있다.

 

  초등학교 일이 학년, 그러니깐 열네 해 앞서 어느 날, 아들 버릇을 고치려고 곁님하고 짰다. 학교하고 우리 집하고는 7차선을 사이에 두고 아파트 옆문하고 학교 동문하고 건널목으로 이어졌다. 마칠 때면 길에 차가 줄레줄레 줄선다. 엄마들이 예쁘게 옷을 차려입고 아이를 데리러 온다. 집에서 내려다보니 아들이 공중전화 앞에 있다.

 

  “엄마 데리러 와”

  “엄마는 할머니 집이라 못 가”

  “엄마가 되돌아올 때까지 학교 앞에서 기다릴 꺼야”

 

   아침에 곁님이 시키는 대로 거짓말을 해도 매달린다. 아들이 억지를 부리면 버거워서 끝내 내가 지고 태우러 간다. 몇 시간 뒤에는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중전화를 한다. 계단만 오르면 마당인데 공중전화 번호가 뜨는 것만 보아도 어디쯤 있는지 알았다. 이 일도 집에서 다 지켜보았다. 아이가 올 때쯤이면 12층에서 밖을 내다보는 버릇이 되고 촐랑대면서 오는 아들을 아이들이 아무리 많아도 나는 잘 찾아낸다.

 

  “엄마, 게임기(닌텐도) 언제 와. 빨리 또 전화해 봐”

  “근데, 학원에서 전화 왔대이”

 

  느닷없이 징징대던 아이가 두말없이 끊는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옷도 벗지 않고 작은 가위를 찾는다. 비타민을 자를 때 쓰는 하늘빛 작은 가위를 찾아내어 씩씩대며 쿵쿵 걷는다. 뭐하나 싶어 부엌에서 지켜보니 내가 쓰는 노트북 줄을 곧 자를 듯한 몸짓을 한다.

 

  “엄마 노트북 선 자른다”

 

  아들 얼굴을 가만히 보니 골이 난 얼굴은 아니었다. 짓궂게 굴며 엄마도 노트북 없어 보라는 말로 보였다. 오죽하면 노트북 줄을 자를 흉내를 낼까. 나는 한바탕 큰소리로 웃고 말았다. 그렇게 엄마를 웃기고 밀리고 쌓인 풀이를 한다.

 

  “답 하나는 뭐야?”

  “엄마가 생각하는 것이 답이야.”

  “그게 뭔 소리야?”

  “답지랑 똑같아.”

  “답지에 답이 뭔데?”

  “답지에 답이 엄마가 생각한 그대로야”

  “너 자꾸 놀리면 내일 우리 엄마 보러 갈꺼다, 그리고 안 올 꺼야”

  “그럼 난 학교 안 가고 따라가지 뭐.”

  (골똘히 생각하더니)

  “그럼 할머니 집에 저녁에 가서 아궁이에 불을 켜 놓으면 안 돼?”

  “왜?”

  “콩 구워 먹게, 갑자기 먹고 싶어”

  “왜 갑자기 먹고 싶어?”

  “그냥 할머니 집 하니 생각나서. 아직도 콩이 많아?”

  “글쎄다”

  “갑자기 먹고 싶어. 엄마 같이 가자”

 

  그해 가을에 할머니 집에 갔을 때 아들하고 나하고 아궁이에서 콩을 구워 먹었다. 마침 아버지가 밭에서 막 뽑아 놓은 콩이 마당에 수북했다. 담벼락에 놓은 아궁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연기를 그으며 불을 쬐었다.

 

  “엄마도 어릴 적에 콩 구워 먹었어”

  “어떻게?”

  “학교 갔다 오던 길에 길가 밭에서 콩을 뽑았지”

  “마음대로 뽑아도 괴안나?”

  “안 되지. 언니 오빠들이 그렇게 했어. 땅을 파고 뽑은 콩을 올려놓고 밑에서 불을 피웠어”

 

  내가 어릴 적에는 학교가 꽤 멀었다. 십리 길을 걸어 다녔다. 집으로 오는 길에 고개 하나 있고 커다란 못을 세 군데 지난다. 가운데 못을 지나 길섶 가까이에 있는 콩을 맘대로 뽑아 구워 먹던 콩서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문제 풀다 말다 아들도 엄마하고 불 앞에 쪼그려 앉아 불을 지피던 때를 떠오른 듯했다.

 

  살짝이지만, 오락게임(닌텐도)이 손에서 벗어났다. 차츰차츰 책을 가까이하는 옛 버릇이 살짝 돌아왔다. 네다섯 살 때는 자잘한 글씨 하나 빠트리지 않고 꼼꼼히 읽었다. 언뜻 아들이 그때로 돌아온 듯했다. 물건마다 뒤에 붙인 알림글도 빠트림 없이 읽고 누나가 보는 책하고 잡지에서 작은 글씨를 읽고 책 모퉁이 네모 상자에서도 더 깨알 같은 글씨를 빠트리지 않고 읽는다. 새로 알면 하나씩 내게 가르친다. 떼를 부릴 적하고 딴판으로 놀았다.

 

  내가 키운 콩나무가 힘이 없어 서로 휘감겨 엉키면서도 올라가는 길을 찾고 열매를 맺었다. 아들은 하고 싶은 놀이를 실컷 한 뒤에는 언제나 제자리를 찾는다. 알면서도 하나라도 더 배우게 하려고 쓸데없이 바깥으로 돌리며 배움삯을 치르느라 늘 주머니가 빈다. 아이 숨통까지 죄고 가장 놀고 싶을 나이에 틀에 가둔다. 아무리 그렇게 몰아도 언젠가 스스로 길을 낼 줄 알면서도 서둘렀다.

 

  요즘 아들하고 이야기하고 놀 때가 자꾸 떠오른다. 군대에 갇혀서 그럴까. 삽을 보지도 않은 아들이 여름에는 흙을 퍼서 비를 막고, 영화 20도 넘는 요즘에는 눈을 치우느라 힘들까 싶어서 그럴까. 놓쳐 버린 일 하고 그릇되게 한 일이 자꾸 보인다.

 

2021.01.13.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