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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아이] 12. 낯씻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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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12. 낯씻기

 

  날마다 머리 수그리고 일하느라 사람 얼굴을 제대로 못 본다.  어쩌다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쳐도 누군지도 몰라 모른 척하고 내 일을 한다. 누가 곁에 와서 아는 척 건네는 목소리를 듣고서야 살갑게 맞는다. 한꺼번에 사람들이 들어오면 하얀 입가리개만 눈에 들어온다. 날이 추우니 차림새가 어둡고 입을 가려 목소리를 듣지 않고는 도무지 누가 누군지 헷갈린다. 가리개를 해서 눈빛이 여느 때보다 부드럽게 보이는 사람이 있고 오히려 더 차갑게 보이는 사람이 더 예쁘게도 보인다. 사람들 얼굴을 제대로 본 지가 아득하다.

 

그나마 나는 사람들 눈빛을 보고 목소리도 듣지만, 첫째는 집에 갇혔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집에서 일하는 날이 차츰 늘어난다. 이제는 숨이 막히는지 갑갑해서 못 견딘다. 좁은 곳에 갇혀 지내면서 때때로 전화하고 말을 받아 주면 수다가 길어지고 아예 끊을 생각을 않는다. 끊자고 하면 도리어 놀아 달라고 혀짧은 말을 한다. 일을 집에서 하고 셈틀로 보며 일을 주고받고 글뭉치는 사람을 불러서 보낸다. 이참에 얼굴에 난 점을 뺄까 묻는다. 돌림앓이가 한 해를 넘고 집에서 일하니 입을 가리지 않고 밖에 나갈 일도 줄어 얼굴에 덧바를 일도 없는 겨울에 점을 빼기에 알맞겠다.

 

  둘째도 여드름 한창 날 때 손을 대서 코에 묽은 점이 하나 생기고 이참에 넷을 뺀다. 며칠 쉰다고 우리 집에 와서 뺀다. 나도 예전에 코밑 점을 뺐다. 그때 아침 방송에 손님으로 나갔다. 뒤통수만 나온다. 열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진행자 앞에 앉았다. 곁에서 누가 손짓을 하면 손뼉을 쳤다가 멈추고, 오, 아, 소리를 길게 빼면서 추임새를 넣는다. 두 달 일해서 모은 돈으로 얼굴에 난 점을 뺐다. 먹을 빛이 있다 해서 두었는데 어느 날 어머님이 이제는 빼도 좋다고 해서 그길로 뺐다. 점이 커서 멍울도 깊었다. 그 옆에 작은 점도 몇 더 뽑아 자국이 뻐끔하게 패였다. 약을 바르고 물이 들어가지 않게 두 이레를 눈하고 이마만 살짝 씻었다.

 

  요즘도 그때 못잖다. 입가리개를 해서 얼굴을 가리고 다니니 머리 손질도 데면데면하고 얼굴에 바르는 일도 게으르다. 살결이 당기지 않을 만큼 바르고 허드레옷을 입고 다닌다. 차를 타고 다니니 사람 눈에 띌까 움츠릴 일도 없고 몸을 꾸미는 데 짬을 내지 않으니 알차다. 민낯이면 입가리개에 화장도 묻지 않고 옷차림에도 마음 안 쓰고 이모저모 다니기는 마음이 가볍다. 셋째가 열 살 때 요즘 나처럼 씻는 일을 게을리했다.

 

  오월 빨간 글씨가 적힌 노는 날이었다. 세 아이 모두가 학교에 가지 않아 밖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자동차 창문에 햇빛을 막는 까만 판을 막 덧씌웠기에, 얼떨결에 창문을 내리면 밀리고 망가져서 차를 마당에 두고 걸어갔다. 학원 앞에서 기다리는데 곁님이 왔다. 아침 일찍 시골에서 바로 뜬 꿀을 차에 싣고 일터에 갔다가 마치고 왔다. 수학학원 원장한테 한 병 드리고 싶었다.

 

  나는 그분을 일터에서 문득 두 번 보았다. 시내에서 북쪽으로 27km 떨어진 도산에서 일할 때 내가 글뭉치를 떼 주었다.

 

  “엄마가 이렇게 바지런히 사는데 아이들이 더 애써야 할 텐데”

  “그러게요. 학원비 깎아 주셔서 많이 고마워요”

 

  아이 셋이 있는 집이 많지 않았다. 셋째를 데리고 이야기하러 갔을 적에 애가 주렁주렁 있다는 말을 듣고 딱해 보인 듯하다. 둘이 벌어서 세 아이한테 다 쓸 만큼 배움삯이 나갈 무렵에는 한 푼도 아쉬웠다. 첫째가 오래 다니고 원장 아들하고 같은 반 동무라고 잘 봐주었다. 암수술 하여 위가 반쪽이고 낯빛이 하얘서 몸도 좋지 않았다. 병원비도 들어갈 텐데, 우리 짐을 덜어 준다. 손꼽아 보니 깎아 준 학원비가 한 해에 백만 원 넘는다. 고마운 마음에 때마침 곁님 차에 아침에 뜬 꿀이 있어 기쁘게 드렸다.

 

  아들하고 딸이 마치고 나왔다. 다 함께 곁님 차를 타고 밥집에 갔다. 곁님 학교 후배가 하는 집에서 찜닭을 기다린다. 그제야 앞에 앉은 아들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앗, 얼굴에 손때 자국이 까맣게 얼룩졌다. 입가에는 찌꺼기가 말라붙었고 아주 지저분했다. 안경을 살짝 들어보니 마른 눈곱도 덕지덕지 붙었다.

 

  “낯 안 씻었나?”

  “어”

  “낯도 안 씻고 학원 가는 애가 어디 있노?”

  “낯 씻는 법이 어디 따로 있나 뭐?”

  “그래도 낯은 제발 좀 씻고 다녀래이”

 

  찜닭을 먹고 집에 돌아오자 첫째 아이 또래 엄마한테서 전화가 왔다. 옆 동에서 딸이 과외받는 날이라고 마칠 때를 기다린다. 얼굴을 보자는 말을 듣고 헐렁한 옷을 입고 나서려고 하자 아들은 얼씨구나 좋아한다. 옷을 주섬주섬 입더니 먼저 나간다. 얼마 앞서 사준 새 자전거를 끌고 길 건너편 운동장에 갔다. 두 바퀴 달리기하고 비틀비틀 자전거를 탄다. 우리는 나무 밑 걸상에 앉아 이야기하는데 아들은 어둑해서 우리가 앉은 곳을 찾지 못했다. 학교 밖으로 나가는가 싶더니 구멍가게 앞에서 공중전화를 한다. 밖으로 나오니 더러운 얼굴로 구멍가게에 들어가 군것질도 한다.

 

  며칠 뒤 갯벌 체험을 갔다. 잔소리해야 할 때인데 능청스럽게 내 잔소리를 들어 줄 아들이 없어 집이 다 빈 듯했다. 아침에 떠날 때 아들한테 한마디 했다.

 

  “아침에 머리 감고 낯 씻는 것 까먹지 마래이. 낯을 먼저 씻고 머리 감으면 안 빠트리는제, 머리만 감고 낯을 안 씻는 사람은 아마도 누구밖에 없을 꺼야”

 

  이무렵에 아들이 느닷없이 잘 씻지 않았다. 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얼굴을 씻겨 주다가 이제는 스스로 얼굴을 씻게 했더니 얼굴에 물만 찍어 발랐다. 쉬는 날 몸을 씻기다 보면 귓불 뒤하고 목에 거무스름하게 때가 잔뜩 생겨 살결이 얼룩졌다. 그 꼴을 보지 못해 내가 또 아들한테 지고 말았다. 다시 아침저녁으로 손길을 주고 씻긴다.

 

  이랬던 아들이 조금 자라 한껏 멋을 부린다. 누나들이 집에 오거나 미용실에서 머리를 깎고 앞머리를 뜨거운 김으로 손질한다. 누나가 하나 사주자 고등학생 적부터 머리를 손질한다. 나는 밥은 안 먹어도 머리를 감고 학교에 갔는데, 아들은 머리 손질해서 멋을 부린다. 멋을 내는 일이 부끄러운지 문을 꼭 닫아 아무것도 못 보게 한다. 얼굴에 바르고 눈썹 짙게 하는 비싼 약을 사서 빳빳한 솔로 날마다 바르고, 파란빛 기름종이로 코에 낀 기름도 닦는다. 여드름 난 얼굴에 흉터가 남지 않게 뭘 붙이면서 얼굴하고 머리에 온마음을 썼다. 이제는 머리를 빡빡 깎은 군인이 되었다.

 

  “요즘 군대에서 낯은 날마다 씻나? 입가리개 끼니깐 눈곱만 떼도 안 되나?”

  “하하”

 

  오늘 아들한테 싱거운 소리를 했다. 어린 날 씻지 않은 제 얼굴을 떠올린 엄마가 살살 놀린다고 눈치를 챘겠지. 그때 어린 아들은 하지 말라면 하고 하라면 안 하더니, 옛 어른들 말처럼 다 때가 되면 시키지 않아도 씻고 멋을 부린다.

 

  군대에서 자동차 점검한다고 매캐한 냄새를 맡는다. 두껍고 가장 좋은 입가리개로 보내 달라던 아들, 시커먼 김을 얼굴에 뒤집어쓴다. 고달파도 힘들다는 말을 잘 내뱉지 않지만, 나지막한 목소리 뒤끝에 힘든 티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이제 얼마 남았다”가 아니고 “아직 얼마 남았다”로 말하며 하루하루 억지로 버틴다. 돌림앓이 때문에 쉬는 날 없어 집에 오는 기쁨도 누리지 못하고 여름을 손꼽아 기다린다. 집에서 그 잘난 아들이 어디로 갔는지 풀죽은 아들이 가엾다.

 

 

2021.01.15.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