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내가 사랑하는 아이] 16. 독서실

URL복사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16. 독서실

 

  새해 아침에 아들이 전화했다.

 

  “엄마 새해 복 많이 받아.”

  “그래, 고맙다 아들.”

  “오늘도 일 나가나?”

  “응. 가야 하는데 엄마가 아파서 누웠어.”

  “아프지 마, 엄마!”

 

  초등학교 때까지 해마다 마지막 날은 한지붕 이야기를 했다. 둥글게 둘러앉아 막내부터 돌아가면서 아쉬운 일과 새해 다짐으로 이야기꽃을 피운다. 2020년에는 오랜만에 모인다는 생각에 모두가 마음이 부풀었다. 곁님은 애들 데리고 어디로 갈까, 딸은 산으로 가자, 아들은 맛있는 밥 잔뜩 먹고 싶어 하고, 나도 꼭 할 말이 있었다. 어린 날 내가 한 몹쓸짓을 봐달라고 비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다.

 

  그러나 돌림앓이가 우리를 가로막았다. 첫째 아이는 차표를 물리고 아들은 군대에서 10월부터 쉬는 날이 밀리고 11월에도 밀렸다. 집에 온다고 제 통장으로 들어간 재난지원금도 아들이 집에 못 와서 그대로 날리고, 12월 31일에 나와 닷새를 쉬어 간다고 기뻐했다. 틈새두기 탓에 큰딸도 못 오고 아들도 쉬는 날을 몇 차례 빼앗기고 이렇게 전화로 한 해 마음을 보낸다.

 

  우리는 군대 간 아들한테도 못 가고, 아들은 여름 끝에 다녀간 쉼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집에 오려던 부푼 바람이 힘없이 빠졌으니 얼마나 안타까울까. 이제야 미루던 책벗을 찾는다.

 

  “엄마, 단백질 보낼 때 영어단어장도 보낼 수 있나?”

  “어떤 건데?”

  “아니다, 단어장은 빌려서 할게.”

  “왜?”

  “뭐가 있는지 몰라.”

  “단어장은 제 것이 있어야지. 찾아보아.”

  “집에 없나?”

  “참, 고등단어장 엄마 보려고 산 책이 하나 있어.”

  “내 책상에 없나? 단어장 하나 있을텐데.”

  “엄마가 한글인 줄 알고 잘못 산 건데, 이거 보내 주까?”

  “오, 좋지.”

  “니 방에 이것도 있네?”

  “첫째 꺼. 엄마 걸로 보내도. 단어장은 다 똑같아.”

 

  이틀만 일찍 말하면 쉬는 날 바로 받는데 늘 금요일에 이것저것 보내란다. 미리 마련해 놓고도 집에서 이틀을 묵힌다.

 

  “엄마 택배 보냈나?”

  “응. 왜?”

  “알았어. 보고해야 해서.”

  “단백질 옆에 단어장을 겨우 끼워 한 상자에 담아 보냈어.”

  “알았어.”

  “택배 보내고 나니 초콜릿 하나 넣을 걸 싶었어. 그것만 보내서 미안해”

  “괜찮아.”

  “다음에 영양제 보낼 적에 납작한 초콜릿 넣을게.”

  “아니 아니, 내가 보내 달라고 말하면 보내줘.”

 

  아들이 시키고 내가 받은 그대로 틈새에 책만 넣어 보냈다.

 

  “엄마, 단백질 하나라매, 두 통 왔는데?”

  “상자에 한 개 아니가? 책 하나하고.”

  “두 개더라”

  “우쩌노?”

  “걍 먹어야지”

  “안 꺼내 보고 그냥 보내서 그런가 봐”

  “그러게”

 

  시켜 놓은 영양제가 없다고 찾았는데, 상자에 든 줄을 모르고 보냈다. 택배 받을 물건을 잘못 보고한 아들이 엄마 때문에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잘못 샀던 내 책을 아들이 본다니 놀랍다. 나도 아들한테서 받은 책이 하나 있다. 우리말(국어)를 좋아하는 아들이 배우던 자국이 고스란히 묻은 문제집하고 풀이책을 얻었다. 품사를 물었다고 아들이 잊지 않고 주었다.

 

  이제 문제집을 서로 바꿔 보지만, 한때는 아들하고 독서실을 함께 썼다. 여느 날보다 일찍 일을 끝내고 아들을 태웠다. 학원에 데려다주고 하루는 찻집에서 기다리고 또 하루는 집에 갈까 말까 망설였다. 찻집에 있으려니 시끄럽고 커피값도 내야 하고, 문득 아들이 다니는 독서실이 떠올랐다. 아들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좋은 생각이라고 거든다. 엄마가 이대로 집에 들어가면 곧 태우러 와야 하고, 막상 집에 간 엄마가 또 귀찮다고 택시 타라 할까 싶었는지, 날은 춥고 택시는 퍼뜩 안 와서 귀찮아서인지, 선뜻 독서실 자리를 내준다.

 

  “아들이 바로 옆 학원엘 갔는데, 마칠 때까지 제가 아이 방에서 기다려도 될까요?”

 

  독서실 주인이 바로 대꾸를 못 하고 머뭇거리다가 쓰라고 했다. 아들이 쓰는 방이 어떨까 궁금했다. 조금 앞서 학원에 간 아들이 독서실에 왔다. 다른 동무들보다 일찍 들어가서 짬이 난다고 나와 자리를 찾는 엄마를 돕는다. 앞뒤로 들어가는 곳이 있었다. 우리는 건물 뒤쪽에서 들어갔다. 아들이 손짓하며 방을 알려주고 비밀번호도 알린다.

 

  “엄마, 학생하고 어버이하고 어떻게 바꾸어 머물게 하지?”

  “엄마가 아들 쓰는 방을 보고 싶다고 졸랐으니깐 그렇지.”

 

  아들은 다시 학원으로 가고 나는 골마루를 걸어 문을 연다. 1인실이라고 했는데 방이 열둘이다. 언뜻 보면 공중화장실에 들어온 느낌이다. 방이 다닥다닥 붙었다. 골마루를 가운데 두고 이쪽저쪽 문이 마주한다. 뜨신 바람이 쉼없이 소리내며 돌아가고 천장에는 빨간빛이 하나 빤짝이며 교실을 살핀다.

 

  아들이 쓰는 38호 방문을 밀자 끌신이 가지런하게 있다. 너무 고요해서 내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크다. 집에서 쓰는 읽기판보다 조금 큰 책상하고 걸상 하나가 방에 가득 찼다. 책상에 책이 둘 있다. 아들 이름이 적혔다. 수능특강 화학1하고 지구과학1이 왼쪽 귀퉁이에 있다. 학교에서도 책을 두고 다니다가 잃은 적이 있는데, 또 이렇게 책을 두고 다닌다. 칸막이에 넣어 두었다.

 

  책상에 붙은 형광등을 켰다. 아들 말대로 등이 셋 있다. 노랗고 희고 푸른빛이다. 엄마 마음에 드는 빛을 골라 쓰라는데, 아들이 맞추어 놓은 첫 등을 그대로 쓴다. 자리에 앉자니 포근바람이 돌아가는 소리만 시끄럽게 들리고, 책을 넘기는 소리가 안 났다. 손전화로 보고 들을까. 아니면 남자애들이 공부하는 버릇일까. 손으로 끄적이는 볼펜 소리도 안 들린다. 나는 노트북을 펼치고 문에 적힌 와이파이 번호를 친다. 또각또각 글판 두들기는 소리가 샐까 싶어 마음이 쓰였다. 그나마 포근바람이 돌아가는 소리가 내 소리를 조금 눌러 주었다.

 

  아들이 태어나 열아홉 해 만에 독서실을 처음 쓰고, 엄마하고도 처음으로 같이 쓴다. 집을 두고 여기에 온 까닭이 있다. 큰길가에 살던 집이 흔들릴 만큼 아주 큰 소리가 났다. 땅이 꺼지지도 않았는데 오랫동안 소리가 바닥에 울리고 집이 흔들렸다.

 

  “으아!”

 

  아들이 소리질렀다. 허둥지둥하며 방을 나와 숨을 크게 내쉬더니 드디어 뿔이 났다.

 

  “어디다 신고한다!”

  “그러면 안 돼. 우리도 가게를 하잖아. 나쁘게 하면 안 돼. 내가 나가서 알아보게”

 

  계단을 내려가 옆 건물에 들어섰다. 사교춤을 가르치는 밑자리일까 넘겨짚었지만, 막상 밑에 내려가니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더 알아보지 않고 들어가면 오늘은 아들 아무것도 못 할 듯했다. 걸음을 멈추고 길 가운데 가만히 섰다. 소리가 가만히 들린다. 몇 발짝 옮기다가 바라본 유리문에 춤추는 그림자가 어린다. 틈으로 들여다보니 아저씨가 혼자서 노래를 부른다.  문을 열자 큰소리에 말을 할 수 없었다. 아저씨가 문밖으로 나왔다.

 

  “우리 집에 수능생이 있어요, 소리를 조금만 낮춰 주세요.”

 

  그렇게 여쭈었지만, 집에 와도 크게 울린다.  며칠 앞서부터 집이 울렸다. 누구 탓인지 곁에 두고 몰랐다. 2층 우리 집 작은방 바로 밑이 상가식당이고 안방 지나 마루 밑층은 뱃사람 집이었다.

 

  “엄마, 소리가 어디서 났어?”

  “어, 아랫집인데, 그 아저씨 무서워. 잘못 건들면 해코지할지 몰라.”

  “그럼 난 어떡해!”

  “방학 때 하고 주말에는 독서실에 가서 공부하자. 응?”

  “알았어. 그러면 내일 알아보고 며칠 해보고 생각할게.”

 

  아들은 한참을 생각하고 마음을 굳혔다. 나도 그 아저씨 마음을 돌리느니 독서실에 가는 쪽이 나을 듯했다. 마음 같아서는 한소리 퍼붓고 싶지만, 꾹 참았다. 예전에 누구한테서 들었다. 참말일까마는 섬으로 사람을 팔아넘긴다고 들은 말이 설핏 떠올라 무서웠다.

 

  다음날 바로 아들이 독서실에 갔다. 스스로 알아보고 독서실이 맞을지 이레 동안 되풀이한다. 이레 동안 열여섯 시간 삼십 분을 쓰고 하루에 팔천 원을 들여 자리를 얻었다.

 

  시끄러운 소리를 벗어나 독서실로 쫓겨왔다. 엄마는 아들 자리에서 아들은 수학학원에서 따로따로 배우고 집으로 같이 들어갈 생각에 마음이 즐겁다. 아들 아니면 이런 일을 겪어나 볼까.

 

  “일기를 쓰면 글판 소리 날 텐데.”

  “조용조용 치면 돼. 가끔 옆에서도 소리가 들려와.”

 

  아들이 말은 그리했지만, 내가 들어도 내 소리가 컸다. 건너쪽에서 헛기침을 크게 한다. 처음으로 사람 소리가 났다. 글판 두들기는 소리가 애들한테 마음 쓰일까 싶어 덮는다. 아들을 기다리며 책 두 권을 다시 만진다. 38호 아들 방에 있다는 오늘이 믿기지 않는다. 엄마가 가면 창피하다고 좀처럼 자리를 내어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뜻밖이다. 세 시간이 참으로 빨리 흘렸다.

 

  우리는 아들을 처음 독서실에 보내 놓고 무척 마음이 쓰였다. 좁은 독서실에서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빵을 두 조각 사서 살짝 갖다 줄까, 김밥을 사줄까, 도시락을 사줄까. 아마 잘 보내겠지. 낮밥도 잘 챙겨 먹겠지, 지켜보자. 낮에 피시방 가서 조금 쉬다가 다시 독서실에 가는 그림을 그렸다. 딱 하루를 갔다가 겨울 방학 한 달을 미리 준 카드로 긁고 왔다.

 

  어린 날과 다르게 억지로 보내지 않았다. 생각을 맡겼다. 스스로 마음이 우러나 다짐을 했기에 좁은 자리에서 버틴다. 잘하는지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아들이 자리를 엄마와 둘이 나누어 쓴 사람은 아마 우리뿐이 아닐까 싶다.

 

  내가 잘못 산 책을 그때는 손사래를 쳤다. 이제야 책에 쌓인 먼지를 닦는다. 독서실 가서 공부할 때처럼 고요히 한 자락씩 넘길 아들을 그린다. 이 책을 아들 뒤를 따라 군대로 보내는 듯하다. 부디 잘 가서 아들 머리에 속속 들어가면 좋겠다.

 

2021.01.31.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