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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아이] 20.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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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20. 빵

 

  아이들이 기다리던 빵굼틀(제빵기)이 왔다. 두 아이하고 함께 종이상자를 뜯는다. 두 딸이 상자를 밑으로 당기고 나는 위로 잡아당겼다. 하얀 바탕에 네모낳고 묵직한 틀이 나왔다. 상자 바닥에서 책을 꺼냈다. 어떻게 쓰는가 알려주는 얇은 책하고 빵굽기를 담은 책이다. 우유 식빵 쪽을 펼친다. 책에 적힌 대로 해본다. 우유를 넣고 달걀을 하나 깨고 밀가루를 붓고 이스트하고 버터하고 소금을 넣고 단추를 누른다. 뚜껑은 속이 비친다. 가만히 보니까 네모난 속통이 돌아간다. 밀가루가 물하고 섞이고 차츰 덩어리로 바뀌면서 저절로 뭉친다. 뭉친 반죽이 벽을 탕탕 치면서 빙글 돌아간다.

 

  빵이 다 되려면 세 시간쯤 걸린다. 두 딸은 쪼그리고 앉아 지켜보다가 아빠가 불러서 어딜 나갔다 왔다. 그때까지 반죽은 돌아갔다. 돌다가 쉬고 하는데 부풀어오르지 않았다. 두 아이가 들어오자마자 빵이 다 되었는지 자꾸 물었다. 아직 남은 시간이 적혔는데 나는 기다리지 못했다. 뭔가 단추를 잘못 눌렸나 해서 멈췄다. 다시 처음부터 단추를 꾹 눌렸다. 반죽이 탕탕 이쪽 벽에 붙었다가 저쪽 벽에 붙었다 치기만 하고 탕탕 소리만 냈다. 나는 또 껐다.

 

  뚜껑을 열고 잿빛 반죽 속통을 손잡이로 세워 돌려서 꺼냈다. 오븐에 넣으려고 반죽을 셋으로 뜯어서 식빵 판에 담았다. 오븐에 넣으니 조금 부풀다 멈추고 굽는다. 나중에 꺼내어 보니 식빵이 부풀지 않아 딱딱하다. 큰애는 조금만 참았으면 곧 다 구울 식빵을 엄마가 느긋하게 못 기다리고 꺼서 그렇다고 아쉬워한다.

 

  “엄마, 다음부터 책에 적힌 대로 좀 읽어 보고 하세요!”

 

  첫 식빵을 잘못 했으니 다시 굽는다. 이제는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반죽하다가 쉬고 또 돌아가다가 한참을 가만히 멈추니 반죽이 커진다. 차츰 뜨거워진다. 빵집에서 파는 식빵만큼 부푼다. 네모 틀에 가득 차고 올라온 끝이 봉긋하다. 도톰한 장갑을 끼고 뜨거운 속통을 꺼내고 꽉 찬 식빵을 꺼낸다. 빵이 벽에 살짝 붙었다. 부푼 빵은 힘없이 귀퉁이가 찌그러진다. 그래도 뜨거운 김이 식으면 눅눅할까 싶어 꺼냈다. 한 김이 빠져나간 뒤에 톱날 빵칼로 쓱싹 잘랐다. 자르던 빵이 푹 찌그러졌다. 자르다 말고 우리는 손으로 뜯어 먹었다. 두 판째 구운 빵도 제대로 썰지 못해 망가트렸다.

 

  식빵을 몇 벌 구워서 뜯어먹다가 차츰 통에 붙은 빵을 쉽게 꺼내는 길을 익혔다. 향긋한 빵이 더 맛이 좋을까 싶어 봉긋이 올라온 노릿한 빵 껍질에 버터를 살짝 발랐다. 반들반들하고 달콤했다. 톱으로 얇게 잘 썰 수 있다. 어느 날은 자른 식빵에 오이·햄·맛살·양파·달걀·감자·마요네즈를 섞어서 빵에 발라 먹었다. 

 

  셋째 아이는 뱃속에서 빵 냄새를 무척 맡았다.  나는 배가 막 불러올 적에 다니던 일을 그만두었다. 이제 집에서 세 아이를 키우며 살림하려고 할 적에 첫 이웃인 동무를 만났다. 나보다 한 살 많고 큰아이들끼리 같은 학년이다. 우리는 아이들이 셋이라 끌리고 곧 가까이 지냈다.

 

  내가 이렇게 식빵을 굽는 동안 이웃인 동무는 돈을 내고 밥살림을 배웠다. 한식·중식·일식·양식 자격증을 모두 땄다. 이다음에 쓸까 싶어 모조리 땄단다. 어느덧 과자굽기하고 빵굽기까지 배운다. 빵을 굽는 날에는 모둠에서 똑같이 나눈다. 받아 온 빵을 우리 집에 갖고 왔다. 그 집 아이들은 빵을 하도 많이 먹느라 남아돈다고, 우리 아이들한테 준다. 큰아이가 빵을 먹으면서 말했다.

 

  “엄마도 빵 굽는 솜씨를 배워서 맛있게 빵 구워 줘.”

 

  두 아이가 먹다 남기면 내가 먹었다. 빵이 맛있었다. 여름방학 무렵에 과자굽기와 빵굽기를 배울 사람을 모은다는 알림글이 떴다. 셋째를 밴 일곱 달째에 빵 굽는 일을 처음 배운다. 두 달쯤 배운 뒤로는 이웃인 동무한테서 배운다. 우리 집에 와서 이모저모 가르쳐 주었다. 연장도 많이 샀다. 저울·계량컵·거품기·하트 무늬판 둥근 무늬판 네모 무늬판에, 깊고 얕은 틀하고 컵케익 틀을 샀다. 방망이·짤주머니·알뜰주걱·깍지·월계수 잎·글루텐·버터·휘핑크림을 장만했다. 연장 값이 꽤 들었다. 가게에서 사먹는 쪽이 돈이 적게 들겠다 싶어 그만둘까 했지만, 그냥 다 장만해서 손수 해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설거지를 끝내고 돌아서서 빵을 굽는다. 가장 큰 네모 빵틀을 꺼낸다. 빵을 배울 적에 적어 둔 공책을 보고 하나하나 저울에 올려 무게를 달았다. 달걀은 일곱이나 아홉을 넣고 기름도 넣는다. 기름을 안 넣으면 좋겠다 싶은데, 알맞게 안 넣으면 빵을 돌돌 말 적에 터진다. 거품기로 달걀을 윙윙 젓는다. 거품이 많이 일어나면 결이 부드럽다. 채로 친 밀가루를 붓고 섞는다. 걸쭉하게 골고루 섞으면 빵틀에 붓는다. 그릇에 묻은 반죽을 주걱으로 싹싹 그러모은다. 반죽을 빵틀에 부으니 ⅔만큼 찼다. 미리 달궈 놓은 판에 끼우고 울림종을 맞추고 설거지를 마무리한다. 깨끗한 천을 하나 물에 적셔서 밥자리에 펼쳐두고 빵을 다 구우면 엎어서 식힌다.

 

  큰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왔다. 작은아이도 유치원에서 돌아온다. 우리는 집에서 졸인 딸기쨈을 빵에 덜어서 골고루 발랐다. 큰아이가 천 끄트머리를 살짝 잡고 나는 빵을 둥글게 말았다. 빵 끝이 쨈하고 잘 붙도록 두었다가 자른다. 터지지 않았으나 한쪽이 살짝 터졌다. 그런데 첫 롤빵은 껍질이 홀라당 벗겨졌다. 천에 달라붙은 빵껍질은 내가 긁어먹고 아이들한테는 빵을 썰어 접시에 담아 주었다. 아홉 살 큰아이가 말한다.

 

  “학교 갔다 오면 엄마가 맛있게 빵을 구워 주니까 좋아!”

 

  두 아이는 과자를 얼마 안 사 먹었다. 학교에 가는 길에 엄마한테 이런 빵 저런 빵을 해 달라고 말한다. 오늘은 롤케익, 다음은 컵케익, 모레는 쿠키, 글피는 케이크를 먹고 싶다며, 이런 빵 저런 빵을 새롭게 시키고서 간다. 처음 굽는 빵이기에 그지없이 서툴어도 엄마한테 시키고, 맛있게 먹어 주었다. 빵가게에 가면 훨씬 예쁘고 반듯반듯한 빵을 쉽게 살 수 있는데, 굳이 엄마한테 집에서 구워 달라고 한다. 서툰 손길로 빵을 구워서 먹이고, 나도 아이들하고 같이 먹으면서 생각해 본다. 아이들은 더 예쁘거나 보기좋은 빵이 아닌, 엄마가 손수 구워 주는 빵이 가장 맛있구나 싶다. 모두 처음이라 엉성한데, 아이들이 보기에는 다르구나.

 

  잘 먹어 주니 고맙지. 자꾸자꾸 다른 빵을 새로 구워 달라고 하니 고맙지. 이런 빵이나 저런 빵을 굽자면, 집안일도 많고 설거지감도 잔뜩 생겨서 어깨가 뻐근하지만, 너희가 해 달라는 빵을 안 하고는 못 배기지. 서툰 엄마를 너희가 가르쳐 주네. 엉성한 엄마가 구운 못생긴 빵을 맛있게 먹는 너희가 엄마한테 사랑을 알려주네.

 

2021. 2. 21.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