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23. 따돌림
작은딸이 학교에서 우유를 안 먹고 가방에 담아 왔다. 어떤 날은 하루 지나서 꺼내면 우유가 빵빵하게 부푼다. 우유를 넉넉하게 마실 때인데 꺼린다. 우유를 밥을 먹듯이 꼭꼭 씹어 먹으면 고소하다고 말해도 고소한 맛을 못 느끼는지 잘 안 먹는다. 우윳값은 꼬박꼬박 나가고 우유는 쌓이고 어떻게 하면 잘 먹을까 싶어 달게 타먹는 가루를 가게에서 샀다. 하얀 우유에 섞으니 초코우유로 바뀐다.
“초코우유는 잘 먹네. 이제부터 집에 들고 오지 말고 가루 타 먹어.”
“그럴까? 근데 얼마큼 담아 가?”
“우유 둘 먹을 만큼만 담아.”
얼음과자 숟가락으로 두세 숟가락 넣으면 먹기에 알맞다. 조금 넉넉히 담았다. 가방에서 꺼내다 뒤집혀도 가루가 흘리지 않는 속이 훤히 보이는 그릇에 세 숟가락 퍼 담았다.
“엄마, 얘들도 많은데 어떻게 나만 먹어?”
“그럼 짝꿍하고 먹어. 다 나눠 먹으면 좋지만 그러면 가루가 너무 헤프잖아.”
며칠 짝꿍하고 먹고 짝꿍도 이제 들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조금 더 큰 그릇을 꺼낸다. 제티를 붓고 나니 남은 가루가 푹 줄었다. 며칠 가방에 넣어 두고 먹는다며 듬뿍 담는다. 하루는 큰 그릇에 수북하게 담아 갔는데, 책가방을 열어 보니 비었다. 다음 날 그릇에 또 가득 담아 갔는데 또 비었다.
“가루가 하나도 없던데 엎질렀나?”
“아니, 동무가 빼앗아 먹었어.”
그 많던 가루를 힘센 동무한테 빼앗겼다. 빼앗은 동무는 저랑 가까운 애들하고 나누어 먹었다. 아무래도 낱으로 파는 가루를 사서 하나씩 갖고 가면 좋겠다 싶었다.
“하나씩 든 가루 샀어, 이젠 하나만 갖고 가.”
“내가 가루를 안 주면 나하고 안 놀아 주잖아.”
“그럼 다른 동무하고 놀면 되지.”
“내하고 두텁게 노는 애들을 빼돌려.”
“중국 갔다 왔다고 연필을 하나씩 다 주는데, 나만 안 줘!”
“애가 뭐 그래. 그래서 풀이 죽었나?”
“오늘은 과자 사 오라잖아.”
딸이 과자를 하나 사 갔다. 다음 날 또 사오라고 했지만, 딸은 안 샀다. 우리 딸은 셈을 참 잘했다. 엄마 아빠가 돈 세는 일을 했다고 닮았나. 돈을 잘 다스린다. 과자를 하루에 하나씩 사면 얼마 들고 가진 돈이 얼마이고 셈을 하더니 이제는 안 사간다고 다짐했다. 하루는 짝꿍하고 노는데 자꾸 짝꿍을 불러 가고 또 놀면 불러서 동무를 빼앗긴다고 서럽게 울었다. 작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는 딸내미 손을 천천히 내렸다.
“널 괴롭히는 걔는 어떤 얘야?”
“걔들 엄마는 엄마보다 나이가 많아. 동무들이 할머니라고 해. 저 언니가 치과 의사래. 한 달에 천만 원을 번다고 자랑했어. 그 언니가 다달이 십만 원을 준대.”
“의사 언니가 있다고 풀죽을 일 없어. 사이좋게 지내라고 전화 할 테니 마음 풀어.”
나는 냉장고 문에 붙여 놓은 알림 종이를 보고 아이 엄마한테 전화했다.
“우리 아이를 따돌리나 봐요. 어머니가 사이좋게 지내라고 말 좀 해 주세요?”
“우리 애가 어떻게 괴롭힌다 하던가요?”
“우유에 타 먹는 가루를 빼앗고 연필도 우리 애만 안 주고 짝하고 놀면 데리고 가요.”
“우리 애가 언니하고 나이 차가 많아요. 그래서 저 하자는 대로 다 들어주어서 학교서 그러는 줄은 몰랐어요.”
참말로 몰랐을까. 앞으로 그러지 못하게 바로잡는다고 말은 했지만, 우리 딸은 잔뜩 무서워한다. 엄마한테 이르고 집에 전화까지 한다고 학교 갈 생각에 한숨짓는다. 다음날 딸내미는 아무 일 없이 집에 왔다. 그런데 뜻밖인 일이 일어났다. 그 아이가 전화를 했다.
“아줌마, 아줌마 집은 얼마짜리예요? 과자 살 돈이 그렇게 없어요? 내가 과자 하나 사오라 했더니 돈 없다고 하대요. 아줌마 집이 그렇게 못 살아요?”
대뜸 따지는 말을 하자 깜짝 놀랐다. 어찌 아홉 살 아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까. 어이가 없고 뭐 이런 얘가 있나 싶었다.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마음을 참는다. 우리 딸하고 아직 여섯 달 넘게 한 교실에서 보내야 해서 살살 달랜다. 여느 아이들과 생각이 사뭇 다르다. 집에서 보고 들은 말일까. 언니하고 나이가 많이 벌어져 어른 흉내를 일찍 하는 셈일까. 우리 딸을 얼마나 깔보면 나한테 이런 말을 할까. 내 마음이 이런데 우리 딸은 오죽했을까.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다른 엄마한테 물어보니 그 집 딸도 같은 반 되기를 싫어했다. 많은 얘들이 싫어하면서도 어울렸다. 우리 딸도 이제는 같이 놀 동무가 생기고 저를 따돌리던 동무가 곁에 오기를 꺼린다. 한 학년에 아홉 반이 있어 2학년 마치고 3학년이 되고 학년이 올라갈 적마다 같은 반이 되지 않았고 6학년이 되어서야 마음을 놓았다. 우리 딸이 수줍음이 많아 학교에 들어가서 이런 일을 치를까 가장 근심했다.
학교에서 시험을 쳤다. 우리 딸이 딱 한 판 시험을 아주 잘 쳤다. 반에서 으뜸이 되었다. 시험을 잘 치자 동무들이 붙고 따돌림도 없다. 우리 딸이 너무 조용해서 힘없는 아이로 얕보지만 동무하고 두루 사이좋게 어울린다. 이렇게 동무한테 크게 마음을 다친 뒤로 싫고 좋음을 천천히 말로 드러낸다. 따돌림 하는 동무로 스스로 버티는 길을 알아라치고 씩씩해진다.
어쩌면 그 아이가 시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딸은 몸집이 작고 빼빼 마르고 값싼 옷을 입혀도 예뻤다. 머릿수건으로 된 머리띠를 하고 다녔고, 얼굴을 환희 드러냈다. 그 아이는 얼굴빛이 까무잡잡하고 살이 좀 쪄서 얼굴하고 몸이 우락부락했다.
아홉 살이지만 애들도 위아래를 따진다. 제 목소리를 내면 따돌리고 말없이 잘 따르는 아이하고만 놀고, 저랑 놀고 싶어 안달이 난 애들하고는 안 놀아 주고, 같이 안 놀아 주는데도 자꾸 다가가는 까닭은 그 아이하고 있으면 어딘가 힘도 있고 재미가 있으니깐 놀고 싶어 한다. 애들도 또박또박 말대꾸하면 서로가 가슴에 꽁하게 담아 두었다가 곱씹는 줄 배운다. 아이들은 어른들하고 다르지 않고, 학교 또한 사회서 하는 대로 따라 배운다.
우리 집 딸아이뿐 아니라 이웃 딸아이를 괴롭히던 그 아이는 그 뒤로도 똑같은 짓을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도 했을까. 이제 스무 살이 훌쩍 넘었을 텐데 어떤 어른으로 살아갈까. 아이가 동무를 괴롭히고 따돌리는데에도 모르던, 또는 모르는 척하던, 그 집 어버이는 어떻게 살아갈까.
이제 우리 딸은 어른이 되었고,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졸업식 하는 날 반에서 동무를 따돌리던 한 아이가 학교에 가면 거꾸로 따돌림을 받을까 걱정을 하길래 어릴 적에 겪은 그 일을 돌아본다. 우리 딸은 아홉 살 무렵에 그런 일을 겪었어도 이내 잊어버린 듯 동무들하고 부드러이 어울리면서 놀았다. 눈길을 받고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는 아이들은 동무하고도 부드러이 즐거이 놀리라 생각한다. 아이들이 보고 배울 어른이 되어야지 싶다.
2021. 3. 8.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