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25. 노벨 수상자
밖에서 저녁을 먹는데 큰딸이 전화했다.
“엄마 노벨 생화학 수상자 만남에 나 뽑혔어. 나라 곳곳에서 이백 명 뽑는데 나도 뽑혔어. 참가증도 주는데 나가도 돼?”
“그래라. 근데 어떻게 가지?”
“고모 집이나 외삼촌 집에서 하룻밤 자면 안 되나?”
“좋은 자리인데, 그럴까?”
“그래. 나갈래. 이런 자리가 어디 또 있겠어!”
큰딸이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도 생물을 좋아했다. 그런데 화학자를 만나겠다고 누리글월을 보냈다. 우리 딸은 궁금한 열 가지를 누리글월로 물었다고 한다. 나는 일을 하루 쉬고 딸하고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탔다.
여느 때 같으면 세 시간 걸리는 길이 차가 밀려 네 시간 반이나 걸렸다. 버스에서 내려 지하철을 두 판 갈아 타고 강서구에 사는 우리 오빠 집에 갔다. 한 시간을 지하철을 타고 오빠가 일러 준 역에 내리니 오빠가 마중을 나온다. 오빠집에 가니 아홉 시가 넘었다.
다음날 9호선 첫차를 탔다. 우리가 서울길을 잘 몰라서 오빠가 코앞까지 데려다준다. 이른아침인데 지하철을 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고개를 돌릴 틈이 없다. 에스켈레이드를 갈아타니 사람이 더 많다. 사람으로 물결친다. 나는 딸아이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 꽉 잡고 오빠 뒤에서 옷을 꼭 잡았다. 아침마다 낯선 사람들한테 시달리며 일터에 가기도 앞서 힘을 빼는구나 싶은데 서울사람은 어찌 이리 잘 버틸까. 나는 이렇게 넘치는 사람을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힌다.
오빠는 우리가 안에 들어가는 모습까지 보고 오빠네 일터에 갔다. 그랜드볼륨 103호 큰 강당에 우리 딸이 들어가고 곳곳에서 온 아이들이 들어간다. 나는 문밖에 선다. 길잡이로 일하는 사람이 동시통역기가 남는다고 준다. 나는 맨 뒷자리에 앉아서 요나트 박사가 하는 말을 우리말로 듣는다.
요나트 박사는 이스라엘 화학자로 2009년에 중동에서 처음으로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여성으로는 넷째라고 한다. 목숨을 얻으면 생기는 리보솜은 얼마 못 살고 사라진단다. 세포소기관이라는데, 세포에 깃든 작은 우주라는 리보솜은 단백질과 RNA로 이룬 덩이요, 십만이 넘는 원자를 품은 우람한 생체분자란다. 요나트 박사가 단백질 합성체를 잇는 길과 얼개를 처음으로 밝혔단다.
요나트 박사가 이 길을 파헤친 까닭을 들려준다. 하루는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단다. 머리를 다쳐서 몸을 다스릴 적에 책을 많이 읽었고, 그 가운데 북극곰이 시월부터 오월까지 겨울잠을 잔다고 하는 이야기를 읽다가 문득 깨달았단다. 1960년 무렵에 찾아낸 리보솜 알갱이를 신문에서 읽고 스스로 배워 보고 싶었단다. 숱한 과학자가 리보솜 알갱이를 알아내지는 못했다지만 요나트는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 부딪쳐면서 끝내 밝혔단다. 멧골에 오르면 꼭대기인 듯하지만 멀리 내다보면 또 멧골이 있듯이 이 너머에 있는 길을 보면서 살아왔다고 덧붙인다.
가만히 들으니 요나트 박사가 조금 엉뚱하다. 궁금하면 참지 못하고 궁금해서 집을 불태웠다. 그 때문인지 머리가 다쳤기 때문인지 모르나, 몸이 다르다. 가만히 설 때는 몰랐는데 자리를 옆으로 옮기고 걸을 때 다리를 절룩거린다. 눈이 크고 헝클어진 은빛 머리카락인 일흔두 살 요나트 박사는 수수해서 이웃 아줌마같았다. 요나트 박사가 살면서 받은 상 가운데 손녀가 준 상이 가장 값지단다.
‘해마다 할머니는 나한테 으뜸인 할머니.’
손녀가 할머니 머리에 리보솜으로 그려준 그림이 으뜸 상장이라고 자랑했다. 연구에 파묻히면 집안일을 제대로 못 다스릴 적에 온집안이 힘을 북돋아 주어서 궁금한 일을 풀었다고 한다.
이제 사진을 찍는다고 밖으로 나온다. 아이들이 줄을 설 적에 우리 딸은 요나트 박사가 선 쪽으로 갔다. 딸이 말을 여쭙고 뭐라고 하더니 요나트 박사 손을 잡는다. 곁에 선 나도 머리를 숙이니 나한테도 손을 내민다. 반갑게 나도 손을 잡았다. 노벨상을 받은 지 한 해가 된 멋진 손을 잡아서 흐뭇했다.
오빠가 때를 딱 맞추어 우리를 데리러 왔다. 우리는 햇빛가리개가 있는 곳에 앉았다. 자판기에서 마실거리를 뽑았다. 우리 옆에는 다른나라 사람들이 앉았다. 그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우리 딸한테 무얼 묻는다. 노벨상 수상자 강연을 듣고 싶었으나 나이가 넘어서 가지 못했지만, 강의를 듣고 싶어 이곳까지 왔는데 들어가지 못했다는 얘기를 딸이 우리한테 옮겨 주었다. 이제 코엑스 남문으로 빠져나와 강변역으로 가는 표를 산다. 전철표를 자판기에서 뽑고 나오는데 아까 우리 옆에 앉은 다른나라 사람을 또 만났다. 표를 어떻게 끊는지 몰라 묻는 듯하다. 우리 딸이 오빠가 이르는 대로 듣고 알려준다. 보증금 오백원 받는 길도 알려주자 고맙다고 말하고 손을 흔들어 준다. 우리는 강변역에서 오빠가 사준 국을 먹고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어수선하던 서울을 차츰 벗어나자 답답하던 마음이 탁 트인다. 유리창 너머로 하늘도 맑고, 푸른 나무를 보니 숨을 쉴 만하다. 서울에서 보낸 하루가 며칠을 보내는 느낌이다. 비탈진 멧골에 보랏빛 등꽃을 뒤로 하고 버스는 신나게 달렸다. 우리 딸도 신이나서 쉬잖고 말한다.
“엄마 많이 힘들었지? 엄마는 또래 아줌마보다 앳된 얼굴이야. 나하고 다니니 언니 같아. 엄마하고 둘이 오니 참 좋다. 지하철 타기가 재밌어. 다음에는 동생하고 둘이서도 다닐 수 있을 듯해.”
오랜만에 우리 딸한테 이쁜 말을 듣는다. 눈뜨면 학교 가고 밤늦게 와서 잠도 실컷 못 자고 고등학교 3학년이 무거워 답답한 마음을 엄마한테 톡톡 쏘아댔다. 동무들은 대학 갈 공부하느라 머리 싸맬 텐데 이틀 짬을 내어 화학자를 만나네. 수능 공부를 이틀이라도 벗어났으니 숨이 트인 나들이가 되었지 싶다.
요나다를 만난 탓인지, 아니면 생물인 줄 착각한 탓인지, 우리 딸이 화학을 배우고 그 길을 걷는다. 따져 보면 학교를 다닐 적에는 일자리를 찾는 밑바탕인 공부이고, 그렇게 얻은 일자리가 먹고사는 밑바탕이다.
큰딸은 대학교 원서를 혼자 알아보고서 냈고, 대학교에 붙은 다음에 혼자 방을 알아보고서 얻었다. 일자리도 혼자서 찾고, 요즈음 지내는 집도 혼자 찾아보고서 얻었다. 엄마 아빠가 방값을 조금 보태 준 일이 있지만, 따로 도와주지 않아도 우리 딸이 스스로 길을 찾는다. 길도 마음도 우리 딸이 한다면 엄마는 모조리 믿고 따른다. 야무지다. 듬직하다.
2021.3.18.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