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26. 반듯한 이
작은딸이 거울을 보며 얼굴이 짝짝이다고 투덜거린다. 이를 드러내 앞니가 삐뚤다고 뜯어본다. 나는 아래쪽 앞니가 삐뚤삐뚤하고 나머지는 고른데, 딸은 바로잡은 앞니가 처음 자리잡았을 적하고 다르다. 작고 고르던 젖니가 빠지고 새로 올라온 이가 큼직하다. 빠진 이보다 커서 이가 밀려났는지 어금니보다 조금 작은 이가 둘이나 자리잡았다. 밥을 먹거나 하품할 적에 보면 크게 보인다. 보기에도 안 좋다며 딸이 부끄러워한다.
나도 저만 한 열두 살 적에 한 자리에 둘이 나서 하나는 이뿌리가 허옇게 드러났다. 덧니라고 뺀다. 중학교 일학년인 작은오빠 자전거 뒤에 타고 울퉁불퉁한 십 리 길을 달리고 마른강을 건너 읍내에 갔다. 오빠는 치과에 안 가고 언덕집을 찾는다. 허름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나오고 막다른 길을 기웃하다 겨우 집을 찾는다. 엄마 말로는 이를 뜨는 사람인데 알음알이로 사람들 이를 봐준다고 했다. 나는 마루에 걸터앉았다. 주사를 맞고 연장으로 이를 뽑는다. 뿌리가 깊어 빼는데 무척 힘들었다. 솜을 괴고 고인 핏물을 뱉고 삼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취가 풀리면서 아팠다. 오빠 허리를 꼭 잡고 등에 기대어 집에 왔다. 그 뒤로 입을 가리지 않았다.
우리 딸은 나처럼 뿌리가 드러나진 않지만, 겹으로 나서 손으로 가렸다. 못생긴 이라고 여겨, 남이 볼세라 마음껏 웃지도 않는다. 잇솔질도 잘 안 되었다. 문득 생각했다. 딸이 커서 어디 마주볼 적에 낯빛이 나쁠까 근심스럽다. 이웃 아주머니들한테서 이를 바로 잡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엇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이를 바로잡는다 해도 차츰 처음 때로 돌아간다. 열두 살에 바로잡으면 덜 그렇다고들 말하기에, 여름 방학이나 겨울 방학이면 다들 이를 바로잡는단다.
우리 딸아이도 열다섯 살에 하느니 조금 힘들더라도 일찍 하면 낫겠다 싶어 같이 이를 바로잡기로 한다. 어지간하면 안 할 텐데 입에 덧난 이를 어떻게든 손을 봐야 하니 그냥 둘 수 없다. 먼저 이웃 아주머니들한테 이것저것 물었다. 이를 바로잡는 곳은 이 마을에는 한 군데뿐이라 비싸도 그곳밖에 없다. 여느 치과에서 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뭔가 안 좋다는 말이 들려서 그곳에서 하기로 마음을 굳힌다. 여름 방학을 하는 날 갔다. 이를 바로잡는 데에 두 해가 걸리고 한 해 더 갈무리하는데, 돈이 오 백만 원이 훌쩍 넘고 그곳에 갈 적마다 오만 원을 내야 하니 바로잡기가 끝나면 육백만 원이 조금 넘는다. 큰돈이다. 적금을 하나 깨기로 하고 두 달에 나누어 내도록 봐달라고 했다.
첫날에 이를 둘 뽑았다. 덧니를 뽑는 줄 알았는데, 영구치라서 살려야 한단다. 앞쪽에 가지런하게 난 이를 뽑는다. 둘 빼면 뺀 자리 곁에 난 두 이가 뒤로 밀려 나와 자리를 잡고 삐뚤어서 뾰족해진 앞니도 펼쳐서 길을 튼다. 일주일이 지나서 또 둘을 뽑는다. 왼쪽 섞지도 않은 멀쩡한 이를 뽑는다. 이를 바로잡으려다 우리 딸을 잡을 듯했다. 달아서 뽑느라 딸이 지쳤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물도 겨우 마신다. 딸은 아픈데도 잘 참는다.
이제 틀을 끼운다. 흰빛으로 하면 티가 덜 날 텐데 되게 비싸다. 조금 싼 은빛 쇠줄로 틀을 잡는다. 한 땀 한 땀 이은 마디마다 볼록하게 반짝이며 튀어나왔다. 볼록해서 살갗에 닿아 입안이 잔뜩 헐었다. 딸은 따갑다고 입안을 바람으로 채운다. 그렇게 하면 쇠하고 살갗이 서로 떨어져 덜 아프단다. 이러고서 밥을 겨우 먹는다. 아주 뜨거운 밥을 입에 넣은 사람처럼 살살 먹는다. 이제 틀을 하니까 무얼 먹으면 바로 이를 닦아야 한다. 잇솔을 갖고 다니며 학교에서 밥 먹고 난 뒤 이는 잘 닦는다.
차츰 제자리를 잡자 줄도 조인다. 이제 유지장치를 끼운다. 할머니가 틀니를 끼우듯이 틀을 떠서 입안에 넣고 잔다. 잠드는 사이 이가 처음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게 한다는데, 입안에 걸리적거려서 엄마 모르게 자꾸 뺀다. 비싼 돈 주고 그렇게 아파 가면서 해 놓고는 잘 때에 못 끼우고, 나갈 때도 안 쓴다. 우리 딸은 제대로 하지 않아서 한 해를 더 꼈다. 이를 뽑는 날부터 입안이 멀쩡한 날이 없었다. 피고름이 돋고 살갗이 헤졌다. 입안에 물면 툭 튀어나와서 빼놓고 잔다.
이를 바로잡은 뒤로 거울을 품고 산다. 요즘도 우리 집에 올 적에 큰 손거울을 들고 온다. 아가씨들이 그렇겠지만 거울을 잘 안 보는 나하고 첫째 아이하고는 달랐다. 손가방에 들어가지 않는 거울을 손에 들고 다닌다. 손잡이 달린 손바닥 크기 은빛 거울을 내가 사주었다.
돌이켜 보면 작은딸은 열두어 살 적에 낯빛이 가장 어두웠다. 게다가 잘 웃지를 않았다. 때를 놓치지 않고 바로잡아 주기를 잘했다고 생각한다. 작은딸이 풀죽으며 지내지 않아서 고맙다. 이가 반듯하다고 여겨 환하게 이를 드러내어 웃으니 낯빛이 밝다.
이를 바로잡아 놓은 다음에는 뜻하지 않는 쪽으로 눈을 돌린다. 멋을 부린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학교 갈 적에 화장을 하더라. 교복을 입고 다니면서도 스스로 모은 돈으로 옷을 자주 사 입었다. 이제는 학교를 모두 마치고 일을 하는데 요즘도 저 사는 집에 가면 우리 딸 옷이 넘친다. 다섯이 쓰던 옷장도 모자라 벽장을 다 써도 옷을 둘 곳이 없어 옷장 문에 걸고 빨래대에도 걸어 둔다. 어떻게 다 찾아 입을까 싶은데, 철마다 사들이기만 하고 묵은 옷을 제때 버리지 않아서 많단다.
며칠 앞서는 이를 다시 바로잡을까 묻는다. 지가 번 돈으로 하겠다는데도 나는 바로 대꾸를 하지 못했다. 이제 또 바로잡은들 바라는 대로 티가 안 나고, 이다음 아이를 배면 뼈가 늘어나고 이도 뒤틀린다고 하지 말라고 하고 싶은데도 선뜻 말이 안 나왔다. 돈이 얼마 드는지 벌써 알아본 듯하다. 어느덧 열다섯 해가 흘렸으니 열두 살 적보다 돈은 적게 들지만 그래도 삼 백만 원이 넘는다. 두 해를 또 쇠줄을 감아야 하니 여러 가지 마음을 쓰며 근심한다.
우리 딸은 학교 다닐 적에는 사람들이 저만 쳐다본다는 생각을 하더라. 그래서 밖에 나갈 적에는 안경도 안 끼고 유지장치도 빼고 다녔다. 몇 해 애쓴 보람이 사라지자 이제 깨닫는다. 엄마는 우리 딸이 그냥 보아도 예쁜데 얼굴에 애쓰지 않고 그대로 두면 좋겠다. 남들은 네가 생각하는 만큼 눈여겨보지 않아. 우리 몸 반쪽이 똑같으면서 다르잖아. 엄마가 너를 자로 반듯하게 재지 않았듯이 쓰임에 따라 다르단다. 스스로 그렇게 생각할 뿐, 서로 갈 길도 바쁜 요즘인데 하릴없이 빤히 쳐다볼까. 길을 가다 보니 보이니깐 그저 바라볼 뿐이란다.
2021.3.22.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