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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아이] 30. 제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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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30. 제주도

 

  한 시에 일을 마치는 날이면 시골로 갔다. 옆마을 윗마을로 달리는 차가 많아 밀린다. 마을 언저리에서 오른샛길로 빠져서 다시 오른쪽 골목으로 꺾은 다음 왼쪽 고샅길 언덕집이다. 윗마을에서 탈춤을 보고 옛집을 그대로 이어온 마을을 한 바퀴 돌거나, 강을 낀 마을에 백일홍이 피면 옆마을 배움집에도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두 마을이 시골집을 가운데 두지만 나는 잘 가지 못한다. 쉬는 날은 첫째 아이를 우리 집에 데리고 나오거나 시골에서 하룻밤 묵는다. 우리가 딸을 보러 다니다가 이제 딸이 네 살이 되어 우리 집에 데리고 나왔다.

 

  낮에는 어린이집에서 놀고 저녁에는 우리 둘 가운데 일찍 마치는 사람이 아이를 데리고 온다. 소꿉놀이를 하거나 인형을 갖고 놀다가 틈나면 엄마 아빠 꽃잔치(결혼) 때 찍은 사진을 꺼내 보았다. 하루는 사진을 보다가 엉엉 운다.

 

  “왜 울어?”

  “나만 두고 엄마 아빠만 갔잖아!”

  “그래서 울었구나! 그런데 네가 태어나지 않았을 적에 갔어. 엄마 아빠 둘이서 다녀온 다음에 우리 딸이 엄마를 찾아왔지.”

 

  엄마 아빠가 꽃빔을 입고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겨례옷으로 갈아입고 족두리 쓰고 연지곤지 찍고 절 올리고 업힌 사진도 보여주었다. 제주도에서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간 낯선 사람들과 놀며 찍은 사진을 차근차근 보여주면서 둘이 간 이야기를 해주자 울음을 뚝 그쳤다.

 

  어버이 꽃잔치 사진을 보며 울던 아이는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어 우리가 꽃마실(신혼여행)을 간 제주도로 배움마실(수학여행)을 간다. 고등학교에 가더니 손전화기를 끊었다. 오직 공부만 바라보겠단다. 배움마실을 갈 적에만 동생 손전화를 빌리고 시골 할머니한테서 돈을 얻어 까만 가방을 끌고 집을 나선다.

 

  “엄마, 내가 없으니 일기 밀리지 않아 좋겠네!”

 

  우리 둘은 걸핏하면 티격태격했다. 나는 셋째 아이하고 입씨름 공부씨름을 마치고서야 하루를 마무리한다. 첫째 아이는 누리배움(인터넷 강의)을 들으니 때가 겹친다. “좀 일찍 듣니” “ 미리 말했니 안 했니” 하면서 서로 따졌다. 이제 제주도에 가고 나면 셈틀이 내 차지가 되어서 딸은 떠나는 길에 엄마가 셈틀을 마음 놓고 쓰라고 말한다. 딸이 버스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서 일터로 갔다.

 

  비행기가 제주도에 잘 닿았을까. 마침 딸아이한테서 전화가 온다. 딸아이 목소리가 들떴다. 잘 왔다는 말만 짧게 남긴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데 영상전화가 온다. 차를 세울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전화를 받지 못했다. 딸은 다섯이 한 방을 쓴다고 잠잘 방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또 놓쳤다. 뒤늦게 보니 영상전화 알림을 막아두어서 두 판이나 전화를 받지 못했다.

 

  첫날은 첫째 아이 방에서 자다가 문득 깼다. 새벽 두 시이다. 다시 잠을 자려고 애를 써도 잠이 오지 않는다. 잠자리가 바뀌어 쉽게 잠들지 못하나 싶다. 침대에 덩그러니 앉는다. 큰길 옆이지만 바깥에서 지나가는 차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고요하다. 가슴이 꽉 막혀서 이불을 들고 아들 방에 간다. 아들 옆에 끼어 자느라 날이 밝도록 뒤척이고 눈을 뜨니 눈곱이 잔뜩 끼었다. 낮에 일하면서 졸음이 몰려와서 겨우 버텼다.

 

  첫째 아이가 아침나절에 샛노란 유채밭에서 하얀 옷을 입고 찍은 사진 한 장을 보냈다. 얼굴이 밝은 아이를 보면서 따라 웃는다. 공부에 시달리지 않고 잔소리를 듣지 않으니 저리 밝구나. 동무들하고 재미나게 놀도록 답을 부러 안 했는데 딸은 기다렸는지 대꾸하지 않는다고 투덜거렸다.

 

  첫째 아이가 사흘 넘도록 집을 떠나 본 일이 세 날쯤 되지 싶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청소년 국제교류 한다고 이웃 일본에 이레인가 열흘인가 나들이를 갔다. 중학교 2학년 때는 남쪽 외도란 섬에 나흘짜리 수학여행을 갔다. 첫째 아이가 없으니 집이 텅텅 빈 듯하다. 같이 지낼 적에는 떨어져 지내고 싶더니만 빈자리가 크다.

 

  제주도 밥은 집밥하고 다를 텐데 잘 먹는지, 물을 갈아 배앓이는 안 났는지, 이래저래 마음을 쓰며 남은 하루를 또 첫째 아이 침대에 누워서 보낸다. 얄밉다가도 예쁘고 얄궂은 큰딸을 생각하면서 잠들었다.

 

  아침이 되어 큰딸이 전화했다. 얼마나 반갑던지 내가 먼저 말했다.

 

  “잘 잤니? 오늘도 활짝 웃으며 이야기 많이 누려. 엄마가 너 무척 보고 싶네!”

  “엄마, 초콜릿 이만 원어치 샀어. 큰 거 세 통, 작은 거 두 통.”

  “일출봉 꼭대기서 찍은 거가? 애 많이 썼구나. 그래도 힘들게 올라간 보람 있지? 재미나게 보내.”

  “엄마, 그 사진은 한 시간 앞서 다녀온 곳인데 이제 보내. 배경이랑 내 사진이랑 둘 다 봤나? 이제 숙소 간다.”

  “응 받자마자 대꾸한 거야. 너는 제주도까지 가서도 싸움 거나?”

  “아, 내가 한 시간 앞서 올라갔다 온 거를 이제야 보낸다는 말이었는데, 좋은 곳 엄마도 사진으로 보아.”

  “엉. 잘 놀다 와. 울 딸 사랑해!”

 

  사진을 보내고 이젠 말도 놓는다. 저녁 설거지를 하면서 나는 큰딸이 자꾸 떠오르는데 곁님 하고 두 동생은 아무렇지 않게 지낸다. 나만 딸 생각하며 있을 적에 잘하라는 말을 생각한다. 어린 날 우리 신혼여행 간 사진을 보고 저를 안 데리고 갔다고 울던 쪼매난 딸한테 요즘은 다른 나라에 가 본 적 없는 엄마 좀 제발 데리고 다녀 달라고 볼 적마다 노래하며 보챘다.

 

2021.4.12.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