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내가 사랑하는 아이] 31. 꽃돈
첫째 아이가 첫 배움꽃돈(장학금)을 탄다. 어느 곳에서 꽃돈을 준다는 말을 듣고 고등학교 1학년 성적을 떼어서 부친다. 대학원생 둘, 대학생 하나, 고등학생 스물둘을 뽑아 임하 서암당에서 장학금을 건넨다.
옛집 문턱을 넘어 마당에 들어서니 우리를 부른다. 사람들이 부른 쪽에서 이름을 적고 그곳 사람을 따라 마당에 펼쳐 놓은 자리로 갔다. 자리마다 태극기를 하나씩 놓았다. 우리는 태극기를 보고서야 삼일절인 줄 알았다. 학생들은 들어오는 대로 마당에 펼쳐 놓은 제 자리에 앉고 나는 커피 한 잔을 받아 집 둘레를 돈다.
돌조각상 밑에 새겨 놓은 글이 있다. 멈춰서 읽는다.
‘하루를 살아도 불꽃처럼’
가만히 보니 꽃돈을 주는 사람을 돌로 깎아서 세웠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랐단다. 해마다 3월 1일에 꽃돈을 건네고 치사랑(효)도 널리 알린다. 치사랑(효행)을 편 아이들까지 서른일곱이 꽃돈을 받는다.
이곳 어른이 살아온 이야기를 누가 말한다. 맨주먹으로 집을 나서서 부산인가 서울인가 저잣거리에 처음으로 터를 잡아 큰돈을 벌면서 열다섯 해째 젊은이들한테 꽃돈을 준단다.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터를 꾸러 가면서 번 돈을 텃마을(고향)에 아이들한테 돌려준단다. 이제 몸이 아프고 늙어서 이 자리에 나오지는 못했지만, 아이들한테 꽃돈을 주고 싶은 뜻을 알려준다.
‘값지고 흔한 것일수록 잊거나 느끼지 못한다. 튼튼할 때 튼튼한 줄 못느끼듯이, 물과 바람은 살아가는 동안 곁에 있어야 하지만 제대로 못 느낀다.’
몸과 마음이 영그는 때에 스스로 살펴 값진 나날을 멋지게 보내는 말을 몇마디 들려준다. 값있는 데에 뜻을 세우고, 밝게 바라보아야 어려운 일이 닥쳐도 쉽게 이겨낸단다. 즐겁게 살려면 하루를 아끼고 땀흘려 일하는 몸을 잘 돌보라고도 한다.
마당에 앉은 우리는 자리에 일어서서 시키는 대로 태극기를 손에 들고 만세를 부른다. 독립운동에 이바지한 옛 어른이 살던 마을에서 가장 나이든 할아버지를 앞세워 만세를 세 판 부르고 우리도 따라 만세를 외친다.
3학년이 되어서 또 배움꽃돈을 받는다. 이 무렵에 곁님 일터가 어수선했다. 두 차례 한덩이(합병)가 되느라 힘들었다. 살림돈도 아이들 대학교 배움돈도 벅찼다. 이때 여러 곳에서 베푼 꽃돈이 크게 이바지했다.
첫째 아이가 대학교에 들어 간다고 등록금을 내려고 목돈(적금)을 깼다. 오백만 원이 되는 첫 등록금을 내고 셈틀을 장만하고 방을 얻자니 칠백만 원이 든다. 한 학기만 큰돈 내고는 학교를 마칠 때까지 꽃돈으로 다닌다.
내가 일하던 곳에 배움이바지(장학재단)가 있어 해마다 2월에 여쭐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딸이 보내준 글뭉치를 들고서 여쭙고는 넣어 보았다. 석 달이 지나고 오월에 이백만 원이 들어왔다. 기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한테 떡하고 통닭을 돌렸다.
“나 지난 2학기 때 듣는 사람도 없는 교양을 듣지 않아 0.1점 모자라 안 된다 했잖아. 아쉬워서 내가 따지니 사백을 탔잖아. 두고 봐. 또 해낼 거야.”
“그래 잘 해보자. 엄마는 배움돈 내려고 목돈 또 헐었는데 도로 넣야겠네.”
첫째 아이는 네 판은 엄마 아빠 도움으로 꽃돈을 탔지만, 대학교 그 뒤로는 스스로 애써서 학교에서 받았다. 대학만 보내 주면 방학 때 곁일을 해서 배움삯(등록금)을 보태겠다고 큰소리 쳤지만 곁일을 할 곳도 없고 한 적이 없다. 일하면서 배운다고 한다면 내가 말리지 싶다. 우리가 마음과 돈이 가장 힘들 적에 받은 꽃돈은 살림에 보탬이 컸다. 제몫을 톡톡히 해주며 애쓴 딸이 새삼 고맙다.
2021.4.15.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