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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좀 생각합시다 13 준비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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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말 좀 생각합시다’는 우리를 둘러싼 숱한 말을 가만히 보면서 어떻게 마음을 더 쓰면 한결 즐거우면서 쉽고 아름답고 재미나고 사랑스레 말빛을 살리거나 가꿀 만한가 하는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말 좀 생각합시다 13

 준비 땅

 

 

  요즈음은 ‘요이 땅(ようい どん)’ 같은 일본말을 우리나라에서 함부로 쓰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웬만한 사람들은 ‘준비(準備) 땅’으로 고쳐서 쓰니까요. 그렇지만, ‘준비 땅’이라는 말마디도 우리말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일본말 ‘ようい(用意)’를 다른 한자말 ‘준비(準備)’로 바꾸기만 했을 뿐이니까요.

 

  일본사람은 총소리를 ‘땅’으로 적습니다. 우리나라는 총소리를 ‘탕’으로 적어요. 일본에서는 너른터·큰마당에서 겨루거나 달리려 하는 자리에서 으레 총을 쏘며 알린다고 합니다. 이때에 퍼진 말씨라고 하는 “요이 땅(준비 땅)”인데요, 막상 달리기를 지켜보면, 몸짓을 셋으로 나눕니다. 이 몸짓을 우리는 예부터 “준비이이, 땅!”이라 하지 않고, “하나, 둘, 셋!”이라 했습니다.

 

  달리기를 하는 자리에서 셈을 셋 세면서 함께 첫발을 뗀다면, 우리말로는 수수하게 “하나 둘 셋”이라 하면 됩니다. 몸짓 그대로 말하지요. 셋을 세지 않고 둘만 센다면, “자, 가자!”라든지 “자, 달려!”라 할 만해요.

 

  요새는 “출발!”이라 말하는 분이 제법 늘었는데, 이때에도 일본 말씨입니다. 우리말로는 “가자!”나 “떠나자!”입니다. “가 볼까!”나 “떠나 볼까!”라 해도 어울립니다.

 

  우리말로 ‘자’라고 하는 느낌씨는 여러 눈길이나 마음을 모으는 노릇을 합니다. “자, 이제 가 볼까”나 “자, 오늘은 이만 마치지요”나 “자, 기다려 보라고”나 “자, 요놈 보게나”처럼 써요.

 

  여느 자리에서 여느 사람들이 입으로 으레 ‘자’를 써도 배움터에서나 열린터(사회)에서나 글꽃(문학)에서는 좀처럼 ‘자’라는 말을 못 쓰는 듯합니다. 어린이를 가르치는 어른이라면, 또 어린이가 읽을 글을 쓰는 어른이라면, 어린이가 말을 슬기롭게 배워서 아름답게 쓰도록 우리말을 찬찬히 가다듬어야지 싶습니다. 알맞고 즐거이 쓸 말씨를 살피고 헤아려서 환하고 사랑스레 써야지 싶습니다. 이제부터 첫발을 내딛도록, 자, 같이 가 볼까요? ㅅㄴㄹ

 

 

내가 태어날 때도 “준비 땅” 하고 수억 마리 정자가 달리기 시합을 했는데요

→ 내가 태어날 때도 “자 달려” 하고 엄청난 씨앗이 달리기를 겨루었는데요

→ 내가 태어날 때도 “자 가자” 하고 엄청난 아빠씨가 달리기를 했는데요

《불량 꽃게》(박상우, 문학동네, 2008) 44쪽

 

달리기 대왕 / 준비, 땅. / 나보다 빨리 출발하지
→ 달리기 으뜸이 / 자, 달려. / 나보다 빨리 가지
《차령이 뽀뽀》(고은, 바우솔, 2011) 56쪽

 

준비… 땅! 드디어 시합이 시작됐다
→ 자, 달려! 드디어 달리기를 겨룬다
→ 자, 가! 드디어 모두 달린다
《아! 병호》(최우근, 북극곰, 2018) 1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