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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우리말 9 새하늬마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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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한겨레 우리말’은 우리가 늘 쓰면서 막상 제대로 헤아리지 않거나 못하는 말밑을 찬찬히 읽어내면서, 한결 즐거이 말빛을 가꾸도록 북돋우려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우리 말밑을 우리 삶터에서 찾아내어 함께 빛내려는 이야기입니다.

 

한겨레 곳말
― 새하늬마높, 곳곳을 이르다


  오늘 우리는 한자로 가리키는 네 곳, 그러니까 ‘동서남북’이 익숙할 텐데, 이 말씨는 우리 삶터에 스민 지 오래지 않습니다. 놀랄 만한지, 마땅할 만한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한자말이 들어온 지 그리 오래지 않기도 하지만, 임금이나 벼슬아치나 글꾼이 아닌, 흙을 짓고 숲을 가꾸며 아이를 돌본 여느 사람들은 한자말이 아닌 그냥 우리말을 수수하고 즐겁게 쓰면서 살았어요.


  그렇다면 흙을 짓고 숲을 가꾸며 아이를 돌본 여느 사람들은 어떤 낱말로 네 곳을 가리켰을까요, 간추리자면 ‘새하늬마높’, ‘새 + 하늬 + 마 + 높’입니다.

 

 새·새롭다·새삼
 새다·새벽·밤을 새다·지새우다
 사이·새우다·틈·트이다
 샛별·새삼스럽다·새록새록

 

  ‘동녘’은 ‘새’로 가리킵니다. ‘새녘’이지요. 이 말밑은 ‘샛별’이나 ‘새롭다·새록새록’이나 ‘새삼스럽다’로 잇닿아요. 그리고 밤을 ‘새우다·새다’라 하잖아요? 밤을 새면 찾아오는 ‘새벽’이 있어요. ‘틈’하고 맞물리는 ‘새·사이’인데요, 밤이랑 아침(낮) 사이에 있는, 새롭게 빛이 퍼지는, 이맘때에 초롱초롱 빛나는 별인, 틔워(틈) 주는 때인, 사이가 되는, 그러한 ‘새’예요.


  탁 트이면 시원해요. 사이가 나기에 바람이 드나들어요. 밤하고 아침을 잇는 길은 하루를 새롭게 열어요. ‘새’란 바로 이러한 때랑 자리를 가리키는 낱말이랍니다. 이리하여 ‘새녘·샛녘·샐녘’은 모두 우리가 처음으로 맞이하거나 다시 맞이하는 날이 된다는 뜻을 나타내요.


  무언가 ‘새록새록’ 떠오른다고 합니다. 이 느낌을 헤아려 봐요. 무언가 ‘새삼스레’ 돌아보거나 바라본다고 합니다. 이 느낌도 곱씹어 봐요. ‘새’를 붙이면서 한걸음을 더 나아가거나 다시 나아갑니다. 어제를 내려놓고 오늘을 첫마음이 되어 맞이합니다.


  가만히 보면, 하늘을 나는 ‘새’도 이 말밑하고 잇닿을 만해요. 새는 땅하고 하늘에서 살지요? 땅하고 하늘 사이에 있는 숨결이 ‘새’예요. 사이에 있기도 하지만, 사이를 잇기도 하는 날개붙이를 ‘새’라고 했으니, 이름이며 뜻이 무척 깊어요.

 


  날개를 다니, 또는 날개가 있으니 ‘새’요, 새롭답니다. 이러한 말밑하고 뜻을 생각하면서 “날개를 단 듯하다”라는 말씨를 혀에 얹어 봐요. 홀가분할 적에 ‘날개·날개붙이’를 말하는데요, 홀가분한 마음이란 홀로 가벼운 마음이면서, 스스로 새롭게 되는, 처음으로 가는, 새처럼 날개를 다는 마음이랍니다. 생각에 날개를 단다고도 하는데요, ‘생각날개’란 우리 스스로 새로울 뿐 아니라, 숨통을 틔우는, 사이를 여는, 스스로 가볍게 날아오르는,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이러면서 땅하고 하늘에서 고루 즐겁게 기운을 받는 모습을 나타내지요.

 

 하늬·한·하나
 하늘·크다·넓다
 한뉘·한누리·한터·한땅·한나라
 뉘·누구·누이·눕다·누리

 

  ‘서녘’은 ‘하늬’로 가리킵니다. ‘하늬녘’이지요. ‘하늬’는 ‘한·하나’라는 말밑입니다. ‘하·한 + 늬·뉘’인 얼개예요. ‘뉘’는 ‘누(누구) + 이’ 얼개로, “뉘 집 아이일까”라든지 “뉘 말이라고 흘려듣네”로 써요. 아무개나 어디를 가리킬 적에 쓰는 말인 ‘뉘’인데요, ‘누’는 ‘뉘다(누이다)’를 이루는 말밑이고, 해가 하늬녘으로 넘어갈 적에는, 우리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밤을 맞이합니다.


  우리나라는 하늬녘으로는 얕은바다 건너로 드넓은 땅이 나오고, 새녘으로는 깊은바다 너머로 끝없이 바다가 흐릅니다. 우리말에서 ‘하늬’가 서녘을 가리키는 이름이 된 바탕을 헤아려 볼 만해요. 하늬녘은 너른 누리(땅)이거든요. 넓은 나라예요. 오늘날에는 ‘나라’라고 하면 우리나라나 이웃나라처럼 삶터나 틀이 다른 터전을 가리키는 자리에 흔히 쓰지만, 지난날에는 ‘넓거나 너른 땅’을 가리켰어요. 이런 데에서도 ‘늬·뉘’를 새삼스레 생각해 볼 만합니다.


  우리나라 이름에서 ‘한’은 한자가 아닌 ‘하나·한·하늘’하고 맞물립니다. 겨레로 치면 ‘한겨레’이고, 나라로 치면 ‘한나라’이지요. 겨레나 나라를 넘어서며 이 땅에 깃든 모든 사람을 아우른다면 ‘한누리’이고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우리나라 이름을 ‘한누리’나 ‘한뉘’처럼 나타내 볼 만합니다.

 

 마·맑다·많다
 마파람
 마음·말
 물

 

  ‘남녘’은 ‘마’로 가리킵니다. ‘마녘’이지요. 우리나라 하늬녘으로는 드넓은 땅이 나온다면, 새녘하고 마녘으로는 드넓은 바다가 나와요. 새녘은 새롭게 찾아오는 하루, 해가 새로 뜨는 곳, 밤하고 아침 사이를 잇는 다리를 나타내는 만큼, 드넓은 바다라는 결을 ‘마’라는 이름으로 나타냅니다.


  ‘마’는 ‘많다’하고 ‘맑다’를 이루는 말밑입니다. 먼저 바다(물)가 많지요. 그리고 마녘으로는 해가 넉넉히, 가장 많이 비춥니다. 해가 넉넉히, 가장 많이 비출 적에는 날이 좋아요. 맑습니다. 해가 많은 철을 지나기에 열매를 푸지게(많이) 거둡니다.

 


  새녘이나 하늬녘에서 부는 바람은 ‘샛바람·하늬바람’이지만, 마녘에서 부는 바람은 ‘마파람’입니다. ‘마 + ㅎ + 바람’인 얼개입니다. ‘바람’을 ‘파람’으로 읽는 셈인데, ‘휘파람’도 ‘ㅍ’ 소리예요. 이 대목에서 생각을 이을 수 있다면, ‘바람·파람’은 하늘을 이루는 기운이나 숨결이니, 하늘빛(파랑)이 고스란히 ‘바람·파람’으로 스미는 줄 알아챌 만합니다.


  새로 찾아오는 곳을 새녘이라 한 만큼, 바다(물)가 많은, 또 해가 많이 들어 맑은 마녘에서 ‘마’는 ‘물’로도 말밑을 잇습니다. 바다란, 물이에요. 바다를 이룬 물이 아지랑이로 바뀌어 하늘로 올라 구름이 되면 비가 되고, 이 비는 다시 숲을 거쳐 냇물에 가람물(강물)이 되어 바다가 되지요. ‘바다 = 물’이랍니다.


  물은 한 가지 모습이 아니고, 한 톨을 따로 떼지 못해요. 물은 어떠한 덩이여도 똑같은 물일 뿐이랍니다. 물방울에는 아무 크기가 없어요. 이러한 물이듯, 우리가 쓰는 ‘말’도 크기가 없어요. 말은 마음을 담아내는 소리입니다. 마음을 담아내는 소리는 물결 같은 떨림이나 높낮이나 길이는 있되, 어떠한 덩이로도 재지 못해요. 그래서 ‘말’인데요, 말은 바로 마음에 담은 생각이라는 씨앗에서 태어나니, ‘물·말·마음’은 말밑이 같으면서 다른 자리에서 새롭게 쓰는 낱말이 됩니다.

 

 높·높다
 노랗다·노을·놀
 놀다·놀랍다·놀라다
 노래

 

  ‘북녘’은 ‘높’으로 가리킵니다. ‘높녘’이지요. 높녘에서 부는 바람은 ‘높바람’입니다. 오늘날에는 ‘높새바람’이란 이름을 그대로 써요. ‘높새 = 높 + 새’이니, ‘북녘 + 동녘’에서 부는 바람인 셈입니다.


  ‘높’은 그야말로 ‘높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터전에서 본다면, 높녘으로 갈수록 높아요. 땅이 높지요. 땅이 높을 적에는 외려 하늘도 한결 높아 보인답니다. 이 높은 곳에서 비추는 새로운 빛살이 ‘놀·노을’이에요. ‘노 + ㄹ’ 또는 ‘노 + 으 + ㄹ’인데요, 아침을 맞이하거나 저녁을 마주할 적에 비추는 이 빛살인 ‘놀·노을’은 하늘에서 파란 기운이 사라지면서 차츰 하얗게, 노랗게, 바알갛게, 보랗게(보랏빛) 달라집니다.

 


  놀·노을은 얌전히 있지 않습니다. 늘 춤춥니다. 마치 개구쟁이나 말괄량이 같습니다. 언제나 움직이는, 새롭게 춤추듯 바뀌는 놀라운 숨결이자 빛살입니다. 어린이가 뛰노는 듯한 놀·노을입니다. 놀이하는 즐거운 마음처럼 노래하는구나 싶은 놀·노을이에요.


  불타는 놀·노을처럼 볼이 빨갛도록 뛰어놀면서 튼튼한 어린이입니다. 타오르는 놀·노을마냥 온몸을 새빨갛게 달군 불덩이처럼 기운을 끌어올려 마음껏 뛰놀기에 씩씩하게 자라는 어린이입니다.


  놀이는 하나로 그치지 않아요. 늘 움직입니다. 바뀌지요. 이렇게도 놀고 저렇게도 놀며 끝이 없이 바뀌어요. 놀라운 놀이입니다. 이 노을처럼, 놀이처럼, 높다란 하늘처럼, 즐겁게 노래해 볼까요? 하루를 노래하고, 새하늬마높을 노래해요. 오늘을 노래하고 밤낮을 노래해요. 마음을 노래하고, 맑은 물방울을 노래합니다. 많이많이 노래하면 좋겠어요. 스스로 우러나오는 날개 같은 눈망울이 되어 이 하루를 새롭게 노래해 봐요.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