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책숲마실’은 나라 곳곳에서 알뜰살뜰 책살림을 가꾸는 마을책집(동네책방·독립서점)을 다녀온 이야기입니다. 여러 고장 여러 마을책집을 알리는(소개하는) 뜻도 있으나, 이보다는 우리가 저마다 틈을 내어 사뿐히 마을을 함께 돌아보면서 책도 나란히 손에 쥐면 한결 좋으리라 생각하면서 단출하게 꾸리려고 합니다. 마을책집 이름을 누리판(포털) 찾기칸에 넣으면 ‘찾아가는 길’을 알 수 있습니다.
숲노래 책숲마실
― 시흥 〈백투더북샵〉
어릴 적에 누린 놀이 가운데 하나는 길그림 읽기입니다. 예전에는 길그림을 얻기 몹시 힘들었어요. 높녘(북녘)에서 샛잡이(간첩)가 찾아온다는 핑계로 ‘나라길그림’이나 ‘고장길그림’을 아무한테나(?) 안 팔았습니다. 어린이일 적에는 ‘사회과부도’를 펴다가 손수 마을길그림을 그린 적 있어요. 둘레에서 제 길그림을 보며 놀라셨지요. “네가 길그림을 그려 주면 못 찾아가는 일이 없겠어!”
길그림을 그리기는 쉽습니다. 첫째, 모든 길을 걷되, 즐겁게 다니며 하나하나 그대로 보면 됩니다. 둘째, 어느 집이나 길이든 더 좋거나 부러 나쁘게 옮길 까닭 없이 그곳을 고스란히 느껴서 옮기면 됩니다. 열 살 무렵 마을길그림을 그리며 느낀 이 대목은 글쓰기나 책읽기에서도 매한가지요, 살림길과 사랑길에서도 똑같아요.
모든 길과 집은 달라요. 모든 삶과 글은 달라요. 모든 사람과 마을은 달라요. 모든 풀꽃나무는 다르고, 모든 숲이며 바람이며 하늘이며 바다이며 들도 달라요. 참말로 모두 다른 줄 느껴서 고스란히 받아들이면 싸우거나 다투거나 시샘할 까닭이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줄 몰라서 싸우거나 시샘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줄 받아들이지 않아서 사랑을 스스로 못 짓고, 서로 사랑하지 못 합니다.
마을책집이 태어나기에 그곳(그 마을·그 고장)을 찾아갑니다. 시흥에 〈백투더북샵〉이 태어났기에 시흥이라는 고장을 혀에 얹어 보고, 그곳 길그림을 꼼꼼히 읽습니다. 이러고서 작은아이랑 전철을 타고 알맞춤한 데에서 내려 천천히 걷습니다. 구름바다가 대단한 하늘을 봅니다. 거님길 틈새에 돋은 들풀을 바라봅니다. 어린배움터(초등학교)를 휘감은 높다란 잿빛집(아파트)을 문득 쳐다봅니다. 이윽고 마을책집 〈백투더북샵〉에 닿습니다. 겉을 나무로 단단히 댄 담은 이곳이 나아가는 길을 부드러이 보여주는구나 싶어요. 책집 어귀에는 도로시아 랭 님 빛꽃책(사진책)을 비롯해서 눈을 밝히는 책을 놓고, 복판에는 생각을 키우는 책을 놓으며, 안쪽에는 잎물(차)을 누릴 너른 책자리가 있습니다.
어디서나 즐겁습니다. 푸른별 숲바람은 멧골에서도 피어나지만 큰고장 조그마한 들꽃한테서도 피어납니다. 언제나 사랑스럽습니다. 푸른별 이야기는 마을이며 시골에서도 깨어나지만 서울이며 작은고장 마을지기 손끝에서도 깨어납니다.
더 좋은 책이 아니어도, 스스로 사랑할 책이면 되어요. 더 많은 책이 아니라도, 스스로 살림하는 눈빛을 일으키는 책이면 되어요. 때로는 빈손에 빈발이 되어 홀가분히 춤추고 노래하면서 풀밭에 드러누워 하늘바라기를 하면 되고요. 글로도 읽지만 눈으로도 읽고 살갗으로도 읽고 마음으로도 읽으며 풀꽃내음으로도 읽습니다.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