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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궂은 말씨 손질하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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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우리말 : 얄궂은 말씨 손질하기 3

 

가운데 것 있다

 

우리말 ‘가운데’는 “먹는 가운데”나 “일하는 가운데”처럼 안 씁니다. 이런 자리에는 ‘동안’이나 ‘사이’를 넣어요. “그런 가운데”는 ‘그동안·그사이’로 고칠 노릇이요, ‘그런데·그러나’로 고쳐도 어울립니다. 보기글은 “어떤 것이 성숙으로 가는 길인지”처럼 쓰며 ‘것’이 군더더기입니다. “어떤 길이 어른스러운지”나 “무르익는 길이 어디인지”쯤으로 손봅니다. ‘있다’는 “-하고 있다”처럼 쓰면 겹말입니다. “의심하고 있었다”는 “의심하였다”로 먼저 고쳐쓰고, ‘묻다·되묻다’나 ‘헤맸다’로 더 고쳐씁니다. 

​​

그런 가운데 나는 어떤 것이 성숙으로 가는 길인지 스스로 의심하고 있었다

→ 그동안 나는 무르익는 길이 어디인지 스스로 헤매었다

→ 그사이 나는 어른스런 길이 어떠한지 스스로 되물었다

《평론가 매혈기》(김영진, 마음산책, 2007) 37쪽

 

 

차제 고식적 운영 전문경영인

 

뭔가 있어 보이려고 애쓸수록 군말이 붙습니다. 더 드러내려고 할 적에는 겹말이 불거집니다. 틀을 세우거나 내세우려는 마음이기에 딱딱하거나 센 말씨를 고른다고 하지만, 스스로 할 말이 없거나 생각이 아직 얕은 탓에 갖가지 일본스런 한자말로 허울을 씌우지 싶습니다. 이제부터 겉힘을 빼기를 바라요. 그때그때 엉성히 쓰던 말씨를 털기로 해요. 확 손보면서 제대로 말빛을 추스르는 살림꾼 눈빛으로 나아가기를 빕니다. ​

차제에 지금까지의 고식적인 운영에서 과감히 벗어나 전문경영인에 의한 책임경영체제로 전환한다면

→ 때마침 이제까지 땜질하던 길에서 확 벗어나 살림꾼한테 제대로 맡긴다면

→ 여태까지 엉성히 꾸리던 틀을 다 벗어나 살림꾼한테 맡긴다면

《차라리 깃발을 내려라》(전 출판저널 기자들, 지호, 2002) 5쪽

 

 

대안 위한 공론장 계기 고대

 

이제는 슬슬 새길을 찾을 때입니다. 겉치레로 가득한 글이 아닌, 속을 가꾸는 글로 손을 맞잡는 새빛을 헤아릴 때입니다. 열린마당을 마련하자면, 나눔터를 열자면, 그야말로 딱딱하거나 낡은 굴레를 스스로 벗어야 합니다. 바라거나 꿈꾸거나 기다리는 길이라면 어린이 눈높이로 보면서 어린이랑 함께 걸어가도록 마음을 기울이면 좋겠어요. 누구한테나 열어 놓고서 마주하자면, 바로 어린이가 활짝 웃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울 만해야겠지요.

 

차제에 대안을 위한 공론장이 열리는 계기가 되기를 고대합니다

→ 곧 새길을 찾는 열린터를 마련하기를 바랍니다

→ 머잖아 새길을 찾는 마당을 열기를 꿈꿉니다

→ 슬슬 새롭게 살피는 판을 열면 좋겠습니다

《제줏말 작은사전》(김학준, 제라헌, 2021) 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