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한실 글님 ]
울산고을 우리말 땅이름 살펴보기
1. 울주군 두서면 보안골을 가운데 두고(1)
울주군 두서면은 처음 경주군 외남면에 딸렸는데, 1906해에 울산군 두서면이 되고 1914해에 다시 떼고 붙이고 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보안골은 옛날부터 사람들이 불러오던 이름인데, 왜놈종살이 뒤로 복안(伏安)이라고 쓰면서, 요즘은 보안이라 소리내는 이가 드물다.
오늘날 복안리라고 부르는 보안골 안에는 네 마을이 있는데, 볕바른 한가운데 있는 볕달(양지)마을이 가장 크고, 그 마녘(남쪽)으로 천마메 기슭에 자리잡은 응달(음지)마을이 있고, 응달마을 앞에 솟은 절터메(또는 성불암메라고도함)를 사이에 두고 응달마을에셔 보면 새녘에 있고, 볕달마을에서 보면 새마녘(동남쪽)에 자리잡은 새터마을이 있고, 이 세 마을보다 큰겨랑 윗쪽에 있는 안에(내와), 바데(외와) 마을 쪽으로 한참 올라가서 천마메 달갯골을 마주 보고 자리잡은 당수마을, 이렇게 네 마을을 통틀어 보안(흔히 보안사일래)이라 불렀다.
새터마을에서 마녘으로 당만디고개를 넘어가면 마넉굴(미호) 마을이 아미메(또는 헤미메) 기슭에 펼쳐지는데, 길다랗게 절터메와 삼봉메를 등지고 웃마넉골(상동), 가운데마넉골(중동), 아랫마넉골(하동)이 자리잡고 있다. 마을 앞쪽에 마넉골 거랑이 흘러가고 거랑 너머로 마넉골 들이 넓게 펼쳐진 그림 같은 마을이 마넉골이다. 마넉골 거랑물은 탑골 백운메 감태오름에서 흘러내려 아름다운 가메들을 굽이 돌아 마넉골을 지나 삼정골, 고지피이, 백년, 장치, 반구대, 한실같은 빼어나게 아름다운 마을과 골을 거쳐 태화가람으로 흘러든다.
보안골에서 큰거랑(형산가람 웃녘)을 따라 내려가면 살거내(활천) 마을이 자리잡고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가면 서라벌(경주)에서 가마메(부산)로 가는 큰길(이른바 신작로)이 지나가는 덤밑(봉계) 마을이 나온다.
살거내는 쉰 해 앞에 빠른길(고속도로)이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며 동네를 두 동강 낸 뒤로 절처럼 고요하던 마을이 시끄럽기 짝이 없어졌는데, 오늘날엔 빠른긴수렛길(고속철도)이 두 동강난 웃살거내를 다시 갈라치고 지나가면서 마을이 세 동강이 났다. 거기다 마을 아래쪽에 살거내 나들목(활천 인터체인지)이 생긴데다, 마을앞 나즈막한 메를 통째로 밀어 떼짓곳(공단)을 만드는 바람에 아늑하던 살거내 마실이 결딴이 나버렸다.
덤밑 저잣거리는 나흩날과 아흐렛날 저자가 열리던 큰 저잣거리였다. 이틑날과 이렛날 똑같이 서는 서라벌(경주) 저자와 어양(언양) 저자 사이에 자리잡은 덤밑 저자는 서라벌쪽 개미더미(이조), 안심이, 비지, 돌꼬지 같은 마을에서부터 어양쪽 너부(인보), 서빳골(신전),돈골(전읍), 마넉골 사람들까지, 또 지실령(치술령) 아래에 자리잡은 배내. 굼말, 못안같은 여러 마을 사람들과 백운메 아래에 자리 잡은 안에, 바데 사람들까지 다 모여들던 큰 저잣거리였다.
먼저 새터마을 둘레에 남아있는 우리말 땅이름을 꼼꼼하게 살펴보면 대단히 반갑게도, 또 놀랍게도 내이름, 메이름, 골이름, 들이름에 한자말이 거의 끼어들지 않고 우리말 이름이 곳곳에 그대로 살아있다.
새터마을은 절터메 높새녘(동북쪽)기슭에 자리잡고 있어 마을 재(성)노릇하는 메는 절터메다. 절터메 한 자락이 새녁으로 흘러내렸다 당만디 고개에서 다시 치고 올라가 삼봉메를 이룬다. 그러니까 당만디 고개에서 새터마을로 들어오면 오른쪽 메가 삼봉메다. 삼봉메는 높새녘으로 곧 살거내 쪽으로 뻗어내리며 하늬녘으로 골짜기와 등성이를 갖추는데 큰갓재이, 작은갓재이, 앞봇갓, 채봉골, 집막재이로 이어지며 새터마을 앞쪽으로 펼쳐진다.
당만디고개에서 새터마을로 올 때 왼쪽 성불암메 첫골짜기가 중산골(성불암 중 주검 사른 골)이고, 절터메 한 자락이 긴 등대가 되어 새터마을 앞까지 길게 내려뻗는다. 삼봉메와 절터메 사이를 흐르는 내가 웃거랑이고 성불암메 절터에서 쏟물(폭포)로 떨어지는 보캐 물탕을 지나 내려오는 물이 새터 앞거랑물이다.(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