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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궂은 말씨 손질하기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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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우리말 : 얄궂은 말씨 손질하기 9

 

ㄱ. 뒤섞인 가운데 새들이 날고 있다

​​

무늬만 한글이도록 글을 쓰는 분이 늘어납니다. 보기글에는 한자말도 영어도 깃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보기글을 우리말씨라고는 여길 수 없습니다. “뒤섞인 가운데”는 옮김말씨하고 일본말씨가 뒤섞입니다. 영어 ‘-ing’ 꼴을 일본에서 ‘中’으로 옮기던 말씨를 ‘가운데’로 바꾼들 우리말씨이지 않아요. “뒤섞이고”라고만 적을 노릇입니다. 꽃이 피거나 풀이 날 적에 우리말씨로는 “꽃들이 핀다”나 “풀들이 난다”처럼 말하지 않습니다. 비가 올 적에 “빗방울들이 떨어진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들’은 아무 데나 안 붙입니다. 또한 “날고 있다”가 아닌 “난다”나 “날아간다”나 “날아오른다”로 적어야 우리말씨예요. 씨앗을 흙에 묻을 적에 “씨앗들을 흙들에 묻는다”고 하지 않아요. “씨앗을 흙에 묻는다”라 합니다. 옷에 먼지가 묻을 적에 “옷에 먼지들이 묻는다”가 아닌 “옷에 먼지가 묻는다”라 해야 우리말씨입니다.

낮과 밤이 뒤섞인 가운데 새들이 날고 있다

→ 낮과 밤이 뒤섞이고 새가 난다

→ 낮밤이 뒤섞이고 새가 날아간다

→ 낮밤이 뒤섞인 채 새가 날아오른다

《오늘 하루가 작은 일생》(우미하라 준코/서혜영 옮김, 니케북스, 2018) 91쪽

 

 

ㄴ. 자녀 간 분쟁 소식 접하다

​자녀(子女) : 아들과 딸을 아울러 이르는 말

간(間) : 1. 한 대상에서 다른 대상까지의 사이 2. ‘관계’의 뜻을 나타내는 말 3. 앞에 나열된 말 가운데 어느 쪽인지를 가리지 않는다는 뜻을 나타내는 말

분쟁(紛爭) : 말썽을 일으키어 시끄럽고 복잡하게 다툼 ≒ 분경

소식(消息) : 1.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사정을 알리는 말이나 글. ‘알림’으로 순화 ≒ 성문(聲問)·식모(息耗)·풍신(風信) 2. 천지의 시운(時運)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순환하는 일

접하다(接-) : 1. 소식이나 명령 따위를 듣거나 받다 2. 귀신을 받아들여 신통력을 가지다 3. 이어서 닿다 4. 가까이 대하다 5. 직선 또는 곡선이 다른 곡선과 한 점에서 만나다

​아이를 바라봅니다. 아이들은 다툴 때가 있을 수 있으나, 늘 사이좋게 어울리게 마련입니다. 딸아들을 길들이려 하면 아이들이 쉽게 다툽니다. 아들딸이 저마다 밝고 맑게 놀면서 풀꽃나무를 사랑하도록 부드러이 어우러지면 아이들은 언제나 어깨동무예요. 아이가 싸운다고 누가 보고서 말하면 무슨 생각을 하나요. 아이들이 다툰 얘기를 들으면 어떤 마음인가요. 사랑을 잊기에 다투고, 살림을 잊으면서 싸워요. 사랑을 헤아리면 서로 아끼면서 말이 밝고, 살림을 가꾸면 함께 돌보면서 말이 빛납니다. 

자녀 간 분쟁 소식을 접할 때면

→ 아이가 다툰다는 말을 들으면

→ 아이들이 다툰다고 들을 때면

《꿈결에 시를 베다》(손세실리아, 실천문학사, 2014) 102쪽

 

 

ㄷ. 해학과 재치 번득여 관중을 파안대소케

​정도(程度) : 1. 사물의 성질이나 가치를 양부(良否), 우열 따위에서 본 분량이나 수준 2. 알맞은 한도 3. 그만큼가량의 분량

해학(諧謔) : 익살스럽고도 품위가 있는 말이나 행동 ≒ 배회(俳?)·호해·회해

재치(才致) : 눈치 빠른 재주. 또는 능란한 솜씨나 말씨

관중(觀衆) : 운동 경기 따위를 구경하기 위하여 모인 사람들

파안대소(破顔大笑) : 매우 즐거운 표정으로 활짝 웃음

​낱말책을 펴면 한자말 ‘정도’를 “그만큼가량의 분량”으로 풀이하기도 하는데, 무슨 소리일까요? ‘만큼·가량·분량’을 더해서 ‘정도’를 풀이해도 될까요? 우리말 ‘만큼’을 찬찬히 안 쓰다 보니 이런 겹말풀이를 하면서도 스스로 못 알아챕니다. 우리말 ‘익살’을 한자로 옮기니 ‘해학’이요, 우리말 ‘번뜩이다’를 한자로 옮겨 ‘재치’입니다. 보기글은 “재치가 번득여”로 적으니 겹말이기까지 합니다. “관중을 파안대소케 한다”는 옮김말씨예요. 우리말씨는 “-게 한다”가 아닌 “한다”입니다. “사람들이 활짝 웃는다”나 “사람들이 깔깔거린다”로 고쳐씁니다. ​

가슴이 후련할 정도로 해학과 재치가 번득여 관중을 파안대소케 한다

→ 가슴이 후련할 만큼 익살스럽고 번득여 사람들이 깔깔거린다

→ 가슴이 후련하도록 재미나고 반짝여 사람들이 웃음꽃이다

《시간창고로 가는 길》(신현림, 마음산책, 2001) 1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