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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책 읽기 31 우체부 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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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우체부 곰》

피브 워딩턴·셀비 워딩턴

김세희 옮김

비룡소

2002.1.28.

이제는 어릴 적만큼 말을 더듬지 않지만, 낯을 가리고 말더듬이로 어린날을 보내면서 “넌 커서 뭐가 되겠니?”라든지 “넌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니?” 같은 소리를 으레 들었습니다. 말을 안 해도 되는 일이라든지, 굳이 사람들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무엇일까 하고 돌아보다가 ‘우체부’가 보였어요. ‘등기’라면 사람을 마주해야 하지만, 글월집(편지함)에 차곡차곡 꽂고, 글월을 추스르면서 마을길이며 골목이며 고샅을 거니는 우체부라는 길이 말더듬이한테 어울릴 만하리라 여겼습니다. 《우체부 곰》은 글월나름이가 보내는 하루를 보여줍니다. 곰아이(곰인형) 모습인 글월나름이는 언제나 똑같이 하루를 열고 똑같이 거닐고 똑같이 이웃을 마주하고 똑같이 씻고서 똑같이 쉬며 잠자리에 듭니다. 그런데 늘 똑같은 일이라 하더라도 글월나름이가 손에 쥔 글월은 모두 다릅니다. 다 다른 사람들이 노상 새롭게 이야기를 갈무리하면서 주고받는 글월입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똑같이 일하지만, 한 해 내내 새롭게 마주하면서 길을 잇는 일인 글월나름이라고 여길 만합니다. 한 걸음을 디디고 두 발짝을 나아갑니다. 다시 한 걸음을 밟고 새로 두 발짝을 걸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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