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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03 나무처럼 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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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03 나무처럼 서기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

유영만 글

나무생각

2017.11.28.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를 2021.12.17.에 처음 장만했다. 이 책이 내 손에 들어온 그날 하루는 일을 나가지 않았다. 얼굴도 안 씻고 마냥 책을 읽었다. 그날은 화담 서경덕 소설 두 자락도 슥 읽었다.

 

《나무는 나무라지 않는다》를 읽을 적에, 보랏빛과 노란 띠종이를 붙여 가면서 읽었다. 몇 군데나 띠종이를 붙였나 나중에 세니 스물세 군데이다. 오늘 한 해하고 일곱 달 만에 다시 읽으면서 책 귀퉁이를 접기로 한다. 예전에 읽을 적하고 얼마나 마음이 맞으려나 하고 헤아려 본다.

 

그런데 귀퉁이를 접은 데는 열로 줄었다. 더구나 예전에 띠종이를 붙인 곳하고 겹치면서 마음에 드는 대목은 딱 한 군데이다. 이 하나에는, 스님이 두드리는 나무방울(목탁)을 살구나무로 짠다는 이야기가 흐른다.

 

책을 덮고서 생각에 잠긴다. 어떻게 열아홉 달 만에 ‘마음에 닿는 대목’이 확 줄어들까. 더구나, 예전에 읽을 적하고 오늘 되읽을 적에 마음이 닿는 대목이 한 군데뿐일 수 있을까?

 

다시 책을 편다. 이 책을 쓴 분은 시집을 읽는 분 같다. 니체, 이성복, 김훈, 논어, 카슨, 신용목, 기형도, 베토벤, 김수영을 데려와서 여러모로 빗대는 이야기를 펴기도 한다. 그래, 그렇구나. 나는 열아홉 달 앞서만 해도 ‘이름난 글지기(작가)’가 쓴 글이라면 덮어놓고 훌륭하다고 여기는 버릇이 있었다. 그 뒤로 오늘이라고 해서 이 버릇이 다 사라졌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예전처럼 ‘글지기 이름값(지명도)’만으로 책을 사거나 빌리지는 않는다.

 

이제 나는 내 하루를 글로 쓰는 길을 걸으려고 하다 보니, ‘아무리 훌륭하다고 여기는 글’이라 하더라도, 책에 이렇게 자꾸 따오려 하면 눈도 마음도 안 간다. 좀 못나거나 투박하더라도 ‘글을 쓰는 사람이 스스로 누리고 겪은 하루’를 적을 일이라고 본다.

 

이름난 여러 사람들 글을 데려오면 ‘우리가 쓴 글이나 책’이 더욱 돋보일까? 오히려 우리 글을 죽이는 굴레는 아닐까.

 

그러나 나부터 뉘우친다. 나도 그야말로 얼마 앞서까지 ‘글이름이 높은 분들 글’을 외우거나 누리집(블로그)에 올려야 나 또한 멋스럽거나 높아 보인다고 여기곤 했다.

 

우리 집은 아파트 육 층이다. 비바람이 칠 적에 창밖을 보면 나무 꼭대기가 보인다. 나무가 더위나 추위를 견디고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 잘 버티어낼까 걱정스럽곤 하다.

 

아무튼, 이 책을 쓴 분은 ‘배롱나무’를 놓고서 글을 쓸 적에 “처음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적더라. 이런 글을 다시 읽다가, 글쓴이가 이 책에 다루는 나무를 ‘숲에서 자라는 나무’로 만나보기는 했을까 궁금했다. 지식으로 그러모아서 ‘아는 척’하면서 여러 글지기 글을 따오는 책을 슥 써내지는 않았을까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을 되읽고 나서 한 가지 꿈을 마음에 품는다. 나무를 떠올리는 일인데, 내가 스스로 나무가 되는 일이다. 옷을 훌훌 털어낸, 발가벗은 몸으로, 나무처럼 벌판이나 숲에 가만히 바람을 맞으면서 자란다고 생각해 본다. 나무처럼 맨몸으로 숲에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는지 꿈꾸어 본다.

 

2023. 07. 22.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