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27 책이름에 낚였지만
《날씨의 맛》
알랭 코르뱅 외
김혜연 옮김
책세상
2016.3.30.
《날씨의 맛》을 장만해서 읽던, 세 해 앞서 겨울을 떠올린다. 2020년 겨울,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도 덮으면서도 머리가 휑했다. 마음도 휑했다. 글밭(문장)을 넓히려고 온누리(우주)를 알고 싶었다. 날씨가 내 마음을 어떻게 열어 줄까 궁금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2023년 가을에 이 책을 다시 읽자니 아무래도 책이름(제목)에 낚였구나 싶다. 책이름에 이끌려서 책을 산 지난날이란, 허울이 좋아 보이면 덥석 집어무는 어리석은 마음이리라.
하늘을 다스리는 해와 비와 바람과 눈과 안개와 천둥 번개를 한 갈래씩 다루면 꽉 찰 듯한데, 《날씨의 맛》은 역사학자 같은 분들이 쓴 글을 모았다. “영원히 내릴 것처럼 계속되는 질척하고 고약하고 밉살스러운 비” 같은 대목을 읽다가 놀랐다. 스탕달이 쓴 글에서 뽑았다는데, 비를 싫어하며 이렇게 적었단다. 《날씨의 맛》을 엮은 사람은 스스로 해나 비나 바람을 느낀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 자꾸자꾸 다른 이름난 사람들 말을 따온다.
해를 나쁘게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인간들 건강이나 열정이나 기질과 만족감을 결정짓는 것은 기후와 장소 대기와 물의 특성이다” 같은 대목은 마음에 들었다. 다만, 글을 왜 이렇게 어렵게 꾸며서 쓸까? 사람은 날씨와 바람과 물에 따라 삶과 숨결이 다르다고 말하면 되지 않을까? 쉽게 쓰면 글이 아니고, 어렵게 써야 글이 될까? 누구나 쉽게 알아듣도록 쓰는 글로는 책을 엮지 못 할까?
“넓고 습한 고장에서는 늘 사람이 무르고 햇빛에 많이 노출될수록 다혈질이고 잔인하여 열정적이고 풍습이 거칠고, 햇빛에 덜 노출될수록 침울하고 자신들의 열정을 제어할 줄 안다” 같은 대목을 곱씹는다. 숲이 있고 해를 고스란히 누려도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기 힘들 수 있다면, 숲이 없는 잿빛(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마음은 무척 사납고 메마르겠지.
내가 어릴 적을 떠올린다. 경북 의성 멧골에서 자라던 어린 날에는, 추우면 바람을 막아주는 멧비탈에서 햇볕을 쬐었다. 참 포근했다. 하루글(일기)을 쓰면 날씨를 빠트리지 않고 넣었다. 우리 집 세 아이 일기장에도 그날 날씨가 꼬박꼬박 적혔다. 날씨를 비, 맑음, 흐림으로만 적어도 그날을 쉽게 그릴 수 있고, 그날 하루가 왜 그랬는지 날씨를 거슬러서 어림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어른이 되어 글(수필과 문학)을 배우려고 도서관에 가서 문학강좌를 들을 적에는, 내가 쓰는 글에 날씨를 쓰지 말라고 하더라.
해 비 바람 안개 구름 눈 번개 천둥에서 태어난 말이 꼬리를 문다. 내 몸에는 저 날씨가 흐른다. 나는 날씨를 품으면서 살아간다. 해처럼 환하고 따뜻하게, 비처럼 차분하게, 바람처럼 개구지게, 안개처럼 슬쩍 감추고, 구름처럼 놀고 노래하는 마음이 자란다. 한 톨 밥알을 먹으면 볍씨를 논에 뿌리고 해바람비에 싹을 틔워 키우던 마음결이 나한테 스민다. 능금이 천둥 번개를 견디던 마음도 능금을 먹으면서 고스란히 떨리듯 스민다. 내가 먹고 마시는 모든 것들에 저 날씨가 양념으로 섞이는 셈이다.
참외를 먹으면 참외 씨앗이 고스란히 똥으로 나오듯이 먹은 대로 나온다. 해 비 바람 안개 구름 번개 천둥을 먹고 살아가니, 늘 새로운 날씨를 빼다 닮는다. 땅에 깃든 모두를 고르게 비추고 보듬는 해처럼, 모든 숨결을 낳고 촉촉이 적시는 비처럼, 숨으로 입김을 불어넣는 바람처럼, 하늘이 느끼는 마음을 우리 몸에 담다가 부싯돌이 일어나면 온갖 이야기가 드러난다.
말로 글로 몸짓으로. 우리는 성을 내어도 땅을 다스리는 하늘은 눈처럼 모두 덮으면서 다독이며 키워낸다. 불뚝 고약한 얼굴로 고개를 내밀고 나오더라도 흔들리지 말자. 불쑥 나오는 날씨 맛을 가다듬으면서 나를 이바지하도록 다스리자. 늘 똑같은 듯 다르게 하늘이 펼치는 날씨가 저를 닮고 따뜻하게 촉촉하게 시원하게 흐르듯 살자. 해바람비랑 눈 안개 구름 번개 천둥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무럭무럭 자라자. 나도 더 자라야겠다.
2023.09.08.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