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41 나무한테서 배우는
《나무야 나무야》
신영복
돌베개
1996.9.12.
《나무야 나무야》를 쓴 신영복 님은 내가 태어난 해에 감옥에 들어갔다. 감옥에서 스무 해 넘게 있다가, 내가 고등학교를 마친 다음인 88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풀려났다. 신영복 님이 쓴 다른 책을 다섯 해 앞서 읽은 적 있다. 이 책 《나무야 나무야》가 나오던 해를 돌아보면, 그때 우리 집 둘째가 아홉 달이었다. 이 갓난아기를 시골집에 맡겼다. 그때까지 시골에 둔 첫째 아이를 데리고 나와서 어린이집에 맡겼다. 갓난아기를 돌볼 적에는 첫째 아이랑 떨어졌고, 첫째 아이를 데려오면서 둘째 아이를 다시 시골집에 맡기면서 맞벌이를 했다. 이러면서 주말에 시골로 가서 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두 아이를 낳아 돌보던 즈음에는 책하고 멀었다. 아니, 책을 읽겠다는 생각조차 못 했다. 그때에는 알아볼 수도 읽을 수도 없던 책인데, 이제 첫째 아이랑 둘째 아이는 어른으로 컸다. 다들 따로 살림을 차려서 나갔다.
《나무야 나무야》에 부여 이야기가 나온다. 문득 첫째 아이 돌잔치를 하던 때가 생각난다. 그때 우리 아버지가 우리 집, 그러니까 내가 따로 살림을 낸 집에 처음으로 와서 노래를 불렀다. 그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리 아버지 노래를 들었다. 우리 아버지는 ‘꿈꾸는 백마강’과 ‘동숙의 노래’를 불렀다. 그날 우리 아버지가 부른 노래를 듣고서 백마강이라는 이름을 알았다.
올해 한가위 며칠 앞서 아버지 꿈을 꿨다. 시월 끝무렵이 아버지가 흙으로 돌아간 날이다. 마을에 소나무는 얼마 없는데 우리 아버지는 소나무와 같이 묻혔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책이름이 ‘나무야 나무야’일는지 갸우뚱했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갸우뚱했다. 곰곰이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별에서 나무가 무엇이든 다 짓는다. 사람이나 짐승은 뭘 짓기보다는 쓰기만 한다. 이런 얼거리를 빗대려고 붙인 책이름일까?
아이들이 어릴 적에 가끔 안동댐에 함께 마실을 갔다. 안동댐에 가는 길인 임청각 앞에는, 길 한가운데에 회화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즈믄 해쯤 된 나무가 길 가운데 있기에, 사람들은 이 나무를 베려고 했다는데, 이 나무를 베려고 할 때마다 사람들한테 사달이 났다지. 도끼를 찍으면 그 사람이 숨을 거둔다는 말이 강파르게 돌기까지 하고.
그 오랜 나무가 아니더라도, 나무는 함부로 건들지 않아야 한다고 듣고 배웠다. 우리는 의성 멧마을에서 땔감으로 삼으려고 어린나무를 치기는 했어도, 오랜나무는 함부로 안 건드렸다. 이제 와 돌아보면, 예부터 어른들이 아이들을 몸으로 가르치고 살림으로 보여주었지 싶다. 숲이 살아야 사람도 살 수 있고, 나무하고 사람이 어우러져야 오래오래 살림을 이을 수 있다는 깨우침을 넌지시 알려준 셈이다.
우리 아버지는 하늘이 준 숨을 다 쉬고 가셨다. 아버지하고 묻힌 나무도 제 숨을 다 쉬었으려나. 아버지가 묻힌 곳을 둘러싼 나무숲이란, 아버지를 떠올릴 적마다 푸르게 숨쉬고 생각하라는 마음을 일러준다고 생각한다. 하루를 짓는 삶도, 글을 쓰는 삶도, 나무를 헤아리는 마음으로 다스리면 되겠지.
어른이라면 나무한테서 배우고, 나무를 아이한테 가르치리라. 어른이 아니기에 나무를 등지고, 나무한테서 못 배우니, 아이들한테 나무를 얘기하지 못 하거나 가르치지 못 하리라.
2023. 10. 04.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