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책숲마실
누가 사읽는가
― 부산 〈국제서적〉
책이란 마음을 틔우는 조그마한 씨앗이면서, 이 마음에 스스로 사랑을 심는 길을 넌지시 비추는 빛줄기인 줄 천천히 받아들였습니다. 열 살 무렵에 흰고니나 여우나 지게꾼이나 옛 시골사람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책이란 싱그러운 이야기샘이라고 느꼈어요. 예전에는 ‘마을책집’보다는 ‘글붓집(문방부)에 딸린 책시렁’이 흔했습니다. 어린이는 ‘글붓집 책시렁’에서 동화책이나 만화책을 만났고, 어른은 큰책집보다는 조그마한 책집에 “이 책 좀 들여놓아 주십시오” 하고 여쭈고서 여러 날 기다린 끝에 받곤 했어요.
요새야 누리책집에서 바로바로 살 뿐 아니라, 하루조차 안 기다리고 책을 받는다고 하지만, 손에 쥐어 차근차근 넘기는 책은 빨리 읽어치우는 종이뭉치가 아니었어요. 두고두고 되읽으면서 마음을 새기고 가꾸는 빛씨앗인 책입니다.
푸름이하고 어린이는, 책을 안 사더라도 책집마실을 하는 틈을 내는 마음으로도 넉넉히 아름답고 사랑스럽다고 느껴요. 책시렁을 돌아보는 눈망울로도 즐겁게 생각을 밝힐 수 있는 푸름이입니다. 골마루를 거니는 발걸음으로도 신나게 하루를 노래할 수 있는 어린이예요.
느긋하지 않다면 책을 못 읽고 글을 못 씁니다. 느긋할 때라야 하늘빛을 읽고 풀빛을 살피고 풀벌레노래에 귀를 기울이면서 책이며 글을 가까이합니다. 이윽고 집살림을 돌아볼 만하고 어느새 마을살림을 새삼스레 일구는 길을 찾을 테고요.
보수동 〈국제서적〉에 들어섭니다. 빗물에 젖고 곰팡이가 먹었으나 ‘대본소판 강경옥 현재진행형’ 꾸러미가 있습니다. 망설입니다. 빗물에 안 젖고 곰팡이를 안 먹은 ‘대본소판 강경옥 만화책’을 헌책집에서 만나기란 아득합니다. 아니, 오늘 눈앞에서 이 그림꽃(만화)을 만나고 만질 수 있으니 고맙습니다.
책도 글도 삶도 사랑도, 언제나 ‘어제·오늘·모레(과거·현재·미래)’를 하나로 잇지 싶어요. 저마다 다르게 하루를 살아내면서 모든 날을 새롭게 잇고 얽고 마주하고 사귑니다. 속으로 끄응 하고 한숨을 쉬다가 덥석 품습니다. 고흥으로 데려가서 이레쯤 해바라기를 시키면서 이 사랑스러운 꾸러미를 토닥이기로 합니다.
책을 사읽을 수 있다면, 스스로 삶에 틈을 낸다는 뜻입니다. 쇳덩이(자동차) 없이 두다리나 두바퀴로 느긋이 책집마실을 할 수 있다면, 스스로 삶에 낸 틈에 사랑씨앗을 심는다는 뜻입니다. 큰책집이건 작은책집이건 모두 반기면서 책빛으로 물들 수 있다면, 스스로 삶자락에 꿈씨앗도 나란히 심는다는 뜻입니다. 손때 묻은 책은 행주로 잘 닦고서 해바람에 말리면 됩니다. 모든 손때란 손빛이요 손길입니다.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