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책숲마실
파란바닥
― 인천 〈모갈1호〉
우리 집 큰아이는 돌을 맞이하기 앞서 찰칵이를 손에 쥐었습니다. 한 손에는 붓을 쥐고, 다른 손에는 찰칵이를 쥐었어요. 어머니가 쥐는 뜨개바늘은 이따금 쥘 뿐, 아버지가 쥐는 찰칵이하고 붓을 으레 낚아챘습니다. 이러다가 열 살 즈음부터 찰칵이는 시큰둥하더니 거의 붓하고 부엌칼을 쥡니다. 작은아이는 찰칵이는 시큰둥한 채 뛰어놀며 자라다가 낫이랑 도끼랑 호미랑 삽을 으레 쥐더니, 어느 날부터 누나 곁에서 붓을 쥐고, 또 찰칵이를 자주 쥡니다. 작은아이도 가끔 부엌칼을 쥡니다.
우리 보금자리는 나무를 천천히 늘립니다. 나무는 서둘러 자라지 않으니 얼른 심어서 빨리 키워야 하지 않습니다. 열매를 주렁주렁 달아도 반갑고, 열매가 없이 지나가도 고맙습니다. 나무는 늘 우리 곁에 있기에 흐뭇합니다.
한봄볕을 누리면서 인천 배다리 〈모갈1호〉로 걸어갑니다. 해는 언제나 고루 비춥니다. 어느 곳만 더 비추지 않아요. 어느 곳을 덜 비추지 않습니다. 바람도 어느 곳에나 찾아갑니다. 바람이 안 찾아가는 데는 없어요.
우리는 한겨레라고 일컫습니다. 하늘겨레이자 해겨레이고, 하나인 겨레라는 뜻인데, 너랑 나를 가르려는 하나가 아닌, 너도 나도 나란하다는 뜻인 하나입니다. 이 ‘한’을 넣는 한봄이고 한가을입니다. 예부터 ‘한길’은 사람을 비롯해 뭇숨결이 두루 드나드는 자리예요. 부릉부릉 내달리기 좋은 데가 한길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갈수록 한길(큰길)에서 사람이 밀려나고, 나무도 들꽃도 풀벌레도 나비도 쫓겨납니다. 인천 벼슬아치는 이 배다리를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차곡차곡 걸어온 길은, 새롭게 걸어가는 길하고 만나는, 반짝이는 하루로 누립니다. 차근차근 걸어가는 길은, 새삼스레 마주하는 이웃하고 빙그레 웃으면서, 함께 노래하는 하루로 피어납니다.
느긋이 거닐 수 있는 곳에서 책을 읽습니다. 느슨히 쉴 수 있는 곳에서 살림을 짓습니다. 넉넉히 나눌 수 있는 곳에서 마을이 태어나고 자리잡습니다. 나라도, 고을도, 숲도, 배움터도, 책집도 돈으로 쌓거나 세우지 않아요. 언제나 마음으로 빚고 노느는 어울림마당입니다.
인천으로 바깥일을 보러 가는 아버지를 배웅하는 우리 집 아이들은 “모든 사람이 파란별을 그리면 아름다울 텐데요.” 하고 얘기합니다. 파란하늘빛을 품은 파란별을 그린다면, 이 별이 살아나겠지요. 파란별이란 하늘빛을 품은 별입니다. 낮하늘도 밤하늘도 담는 별입니다. 파랗기에 바람이고, 새파란 바다입니다. 바탕이란, 하늘빛으로 다다르려는 밑바닥이요, 발바닥이고, 손바닥입니다.
ㅅㄴ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