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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13 늦겨울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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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글님 ]

 

우리말 13  늦겨울 비

 

봄을 몰고 오는 비입니다. 어제 봄맞이(입춘)였습니다. 아침에 내리는 이 비는 봄을 그리는 비이면서 겨울을 보내는 비입니다. 늦겨울비이고, 이른봄비입니다. 구름이 아침해를 가려 어둡고 찌뿌둥합니다. 내내 이불을 뒤집어쓴 채 쉬고 싶은 날입니다. 늦잠꾸러기이고 싶습니다. 찬비는 흙을 흔들어 풀을 깨우고 나무를 깨우고 꽃망울을 깨웁니다. 장대비처럼 세차지 않아요. 가랑비처럼 부슬부슬 내립니다. 하늘을 말끔히 씻고 뿌연 먼지를 닦아요. 맵찬 바람이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면 한 꺼풀 누그러져요. 비 오니 날궂이 해요. 배추지짐 먹고, 수꾸떡 먹어요. 겨우내 자란 새싹을 모판에 옮겨심어요. 처마에서 작대기도 다듬고, 집안에서 쉽니다. 비는 겨울머리에서는 추위를 부추기지만, 여름머리에서는 무더위를 식혀요. 철이 바꾸는 비입니다. 섣달그믐을 지나가는 늦겨울비를 보며 묵은 마음도 씻어냅니다.

 

2024. 2. 7.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