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우리말
얄궂은 말씨
ㄱ. 펼쳐지고 푸르러지고
우리는 ‘-지다’를 잘 안 씁니다. ‘사라지다·없어지다’나 ‘누그러지다·미어지다’처럼 쓰기도 하지만, 이 보기글처럼 ‘펼쳐지다’나 ‘푸르러지고’처럼 쓰지는 않아요. 우리말씨는 워낙 이렇습니다. 그래서 “휜 허리는 곧고”나 “흰 머리카락은 푸르고”로 손질합니다. 때로는 ‘휜’이나 ‘흰’을 아예 덜어냅니다. 이 보기글은 말놀이처럼 ‘휜·흰’을 넣었구나 싶습니다만, 말씨를 망가뜨리는 얼거리라면 말놀이가 아닌 말장난이나 말치레입니다. “이제 허리는 펴고”로 앞자락을 열고서, “어느새 머리카락은 푸르고”처럼 뒷자락을 이을 수 있어요. 앞에만 ‘이제’를 넣어도 어울립니다. ㅅㄴㄹ
휜 허리는 곧게 펼쳐지고, 흰 머리카락은 푸르러지고
→ 휜 허리는 곧고, 흰 머리카락은 푸르고
→ 이제 허리는 펴고, 머리카락은 푸르고
《노래는 최선을 다해 곡선이다》(함민복, 문학동네, 2019) 20쪽
ㄴ. 사소한 낱말들 실은 지탱 -들의 ㅁ 확인
사소하다(些少-) : 보잘것없이 작거나 적다
실은(實-) : 실제로는. 또는 사실대로 말하자면
지탱(支撑) : 오래 버티거나 배겨 냄 ≒ 탱지
확인(確認) : 틀림없이 그러한가를 알아보거나 인정함
말이란 크거나 작지 않습니다. 다만, 수수하게 쓰는 말이 있고, 여느 살림을 그리는 말이 있어요. 심심하거나 가볍게 나누는 말도 있어요. 알고 보면 수수한 말 한 마디가 즐겁습니다. 막상 심심한 말이 더욱 반가워요. 정작 가볍게 나눈 말 한 마디로 웃음꽃씨가 퍼집니다. 버티는 기둥이요, 견디는 들보입니다. 이 보기글에는 ‘-의 + ㅁ’ 같은 일본말씨에 옮김말씨도 끼어드는군요. 가볍게 가다듬습니다. 수수하게 쓰는 우리말을 알아보기를 바라요. 가볍게 나누는 우리말씨를 살펴보기를 바랍니다. ㅅㄴㄹ
사소한 낱말들이 실은 두 팔을 치켜들고 저를 지탱해 주는 작은 기둥들의 이름임을 확인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 정작 수수한 낱말이 두 팔을 치켜들고 저를 버티어 주는 작은 기둥을 이르는 줄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 그러나 심심한 낱말이 두 팔을 치켜들고 저를 견뎌 주는 작은 기둥인 줄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일상의 낱말들》(김원영·김소영·이길보라·최태규, 사계쩔 2022) 4쪽
ㄷ. 사실 -고 계시다
사실(事實) : 1. 실제로 있었던 일이나 현재에 있는 일 2.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한 일을 솔직하게 말할 때 쓰는 말 3. 자신의 말이 옳다고 강조할 때 쓰는 말
잘못 쓰는 옮김말씨인 “-고 있다”를 제대로 깨닫지 않기에, 이 보기글처럼 “알고 계시죠”처럼 쓰는 분이 제법 있습니다. 높임말씨는 “알고 계시죠”가 아닌 “아시죠”로 붙여야 알맞습니다. 한자말 ‘사실’은 앞말을 받아서 뒤로 이을 적에 안 씁니다. 이때에는 ‘줄’이나 ‘-는데’를 써요. “이기는 줄 아시죠”나 “이기는데 아시죠”로 적어야 우리말씨입니다. ㅅㄴㄹ
사랑이 이긴다는 사실, 알고 계시죠?
→ 사랑이 이기는 줄 아시죠?
→ 사랑이 이기는데 아시죠?
《일상의 낱말들》(김원영·김소영·이길보라·최태규, 사계쩔 2022) 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