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26 한때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 에크하르트 톨레 노혜숙·유영일 옮김 양문 2018.10.30. 첫 아이가 태어나면서 늘 앞길을 걱정했다. 스물다섯에 이미 마흔을 챙기려고 앞만 보고 달렸다. 그날이 오면 다 이룰 듯한 생각에 버티기도 했다. 한 푼을 더 모아야 우리 아이 하나 더 가르친다는 생각뿐이었다. 컴퓨터를 배우러 갔다가 이 돈을 아껴서 우리 아이 가르쳐야지 하고 마음을 돌렸다. 꽃꽂이를 하다가도 이 돈 아껴서 우리 아이들 한 달 학원을 보내야지 하면서 그만두었다. 흙을 빚다가도 우리 아이 예쁜 옷 사줄 수 있는데 하고 멈추었다. 나는 돈을 모으려는 마음으로 하루를 그냥 써버린 듯하다. 늘 모레에 모레에 모레만 챙기려던 셈이다. 어떤 사람을 보면, 하루에 몇 가지 삶으로 쪼개며 달린다. 일 초도 오 초도 무턱대고 기다리지 않고 이쪽저쪽 몇 사람 몫으로 일을 하면서 틈새를 아끼는 사람도 있다. 이 몇 초로 한삶을 더 누린다는 마음인지 모른다. 나도 대구에 와서 처음 세 해는 일이 바빴다. 아주 바빴다. 가게에 손님이 많아서 바쁘다기보다는 낯선 일을 맡느라 일이 서툴러서 몇 곱절이나 바빴던 나날을 건너왔다.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44 《제1권력》 히로세 다카시 이규원 옮김 프로메테우스출판사 2010.3.20. 《제1권력》(히로세 다카시/이규원 옮김, 프로메테우스출판사, 2010)은 글쓴이가 앞서 선보인 《누가 존 웨인을 죽였는가》를 가다듬고 보탠 판입니다. ‘자본 그들은 어떻게 역사를 소유해 왔는가’처럼 작은이름을 붙인 이 꾸러미는 숱한 말썽과 말밥이 어떤 뒷낯으로 하나하나 생겨났나 하고 짚습니다. 우리나라가 겪은 사슬판(일제강점기·식민지)뿐 아니라 한겨레싸움(한국전쟁)에도 깊이 발을 담근 그들(권력자)은 독일 나치하고도 얽혔다지요. 2022년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로 쳐들어갑니다. 러시아는 2022년에 앞서도 쳐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뿐 아니라 미국도 푸른별 여러 나라로 몰래 쳐들어가기 일쑤였고, 숱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한싸움(민족분쟁)에도 깊이 얽혔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이쪽하고 저쪽이 엇갈려 미워하면서 싸우는 얼개이지만, 뒷낯을 보면 ‘그들 한놈’이 슬그머니 두 일터(회사)로 갈라서 이쪽하고 저쪽에 조금 다른 총칼(전쟁무기)을 팔아먹은 발자취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총칼은 돈이 쏟아지는 장사판일 뿐 아니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43 《오만한 제국》 하워드 진 이아정 옮김 당대 2001.1.9. 《오만한 제국》(하워드 진/이아정 옮김, 당대, 2001)을 되읽으며 생각합니다. 요즈음 이분 책을 곁에 두는 분이 얼마나 있을는지 모르나, 이분이 싸움날개(전투폭격기)를 몰며 꽝꽝 터뜨리던 무렵 스스로 지저른 죽임짓을 밝히는 대목은 앞으로도 눈여겨볼 글줄이라고 느낍니다. 어느 쪽만 ‘때린이(가해자)’이지 않습니다. 스스로 올바르다(정의의 편)고 외치면서 끔찍하고 무시무시하게 죽임짓을 일삼은 무리가 있어요. 하워드 진이라는 분은 그이 스스로 ‘미국 싸움날개’를 몰지 않았다면, 또 그 싸움날개가 무슨 뜻이었는지 스스로 돌아보지 않았다면, ‘역사’라는 이름을 내세운 온갖 거짓말을 캐내려는 마음으로 나아가지 못 했으리라 느낍니다. 바보짓을 일삼은 적이 있어도 깨우치고 거듭날 수 있습니다. 바보짓을 한 적이 없더라도 오히려 바보스러운 굴레에 스스로 갇혀서 못 헤어나오기도 합니다. 눈을 뜨고 참길을 걸어가면서 참사람이 되려는 마음을 언제나 되새기려 하지 않는다면, 그만 나라(정부)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휘둘리는 허수아비 노릇을 하기 일쑤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25 귀청을 찢는 소리 《떨림과 울림》 김상욱 지음 동아시아 2018.10.30. 지지난 십이월에 귀에 소리가 나서 애를 먹었다. 잠이 들려고 하면 귀에서 챙챙거리는 소리가 터지고 잠을 못 이루었다. 약을 먹고 좀 나아지는 듯하더니 요즘 들어 또 말썽이다. 귀에 바람이 꽉 차는 듯하다. 윙윙거리는 소리가 찌릿찌릿 흐르는 듯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귀가 터지려는 듯싶다. 하품을 하면 뭔가 확 뚫리고, 자면서 귓바퀴를 돌아가며 쭉쭉 잡아당기면 한결 낫다. 바닥에 눕거나 자리에 누워 잠들려고 가만히 있으면 집이 흔들린다. 나뭇가지가 바람에 휘청이다가 제자리로 온 듯하다. 늦은밤에는 길에 차도 많이 다니지 않는데 집이 흔들린다. 어느 날은, 이렇게 흔들린다고 생각하면 집이 무너질까 걱정스러웠다. 짝한테 말을 하니 헛소리로 듣는다. 어떤 날은 글을 쓰는데 책상도 흔들린다. 아주 여리게 팔로 느낀다. 지하도 건너 기차가 달리거나 지하철이 세게 달려서 우리 집이 살짝 떨리는 줄 알았다. 지난해 봄에 장만한 《떨림과 울림》을 다시 읽었다. 멈추었다고 여기지만, 알고 보면 다 떤다고 한다. 이집트 피라미드도 떨고, 집도 떨고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24 이 나이에 만화를 《붓다 1》 테즈카 오사무 지음 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2011.4.25. 만화책 《붓다 1》를 읽는다. ‘붓다’라는 이름을 붙인 비슷한 책이 많지만, 이 만화책은 글하고 그림이 나란하다. 어찌 보면, 그림이 덤으로 있으니 글에 나오는 ‘붓다’ 삶을 헤아리는 길을 살며서 돕는 듯하다. 《붓다 1》는 싯다르타 또는 석가모니라는 이름으로 태어나는 왕자를 다룬다. 히말리야산맥 기슭 인더스강 둘레에서 가뭄과 싸우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어떤 하루인지를 먼저 보여준다. 브라만이 온나라를 다스린다. 다스리는 사람들은 겉치레로 헤프다고 한다. 신분차별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학벌로 나누고 직업으로 나눈다. 벌이도 틈이 난다. 문학도 마찬가지이다. 창작반을 나왔는지 따지고, 이름있는 잡지에 글을 실었는지 묻는다. 이름을 드날린 사람만 받아들일 뿐 아니라, 문조차 좁다. 언론에서 책이나 글을 소개해 주어 힘을 받은 몇몇 사람들은 여러모로 인맥에 학맥에 여러 줄을 대더라. 다들 우루루 줄서기를 한다. 줄을 잘 서야 빨리 이름을 낼 수 있다. 그러나 나도 그런 줄에 닿고 싶었고, 그런 모임에 이름을 끼워 보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에서 짓는 글살림”은 숲을 사랑하는 눈빛으로 시골자락에서 아이들하고 살림을 짓는 길에 새롭게 맞아들여 누리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숲에서 짓는 글살림 41. 봄샘 봄을 앞둔 겨울은 추위가 모집니다. 봄이 다가오니 봄을 시샘한다고도 하지만, 아직 겨울이니 겨울답게 바람이 매섭고 날은 싸늘하겠지요. 봄을 시샘한다는 추위를 놓고 옛사람은 재미나게 말을 엮었습니다. 꽃샘추위 잎샘추위 봄을 시샘하는 날씨라면 ‘봄샘’이라 하면 될 텐데, 굳이 ‘꽃샘’하고 ‘잎샘’이라는 이름으로 지었어요. 이 대목을 도두보면 좋겠어요. 그만큼 이 나라 흙지기는 언제나 꽃을 바라보고 잎을 살펴보았다는 뜻이 흘러요. 언제나 꽃이며 잎을 돌보고 곁에 두면서 마음으로 품었구나 싶은 숨결을 느낄 만해요. 꽃샘나이 봄샘나이 꽃이며 잎을 샘내는 추위를 나타내는 낱말을 헤아리다가 문득 새말을 짓고 싶었습니다. 이리하여 ‘꽃샘나이·봄샘나이’를 엮었어요. 이 낱말은 무엇을 가리킬까요? 바로 ‘사춘기’입니다. 이제 봄처럼 피어나면서 무럭무럭 철이 들 즈음인 나이를 놓고 숱한 어른들은 아이들이 사납거나 날카롭거나 차갑다고들 말해요. 여러모로 보면 ‘사춘기’라는 한자말 이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23 살리는 바탕 《흙-문명을 앗아간 지구의 살갗》 데이비드 몽고메리 이수영 옮김 삼천리 2010.11.26. 밭에 지렁이가 살면 흙이 보드랍다. 지렁이가 땅속으로 다니면 흙이 부슬부슬 일어나 숨을 쉬고, 지렁이똥으로 흙이 기름지다. 흙에는 작은 숨결이 살면서 흙을 붙잡는다. 흙이 날아가지 않는다. 흙은 지렁이에 숱한 숨결을 동무로 삼고, 마른 가랑잎을 덮고, 풀과 꽃과 나무를 이웃으로 삼아서 땅을 지킨다. 살아숨쉬는 흙은 모두 씨앗을 키운다. 풀이 뿌리를 내리는 켜는 내 살갗보다 겉흙이 더 얇다고 한다. 이 얇은 흙이 우리를 먹여살리고, 더 깊은 흙에서는 작은 벌레가 먹고살고, 더욱 깊은 흙에서는 더 작은 숨결이 보금자리로 삼아서 어우러진단다. 흙이 늘 새롭게 숨을 쉬도록 이바지하는 모든 숨결이라고 느낀다. 우리가 화학비료나 농약을 치면 풀도 죽고 풀벌레도 죽고 지렁이도 죽는다. 이때에 우리 사람은 안 죽을 수 있을까? 우리도 똑같이 죽는 셈 아닐까? 흙에 깃들던 작은 숨결이 다 죽는데 사람만 안 죽을 수 있을까? 서로 얽히니, 흙에서 먹고 흙으로 돌아가면서 흙이 살아난다. 흙이 풀꽃나무가 될 씨앗을 키우지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22 길들인다 《어린 왕자》 생텍쥐페리 이원두 옮김 생각이큰나무 1999.11.1 큰딸이 어릴 적에 읽던 《어린 왕자》는 큰딸도 작은딸도 막내아들도 다 크고 나서 안 버렸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아이들만 보았고, 나도 나중에 언젠가 보리라 마음먹으면서 그대로 두었다. 이제 스물다섯 해 만에 펴 본다. 《어린 왕자》에 나오는 아이는, 뭐든 한 가지를 물으면 끝없이 다른 여러 가지를 묻고 또 묻는다. 곰곰이 생각하면, 우리 아이들도 늘 묻고 또 물으며 끝없이 물었다. 아마 온누리 아이들은 무엇이든 자꾸자꾸 물어보고 또 물어보다가 스스로 생각하는 틈을 누리지 않을까? 다 큰 막내아들이지만, 아직 어리던 무렵, 초등학교를 마치면 꼭 집에 전화를 했다. 어느 날은 느닷없이 “집에 내 장난감 언제 와? 빨리 보내 줘!” 하며 징징댔다. 그때에는 아이가 하는 말도 징징대는 마음도 받아들이기 힘들 만큼 바빠서 “학원 선생님 전화 왔어! 얼른 끊어.” 했다. 그날 아이는 씩씩거렸고, 실을 끊는 작은 가위를 손에 쥐더니, 내 노트북 이음줄을 가위로 끊는 흉내를 냈다. 작은 가위를 손에 쥐고서 씩씩거리는 아이를 살살 달래면서…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21 애벌레처럼 《곤충·책》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윤효진 옮김 양문 2004.10.15. 오늘 숲에서 애벌레를 만났다. 길 가운데를 기어가더라. 밟히지 말라고 가랑잎이 쌓인 쪽으로 옮겨 주었다. “나비로 곧 태어나렴.” 하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크고 작은 나비가 팔랑이는 모습을 새삼스레 바라본다. 《곤충·책》을 두 해 만에 다시 읽는다. 처음 읽을 적에는 뭐가 좋은지 몰랐다. 벌레를 다룬 책이잖은가. 우리 아들은 개미만 보아도 무서워하는데, 나는 바퀴벌레를 보기만 해도 무섭다. 처음 본 바퀴벌레는 손가락 두 마디 크기였다. 도시로 나와서 살던 3층 집이었는데, 밖에서 가스줄이나 전깃줄을 타고서 들어오는 듯했다. 12층 집으로 옮기고 나서는 더 안 보는가 싶더니, 몇 달 지나지 않아 바퀴벌레가 또 나왔다. 개수대에도 옷칸에도 나왔다. 어디로 들어왔을까? 왜 들어올까? 《곤충·책》을 읽으면, 파인애플잎에 알을 낳아 태어나는 바퀴벌레 이야기가 있다. 바퀴벌레가 파인애플을 먹으면서 산다고? 우리나라 바퀴벌레는 무엇을 먹으면서 살까? 시골에서는 바퀴벌레를 볼 일이 없다시피 하지만, 도시에서는 바퀴벌레가 아주 흔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20 빈손 《무소유》 법정 지음 범우사 1976.4.15. 예전에 나온 낡은 판으로 《무소유》를 장만하던 날은 뛸 듯이 기뻤다. 나는 절에 다니지 않지만, 교회에도 나가지 않지만, 법정 스님 글이 그냥 좋았다. 스님 글을 읽으면서 나는 너무 많이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짐이 늘어났다. 어쩌면 법정 스님은 아이를 안 낳고 안 돌보셨기 때문에 ‘빈손’이나 ‘빈몸’을 얘기했는지 모른다. 배냇저고리를 입히고 기저귀를 빨고 포대기에 이불도 빨래하는 살림에 ‘빈손’이나 ‘빈몸’이기는 어렵다. 아니, 말이 안 되겠지. 그러나 아기가 맨몸으로 풀밭에서 뒹굴며 자란다면 빈손이나 빈몸이어도 된다. 아기가 맨발에 맨손으로 풀꽃나무하고 동무하며 자란다면 얼마든지 빈손이나 빈몸일 만하리라. 예전에 어느 이웃은 큰집을 얻고서 비싼 접시에 오백만 원이 넘는 침대를 사더라. 집을 잘 꾸며야 한다고 하던데, 나는 다르게 생각했다. 비싸면서 좋다는 것을 들여야 ‘살림’이지는 않으리라. 얼마 안 되더라도 길이나 멧골에서 꽃내음을 맡고, 이따금 꽃집에서 꽃 한 줌을 사서 집에 두면 넉넉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아이들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