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3] 가뭄 멧허리로 다니던 길이 넓어졌다. 왼쪽 숲은 잔디나 풀이 자라는 비렁인데 마흔 해 만에 오니 숲으로 우거졌다. 내리막길 아래는 자두밭으로 바뀌고 둘레에 쇠기둥을 꽂았다. 비가 안 와도 물 걱정이 없는 듯하다. 고개 들어 등성이가 만나는 멧봉우리를 보자니 사람 얼굴을 닮았다. 이마하고 코하고 입에 목줄기가 드러난다. 마을 들머리에서 보면 하늘을 바라보고 누운 듯하다. 내가 열세 살 적에 마을에 가뭄이 들었다. 비가 오지 않아 논바닥이 쩍쩍 갈라졌다. 손가락이 들어갈 만큼 갈라진 논에 뛰어가다 보면 발끝이 걸려 넘어진다. 물이 있어야 모내기를 하고 모를 심어야 쌀이 나오는데, 마을사람이 모였다. 비를 내려 달라고 멧님(산신령)한테 비손을 올린다고 사람을 뽑는다. 집안에 크고 작은 일이 없는 사람, 그해에 죽음을 치르지 않은 사람을 둘 뽑았다. 아버지가 뽑혔다. 혼자 멧골에 가서 비손하기가 무섭기에 두 사람이 같이 간다. 우리 아버지는 빔(한복)이 없어 흰 두루마기만 걸친다. 아버지는 이른저녁을 먹고 금성산에 갔다. 아버지는 밤새도록 멧골에 머물며 비손했다. 새벽에 우리 아버지가 내려오자마자 마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2] 느티나무 나무가 참 천천히 자라는 듯하다. 느티나무는 우리 마을에서 가장 크다. 학교 다닐 적에 늘 나무 밑으로 지나간다. 학교 마치고 오면 가방을 던져 놓고 굵은 나무에 올라가서 논다.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나무에 잘 올라갔다. 나무가 커서 손에 잡히지도 발을 올리기도 옮기기도 힘들어도 아랑곳 안 했다. 오월이면 마을에서 그네를 단다. 마을 언저리에서 어른들이 모여 한 줌씩 짚을 엮는다. 혼자서는 따지 못하고 여럿이 잡는다. 새끼줄은 한 움큼이나 되는 밧줄처럼 엮는다. 길게 꽈서 느티나무에 짊어지고 올라가서 그네를 거는데 사다리는 없고 맨몸으로 나무에 올라가고 도우면서 그네를 단다. 그네를 한 판 타려고 줄을 오래 선다. 한 집에 언니오빠에 동생이 줄줄이 있고 예순 집이 모여 사니, 아이들은 얼마나 많은지 줄을 기다려도 두세 판 탈까 싶다. 혼자 타다가 둘이서 마주보고 탄다. 뒤에서 그네를 세게 밀면 논에 떨어지는 듯하다. 나는 그네를 무척 타고 싶은데 너무 무서웠다. 그네가 높이 올라갈 적에는 무릎을 굽혔다 펼쳤다 밀고 그네가 내려올 적에는 가만히 선다. 혼자 타도 박자를 잘 맞춰야 하고 둘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1] 깨 농약을 물에 섞어서 등에 짊어지고 약을 친 어머니가 바람결에 약을 마셔서 그런지 어질어질하다고 눕는다. 붉은상추가 있어 낮밥을 먼저 먹으려는데 어머니가 일어나 쌈장을 한다. 된장을 푸러 가다가 주저앉는다. 나는 종지를 받아 일러준 단지를 찾아 된장을 네 국자를 푼다. 어머니가 참기름을 듬뿍 붓는다. 참기름을 골고루 섞고 한 통 따로 담아 챙긴다. 부엌에 참기름 냄새가 가득하다. 어머니는 지난해부터 깨를 사서 참기름을 짠다. 내가 어릴 적에는 깨를 심었다. 깨가 다 자라면 목에 닿을 만한 키였다. 잎에 푸른 깨벌레가 꼬불꼬불 올라가면 깜짝 놀랐다. 깨를 찔 때가 다가오면 아버지가 낫으로 이파리를 쓱쓱 치고 나무 같은 깨를 벤다. 마늘 묶을 때처럼 두 단씩 두 쪽을 묶고 네 단을 하나로 묶는다. 밭이랑에 탑처럼 세워 놓고 깨나무가 누렇게 말라 탁 벌어지면 밭에 천막을 깔고 어머니가 하나씩 잡고 작대기로 살살 턴다. 한 벌 털고 다시 네 단을 아버지가 묶어 두면 나는 밑으로 기어 다니며 놀았다. 어머니는 한 톨이라도 깨가 땅에 떨어질까 싶어 살살 터는데 깨단 밑으로 지나가면서 흔들려 깨가 땅에 많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0] 금낭화 고샅길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가면 대문 바로 밑에 분홍빛 고운 금낭화가 피었다. 기다란 줄기에 금낭화가 주렁주렁 달려 꽃가지가 휘청인다. 마당에 들어서 허리춤에 오는 담벼락에 발길이 멈춘다. 도랑 하나 사이 둔 아랫집 뒤꼍이다. 어린 담쟁이덩굴이 흙벽을 타고 지붕에 기웃한다. 흙벽을 버텨 주는 나무가 까맣다. 마흔 해 동안 살던 우리 집은 허물고 빨간 벽돌로 집을 새로 지었는데 앞집은 내가 어린 날 보던 그대로 사람 손길이 닿지 않았다. 앞집에 숙자가 살았다. 나보다 한 살이 적은 데 샘에 갈 적마다 지나간다. 마당도 작고 집이 작아 오두막 같았다. 숙자 아버지는 늘 술에 절어 큰소리를 쳤다. 시골에서는 이 집 저 집 내 집처럼 드나드는데 숙자 집에는 아버지가 무서워 겨우 한 번 놀러 갔다. 언니오빠하고 뛰어놀 적에 숙자는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았다.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얼마 안 되어 숙자가 죽었다. 읍내서 기차에 치였다. 졸업하던 날은 넓은 집에 사는 소꿉친구 남자애가 대구서 기찻길로 뛰어들었다. 우리 집 흙담 밑에도 금낭화가 몇 뿌리 피었다. 아랫집에서 씨앗이 날아왔는지 엄마가…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토박이말 살리기]1-46 더넘이 어제는 또 하나 뜻깊은 배움이 이루어진 날입니다. 고운빛꽃배곳 충무공초등학교 노래를 만드신 가락지음이 염경아 님께서 우리 아이들에게 토박이말을 잘 살린 노랫말 짓는 수를 알려 주러 오셨습니다. 어제까지 모두 세 차례 걸쳐서 배움을 도와 주시고 아이들이 만든 노랫말 가운데 좋은 것을 뽑아 가락을 붙여 주실 것입니다. 새롭게 거둔 노래 열매를 많은 분들께 들려 드릴 날이 기다려집니다. 오늘 알려 드릴 토박이말은 '더넘이'입니다. 이 말을 말집(사전)에서는 '넘겨 맡은 걱정거리'로 풀이를 하고 있고 줄여서 '더넘'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더넘이'의 보기월은 없고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 '더넘'의 보기월로 "자식을 둔 사람은 더넘이 많다."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어떤 일을 맡고 난 뒤에 걱정을 하는 때가 더러 있습니다. 또는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일어나서 걱정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할 일이 많은데 다른 사람이 해달라는 일을 마지못해 맡고 나면 그 일이 바로 더넘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그릇에 물을 담을 때 물이 많아서 그릇에 넘치는 것과 같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판가름 새벽에 뒤꼍 풀을 좀 베고서 마당에 들어서니 제비 둘이 또 처마 밑을 살핍니다. 우리 집 마당에서 빙빙 둘러보며 다시 날아가는 제비한테 “얘들아, 집을 새로 지으렴. 너희 잘 짓잖니?” 하고 속삭이면서 날렵한 꽁무니를 쳐다봅니다. 오월이 깊으니 장미나무에 꽃송이가 서른 넘게 맺습니다. 가늘구나 싶은 덩굴줄기 하나에 꽃송이가 이토록 잔뜩 맺습니다. 찔레나무를 들여다보아도 꽃송이가 흐드러집니다. 꽃내음을 맡고 잎내음을 머금으면서 생각합니다. 우리는 마음에 어떤 씨앗이며 이야기를 담을 적에 빛날까요? 멍울이란 자취는 어떻게 들추어야 할까요? 쑤셔서는 풀지 못합니다. 차근차근 앞뒤를 다독이면서 찬찬히 나아갈 앞길을 가눌 적에 풀어요. 누구를 뒤좇기보다는, 지난날을 뒤적이기보다는, 예부터 오늘에 이르는 흐름을 가름하고, 모레로 거듭날 길을 짚으면서 여기에서 할 일을 판가름할 만합니다. 돌아보기에 알아봅니다. 재지 않고 보기에 속내를 읽습니다. 어느 대목이든…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락가락 국어사전’은 국어사전이란 이름으로 나오는,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낱말풀이를 살피면서 잘못되거나 엉뚱하거나 뒤틀리거나 엉성하구나 싶은 대목을 하나하나 짚으면서, 앞으로 어떻게 추스르거나 바로잡거나 고쳐야 우리말꽃을 살찌울 만한가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꼭지입니다. 더 헤아리면 슬기롭습니다 [오락가락 국어사전 14] 마무리로 먹는 밥 한자말이나 영어를 쓰기에 잘못일 수 없습니다. 헤아리지 않고 말하기에 잘못이 되기 마련입니다. 찬찬히 볼 노릇이고, 한 벌 더 헤아릴 노릇입니다. 여러 판 살폈어도 실마리를 못 푼다면 자꾸자꾸 들여다보거나 오랫동안 생각해야지요. 고작 몇 벌 어림하고서 실타래를 못 풀었다고 아무 말이나 쓴다면 생각이며 삶이며 낱말책이 모두 엉망이 됩니다. 느긋하게 더 마주하면서 말결을 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뭇잎 : 나무의 잎 ≒ 목엽(木葉)·수엽(樹葉) 목엽(木葉) : = 나뭇잎 수엽(樹葉) : = 나뭇잎 나무가 맺는 잎은 ‘나뭇잎’입니다. 이를 ‘목엽’이나 ‘수엽’으로 적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비슷한말이라고 달아 놓을 까닭이 없이 털어내고, ‘목엽·수엽’은 낱말책에서 덜어내야지 싶습니다
[ 배달겨레소리 바람 바람 글님 ] [토박이말 찾기 놀이]1-7 이레끝(주말) 비가 내렸습니다. 쉬지 않고 내리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이 밖에 가서 무엇을 하기에는 알맞지 않은 날씨였지 싶습니다. 비가 오기 앞에는 더워서 찬바람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 더위를 식혀주는 비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는 더위를 부르는 비라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전국초등국어교과모임에서 여름에 펴내는 책에 실을 글을 보냈습니다. 철에 맞는 토박이말을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글이 좋겠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보낸 글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찾기 놀이를 할 수 있는 놀배움감을 덤으로 보냈으니 놀이는 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찾기 놀이 놀배움감을 만들다 보니 토박이말 살리기에서 찾기 놀이도 한 지가 좀 됐다 싶어서 세어 보니 스무날이 넘었더라구요. 그래서 생각난 김에 이렇게 찾기 놀이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오늘은 토박이말 살리기 31부터 35까지 낱말과 옛날 배움책에서 캐낸 토박이말과 노래에서 길을 찾다에 나온 토박이말을 보태서 만들었습니다. 이 가운데 '놉'은 한 글자라서 찾기 놀이에 넣을 수 없어서 뺐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놀이라 여기고 찾아 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오늘도 토박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싹 오늘 하려고 생각한 일을 그다음으로 넘깁니다. 모레에는 마칠는지 모르겠으나 힘들거나 고단할 적에는 폭 쉽니다. 언뜻 보면 미루는 모습이지만, 앞으로도 즐겁게 하고 싶기에 숨을 돌린다고 여겨요. 오늘 마쳐도 좋으나 다음에 마쳐도 좋아요. 조마조마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으면서 일그림을 짜요. 차근차근 새그림을 여미고, 우리 몸이며 마음을 헤아려 앞그림을 엮습니다. 빗물이 잎망울을 적습니다. 햇볕이 꽃망울을 쓰다듬습니다. 앞꿈으로 우리 눈망울을 반짝입니다. 오래도록 꾸준히 하던 일이기에 기꺼이 내려놓습니다. 한우물을 파도 아름답고, 한우물을 물려주어도 아름답습니다. 뒷사람이 새롭게 지을 뒷길을 지켜봐요. 모두 우리 손으로 해내야 하지는 않습니다. 이 너머에는 나중에 태어나서 자랄 어린이가 펼칠, 아직 드러나지 않은 숨은빛이 있어요. 이듬해에 터질 망울이 있고, 요다음에 필 봉오리가 있어요. 새싹이 돋아요. 새빛이 퍼져요. 새날이 와요. 곧 오기도 하지만, 곧바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앉은살림 전남 고흥이라는 시골에서는 어디를 가나 먼길입니다. 바깥일을 보려면 한나절쯤 가볍게 보내면서 자리에 앉아야 해요. 버스 걸상에 앉은 엉덩이가 고단합니다. 우리 겨레는 예부터 자리살림을 했다지만, 한나절을 넘어 두나절을 앉아서 보내야 하면 온몸이 뻑적지근해요. 버스가 쉼터에 깃들 적마다 바깥에 나와서 기지개를 켭니다. 볼일을 볼 이웃고장에 닿으면 되도록 안 앉으려 해요. 서서 다니고, 서서 말하고, 서서 움직이려 합니다. 이웃님은 “좀 앉으시지요?” 하고 묻지만 “내내 앉아서 오느라 엉덩이가 짓무를 판이에요. 앞으로도 또 오래 앉아서 돌아가야 하니 그냥 서려고요.” 큰고장을 찾아가서 보면 버스나 전철에서 얼른 자리에 앉으려고 밀치는 사람이 많고, 자리에서도 더 차지하려고 몸이나 엉덩이를 이리저리 미는 사람도 많더군요. 뭐, 여기저기 다녀 보지 않은 탓에, 먼길을 널리 누려 보지 않은 탓일 테지요. 우리가 몸을 다루는 길은 여럿입니다. 앉은살이도 선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