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16 집안이라는 이름 《혼불 1》 최명희 글 한길사 1996.12.5. 《혼불 1》을 처음 장만해서 읽던 2019년 3월 26일을 돌아본다. 이날은 가게일꾼이 달삯을 미리 당겨서 달라고 했다. 어디에 쓰려고 하는지 슬쩍 물으니 은행에 빌린 돈을 갚는다고 했다. 결혼한 딸이 어디로 사라지고 은행 금리가 11% 되는 빚을 갚는다고 했다. 가게일꾼은 아저씨한테 늘 두들겨맞다가 집을 뛰쳐나온 지 열 해째란다.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데 딸은 어쩌다가 돈수렁이 얽혔더라. 퇴직금이라는 돈에 목숨을 걸은 듯싶다. 이날 나는 오그랑이도 사그랑이도 새줄랑이도 아니지만, 뿔난 마음을 감춘 채 일하는 모습을 봤다. 내가 오기를 하마하마 기다린 날 참 슬프게 보였는데 일이 커졌다. 이 삶을 어떻게든 앞당기거나 미리 갚을 수 있을까? 이 삶에 매듭삯(퇴직금)은 무엇으로 받을까. 근심에 걱정에 휩싸이면서 펼친 《혼불》은 어떤 삶을 들려주는가. 집안하고 집안이 억지로 맞추는 길은 꽃길일 수 없겠지. 꽃 같은 두 사람이 만나서 꽃 같은 집안을 가꾸어 나갈 삶길이어야 아름다울 텐데, 처음부터 꽃짝이 아닌 ‘집안이라는 이름·돈·힘’을 지키려는…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15 초원의 집 《초원의 집-첫 번째 이야기》 로라 잉걸스 와일더 글 김석희 옮김 비룡소 2005.09.25. 백 해쯤 앞서 우리는 어떻게 살았을까? 나도 어느새 나이가 들었기에, 내가 경북 의성 멧골에서 보낸 어린 나날을 돌아보면 ‘쉰 해가 지난’ 일이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하고 손가락을 꼽다가 ‘백 해가 훌쩍 지난 미국 어느 들판 이야기’가 그리 멀지않은, 어쩌면 우리가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는 조촐한 살림살이일 수 있겠다고 느낀다. 쉰 해쯤 앞서 멧골집 어린이는 멧자락을 타고 넘으면서 배움터를 다녔다. 멧골에서 사니까 늘 멧자락을 탈밖에 없었겠지만, 자동차나 버스를 타고서 집이랑 배움터를 오간다는 생각부터 없었다. 다들 걸었다. 누구나 걸었다. 어린이라면 걷다가 달리고, 뛰고, 놀고, 웃고, 노래했다. 이제 나는 대구에서 살며 자동차를 몬다. 자동차를 몰면서 대구 시내를 지나다 보면, 길에서 걸어다니는 어린이를 보기 어렵다. 나도 우리 아이를 자동차에 태워서 배움터를 보냈다. 다들 아이들을 자동차에 태워서 오간다. 요즈음은 아이들끼리 걷고, 뛰고, 달리고, 놀고, 웃고, 노래할 틈이 없다고 할 만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우리말꽃 말꽃삶 14 이해, 발달장애, 부모, 폭력 요즈음 푸름이가 ‘저미다’라는 낱말을 모른다고 어느 이웃님이 푸념을 하시기에, ‘슬라이스’라는 영어가 퍼졌기 때문이 아니라 푸름이 스스로 부엌살림을 안 하기에 모를 수밖에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부엌일을 하고 부엌살림을 익히면서 손수 밥살림을 헤아리는 나날이라면 ‘저미다’뿐 아니라 ‘다지다·빻다’가 어느 자리에서 쓰는 낱말인지 알게 마련이고, “가루가 곱다”처럼 쓰는 줄 알 만하고, “가늘게 썰다”처럼 써야 알맞은 줄 알 테지요. 말은 늘 살림살이에서 비롯합니다. 살림살이란, 삶을 누리거나 가꾸려고 펴는 손길이 깃든 길입니다. 스스로 하루를 지으면서 누리거나 다루거나 펴는 살림·살림살이인 터라, 어린이하고 푸름이는 어버이나 어른 곁에서 함께 살림을 맡거나 소꿉놀이를 해보면서 말길을 열어요. 살림이 없이는 말이 없습니다. 살림을 짓고 나누고 익히고 펴는 사이에 저절로 말길을 뻗습니다. ‘고약하다’라는 오랜 낱말이 있습니다. 이 낱말은 으레 어른이 씁니다. 어린이나 푸름이가 쓸 일은 드뭅니다. 아직 철들지 않은 어린 사람을 가볍게 나무랄 적에 ‘고약하다’라는…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말 좀 생각합시다’는 우리를 둘러싼 숱한 말을 가만히 보면서 어떻게 마음을 더 쓰면 한결 즐거우면서 쉽고 아름답고 재미나고 사랑스레 말빛을 살리거나 가꿀 만한가 하는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말 좀 생각합시다 35 봄단비 봄에 오는 비라면 ‘봄비’입니다. 한동안 가물다가 반가이 내리는 비라면 ‘단비’입니다. 그러면 여름에 내리는 비라면? 가을이나 겨울에 내리는 비라면? 이때에는 ‘여름비·가을비·겨울비’일 테지요. 여기에서 더 생각해 봅니다. 봄에 내리는 반가운 비라면? 여름이나 가을이나 겨울에 내리는 반가운 비라면? 낱말책에는 ‘봄비’부터 ‘겨울비’까지 싣습니다. ‘단비’도 싣지요. 그러나 봄에 내리는 반가운 비를 가리킬 ‘봄단비’는 없습니다. ‘여름단비·가을단비·겨울단비’도 없어요. 낱말책에 꼭 ‘봄단비’나 ‘겨울단비’를 실어야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말도 얼마든지 실을 수 있어요. 아직 낱말책에 안 실렸어도 봄에 맞이하는 단비를 가리킬 ‘봄단비’를 누구나 생각해 보거나 지어서 쓸 수 있습니다. 낱말책에 ‘꽃비’가 나옵니다. 꽃잎이 마치 비처럼 내린다고 할 적에 씁니다. 그렇다면 봄에 꽃비를 만나면 ‘봄꽃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곁말’은 곁에 두면서 마음과 생각을 살찌우도록 징검다리가 되는 말입니다. 낱말책에는 아직 없습니다. 글을 쓰는 숲노래가 지은 낱말입니다. 곁에 어떤 낱말을 놓으면서 마음이며 생각을 빛낼 적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면서 ‘곁말’ 이야기를 단출히 적어 봅니다. 숲노래 우리말 곁말 65 마침꽃 어릴 적에 배움터 길잡이는 늘 ‘종지부(終止符)’란 한자말을 썼습니다. 쉬운말 ‘마침표(-標)’가 있으나 “쉬운말은 쓰지 마. 쉬운말을 쓰면 바보가 돼!” 하고 으르렁거렸습니다. 지난 2015년부터 ‘종지부’는 낡은 일본 한자말이라서 더는 안 쓰기로 하겠다고, 아예 나라에서 못박습니다. 참 늦은 셈이지만, 이제라도 털어낸다면 나은 일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동안 이 일본 한자말을 앞세우면서 어렵게 들볶은 어른들은 “어렵게 써서 잘못했다” 하고 무릎을 꿇거나 고개를 숙였을까요. 낡은말 ‘종지부’는 이제 우리 터전에서 마침꽃을 찍고서 사라질 테지만, 아직 숱한 낡은말은 곳곳에서 활개를 칩니다. 아니, 숱한 낡은말이 낡은말인 줄 못 느끼거나 안 살피면서 그냥그냥 퍼지거나 맴돌아요. 곁에 어떤 말을 놓을 적에 스스로 빛나고 아이들이 반기는가를 헤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곁말’은 곁에 두면서 마음과 생각을 살찌우도록 징검다리가 되는 말입니다. 낱말책에는 아직 없습니다. 글을 쓰는 숲노래가 지은 낱말입니다. 곁에 어떤 낱말을 놓으면서 마음이며 생각을 빛낼 적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면서 ‘곁말’ 이야기를 단출히 적어 봅니다. 숲노래 우리말 곁말 64 숲노래 어려우면 우리말이 아닙니다. 처음 듣기에 어렵지 않아요. 우리가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도록 누린 삶하고 동떨어지기에 어렵습니다. 오늘은 어제하고 달라 옛사람처럼 살아가지 않으나, 우리 눈빛하고 마음은 늘 이곳에서 흐르는 날씨하고 풀꽃나무하고 눈비바람에 맞게 피어나면서 즐겁습니다. 저는 열 살 무렵에는 혀짤배기·말더듬이에서 벗어나려고 용썼고, 열아홉 살 무렵에는 네덜란드말을 익혀 우리말로 옮기는 길을 가려다가 우리말을 헤아리는 쪽으로 접어들며 스스로 ‘함께살기’란 이름을 지었어요. 서른아홉 살에 접어들자 새롭게 이름을 지어야겠다고 느껴 ‘숲노래’를 지었습니다. ‘함께살기’는 너나없이 어깨동무하는 푸른삶을 가리킨다면, ‘숲노래’는 누구나 푸르게 별빛이라는 사랑을 가리킵니다. ‘함께살기’는 ‘동행·공생·공유·공동체·상생·혼례·조화·하모니·균형·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곁말’은 곁에 두면서 마음과 생각을 살찌우도록 징검다리가 되는 말입니다. 낱말책에는 아직 없습니다. 글을 쓰는 숲노래가 지은 낱말입니다. 곁에 어떤 낱말을 놓으면서 마음이며 생각을 빛낼 적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면서 ‘곁말’ 이야기를 단출히 적어 봅니다. 숲노래 우리말 곁말 63 책밤수다 우리말로 우리 삶을 다시 나타낼 수 있은 지 아직 온해(100년)가 안 됩니다. 이웃나라 일본이 총칼로 찍어누르면서 일본말·일본 한자말을 퍼뜨린 마흔 해 생채기는 오늘날에도 씻지 못합니다. ‘작가와의 만남’이나 ‘북토크’도 우리말은 아니요, ‘심야책방’은 더더구나 우리말이 아닙니다. ‘-와의’는 우리말씨 아닌 일본말씨요, ‘작가(作家)’ 아닌 ‘지은이·지음이·짓는이’라 해야 우리말입니다. ‘토크’도 ‘북’도 아닌 ‘책수다’일 적에 우리말이에요. 일본 그림꽃책(만화책) 《심야식당》이 우리나라에서도 꽤 사랑받아 ‘심야○○’란 이름을 붙인 가게나 자리가 부쩍 늘었어요. 일본 그림꽃책을 처음에 ‘한밤밥집·한밤식당’으로 옮겼다면 ‘심야○○’가 아닌 ‘한밤○○’란 이름이 퍼졌을 텐데요, 퍽 알려진 이름을 따오기보다는 우리 나름대로 새롭게 이름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14 살아가는 집 《세계문화예술기행 3 스페인, 들끓는 사랑》 김혜순 학고재 1996.11.1. 《세계문화예술기행 3 스페인, 들끓는 사랑》을 처음 장만한 2018년 12월 겨울을 떠올린다. 그무렵 작은딸은 필리핀 세부로 동무하고 나들이를 갔다. 작은딸은 필리핀 나들이를 마치고 돌아오자마다 큰딸하고 대만으로 나들이를 간다고 했다. 두 딸이 나누는 말을 들으면서, 두 딸이 함께 다닐 나들이를 헤아리면서, 나도 둘 사이에 섞여 같이 나들이를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두 딸은 저희끼리 나들이를 떠났다. 나는 대구에 남아 가게일을 보았다. 아쉽고 서운한 마음을 책을 읽으면서 달랬다. 그런데 《세계문화예술기행 3》을 쓴 분은 딸하고 스페인 나들이를 했구나. 글쓴이는 “예술가는 폼잡는 엄숙주의가 말할 수 없이 싫었다” 하고 밝히면서, 세르반테스에 여러 스페인 글님 이야기와 삶을 곁들여서 줄거리를 풀어낸다. 글을 쓰는 사람은 왜 머나먼 곳으로 나들이를 가는가? 뭔가 남기고 싶은 하루를 글로 쓰는가? 어느 삶자락을 잃거나 잊지 않으려고, 어느 날 품은 꿈이 날아가지 않도록 글로 붙잡는가? 《세계문화예술기행 3》을 쓴 분은 바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13 바람 바다 숲 《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김진준 옮김 문학사상 1998.8.8. 2019년 1월에 《총, 균, 쇠》라는 책을 장만했다. 어느새 다섯 해가 지나는데, 그때에는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둘레에서 좋다고 말하는 책이면 덥석덥석 장만부터 했다. 나한테 맞는 글이 무엇인지 느긋이 살피지 않았고, 내가 글쓰기 첫걸음을 떼기에 어울리는 책을 천천히 헤아리지 않던 즈음이다. 창피한 소리인데, 누가 좋다고 하는 말을 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무턱대고 사서 쌓아두었다. 집에 좋은 책을 잔뜩 갖추면 좋은 글도 척척 나오는 줄 여겼다. 2019년에는 이 두꺼운 책을 읽으며 무엇을 느끼고 배웠을까? 2023년 8월에 다시 읽으면서 생각해 보는데, 줄거리도 이야기도 도무지 안 떠오른다. 낯선 책을 처음 읽는 듯하다. 예전에 읽고서 귀퉁이를 접은 데를 들여다보아도, 띠종이를 붙인 대목을 다시 펴 보아도, 어쩐지 썩 와닿지 않는다. 다섯 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그래, 다섯 해 사이에 두 딸이 제금을 나서 짝을 만났고, 막내가 군대를 다녀왔고, 막내가 군대에 있던 무렵 코로나가 번져 면회조차 갈 수…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12 모이터 《토리빵 1》 토리노 난코 글 이혁진 옮김 AK 커뮤니케이션즈 2011.1.30. 《토리빵》을 세 해 앞서 여름이던 이맘때 장만했다. 책을 산 지 닷새 뒤에 하얀 새우리를 샀다. 어느 날 내가 누운 창가에 참새가 날아왔다. 누운 채 가만히 바라보았다. 창틀에 앉은 참새는 내가 안쪽에서 저를 보는 줄을 모르더라. 살금살금 일어난다. 들키지 않으려고 천천히 움직인다. 가리개를 살포시 들고 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하다가 참새하고 눈이 맞았다. 여태 잘 놀던 참새가 깜짝 놀라서 포르르 날아갔다. 겨울이면 굴뚝 아닌 굴뚝, 보일러 연통에 비둘기 한 짝이 가끔 내려앉았다가 날아간다. 어쩌면 알아볼까 싶어, 에어컨 실외기에다가 물그릇을 두고 질그릇에 사과하고 감자를 담아 보았다. 새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렇게 한 달을 기다리니 드디어 새가 물을 먹으러 왔다. 대단히 기뻤다. 우리 집으로 목을 축이려고 새가 찾아오고서 여섯 달째부터는 빵을 잘게 뜯어서 날마다 두었다. 가끔 멸치하고 베이컨도 담았다. 바나나나 사과는 잘 먹지 않더라. 까치가 모이터를 짓밟아 지저분하기에 비닐을 깔았더니 바람에 휙 날아간다. 바람에 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