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53 이름값 《달에서의 하룻밤》 패티 스미스 김선형 옮김 마음산책 2021.2.15. 《달에서의 하룻밤》은 막 나와서 책집에 깔리던 2021년에 처음 사서 읽었다. 그때에는 좋았다고 느꼈는데, 요 며칠 사이에 다시 읽으니 아니더라. 소설이라기에는 심심하고 여행일지라기에는 더 심심하다. 자서전도 아니고 회고록도 아니다. 어느 한 대목도 내 마음을 찡하게 울리지 못 한다. 그런데 이태 앞서 읽을 적에는 왜 좋았다고 느꼈을까. 예전에는 못 보고 오늘은 보이는 이 틈새는 뭘까? 곰곰이 짚어 본다. 《달에서의 하룻밤》은 방바닥에 이것저것 늘어놓은 듯이 시시콜콜 되는 대로 적은 글 같다. 뭔가 잔뜩 펼치려고 하지만 막상 하나도 잇닿지 않고 어지럽달까. 술집 이야기를 하다가 대뜸 책 이야기를 하다가, 어디에서 글을 써 달라는, 이른바 청탁으로 글을 쓰는 이야기가 나오더니, 갑자기 모든 글은 가슴(심장)에서 나온다고 맺는데, 어쩐지 겉멋만 부리는 글잔치 같다. 책을 덮고서 한숨을 쉰다. 그래, 지난 2021년에 나는 아직 이름값(프로필)에 휘둘려서 책을 샀고 읽었다. 이름값이 높다는 사람들이 쓴 책을 읽어야, 나도 글쓰기를 잘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52 내가 쓰고 싶은 글 《천재 유교수의 생활 2》 야마시타 카즈미 소년 매거진 찬스 학산문화사 1996.12.25. 어제 글잔치(백일장)에서 심사를 처음 맡아 보았다. 다른 사람들이 여러 가지를 하는 동안, 나는 심사위원으로서 글을 읽고 뽑는다. 어르신들이 쓴 글은 짧고 투박했다. 거의 모든 분들이 “선생님 고맙습니다” 같은 글만 적으셨다. 어르신들 마음을 담아내지 못 했다. 글을 이제 처음으로 배운 어르신들은 하고픈 말이 많을 텐데, 하나같이 “글을 배워서 좋다”는 말뿐이더라. 심사를 마치고 밥자리로 옮겼다. 함께 심사를 맡은 어떤 분이 ‘이름난 사람들’하고 어울리면서 술을 곤드레만드레 마신 일을 늘어놓는다. 그렇게 ‘이름난 사람들’하고 어울리고 술도 잔뜩 마셔야 좋은 글이 나온다면서, 바르게 살아서는 좋은 글이 나오지 않는다고 못을 박는다. 이분 말씀을 한참 듣다가 “그렇게 집밖으로 돌지 않고도 반듯하게 마음을 다스리며 글을 쓸 수 있다”고 대꾸했다. 그분 말마따나 글 좀 써 보겠다면서 흥청망청 마시며 어울리면 무엇을 배울까? 그렇게 배워서 쓰는 글이라면 집안은 뒷전이다. 내 대꾸에 그분은 그동안 집안에 마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51 한 그루 나무 《랩걸》 호프 자런 김희정 옮김 알마 2017.2.16. 지난해 여름에 어느 이웃이 《랩걸》이 좋으니 읽어 보라고 했다. 그분은 하루에 몇 쪽씩 아껴가면서 읽는다고 했다. 참 좋은 책인가 하고 여기다가 다른 이웃한테 《랩걸》을 사서 읽으려 한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이 훨씬 낫다고 하더라. 이분 얘기로는, 과학자는 나무를 과학으로 볼 뿐이라서, 나무 마음에 다가서지 않는다고 하더라. 이와 달리 《풀꽃나무하고 놀던 나날》은 나무를 오롯이 나무로 바라보고서 마음으로 다가서려고 하기에 ‘과학자 아닌 사람’이 쓴 책이 나무도 풀꽃도 제대로 풀어내어 들려준다고 하더라. 그러고 보니, 사백 쪽을 웃도는 두꺼운 책에는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이라고 적혔다. 아무래도 나는 이 말에 낚인 듯하다. 나무도 사랑도 아닌, 나무를 앞세워 ‘여성 과학자’라는 이름을 풀어놓은 줄거리이다. 그래, 글쓴이는 나무를 본 적이 없구나. 실험실에서만 사느라, 나무를 기웃거린 적은 있고, 나무를 뜯은 적은 있어도, 나무가 나무로 살아가는 숲을 품으면서 살아간 적은 없구나. 내가 일하는 가게 모퉁이에 전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50 내 손으로 나를 《소리내는 잣나무》 블라지마르 메그레 한병석 옮김 한글샘 2007.10.20. 몸살을 앓았다. 비나리(제사) 떡을 먹은 뒤 갑자기 머리가 묵직하더니 추웠다. 끙끙 앓으며 스물한 시간을 꼬박 잤다. 다시 깨서 열 몇 시간을 또 잤다. 꿈도 꾸지 않고 잠을 이렇게 오래 잘 수 있나 싶었다. 그리 맑지 않은 몸인데 《소리내는 잣나무》를 읽었다. 두어 쪽 읽다가 잠들고, 또 일어나 몇 쪽 읽다가 잠든다. 또 읽으려고 붙잡지만 멍하다. 《소리내는 잣나무》를 읽으면 첫머리에 ‘사람이 아픈 까닭’을 짚는 대목이 나온다. 우리가 숲하고 등진 탓에 아프게 마련이고, 숲하고 등지면서 마음이 가라앉거나 얼룩지기에 자꾸 아파서 안 낫는다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스스로 마음에 사랑을 심으면, 약이나 병원이 없이도 바로 나을 수 있다고 들려준다. 우리는 늘 마음 때문에 아프다고 한다. ‘난 아파’ 하는 마음을 품기에 아플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그렇다. 딱히 아픈 데가 없어도 건강검진을 받는다. 건강검진을 받을 적에는 설마 아픈 데가 있을까 싶어 걱정을 한다. 나이가 든대서 아파야 할 까닭이 없지만, 나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49 눈으로 마음으로 《예찬》 미셀 투르니에 김화영 옮김 현대문학북스 2000.10.20. 세 해 앞서 《예찬》을 처음 읽었고, 오늘 이 책을 새로 읽었다. 세 해 앞서 이 책을 읽고서 ‘좋다’고 남겼는데, 오늘 다시 읽고는 ‘+’를 보탠다. 《예찬》은 “눈이 왕이다. 눈이 마음보다 더 중요”하다고 들려준다. 틀림없이 눈으로 많이 보고, 눈으로 느껴서 알아가는 일이 많다. 책도 거의 눈으로 보면서 읽어낸다고 여길 수 있다. 어린 날을 돌아보면, 배가 고프던 일보다 뛰놀던 일이 떠오른다. 넉넉히 먹으면서 자라지 않았지만, 우리 엄마아빠 품에 있는 동안에는 하루하루 아름답게 누렸다고 느낀다. 네발로 기던 아기는 어느새 일어나서 걸음마를 뗀다. 걸음마를 뗀 아기는 비틀비틀 걷다가 신나게 달리면서 논다. 이윽고 껑충 자랐고, 짝을 만나 어른으로 크면서, 스스로 아이를 낳아 기른다. 첫째 둘째 셋째를 낳는 동안에 나한테는 아이들만 보였다. 세 아이와 함께한 나날은 아이들을 거쳐서 말없이 무언가 보여준 나날이었다고 느낀다. 나를 보며 어머니를 다시 보았고, 어머니를 다시 보면서 앞으로 살아갈 나를 새롭게 본다. 나는 바다처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금서밭] 작게 삶으로 048 마음을 알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 정동호 옮김 책세상 2000.8.20. 얼마 앞서 수필협회에서 여는 배움마당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니체를 이야기했다. 강사는 ‘세 변화에 대하여’와 ‘읽기와 쓰기에 대하여’ 두 꼭지를 읽어 보라고 하더라. 집에 와서 살피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2010년 4월에 장만해 두었더라. ‘세 가지 변화’를 읽어 본다. 마음(정신)이 삶이라는 사막에서 어떻게 낙타가 되고 낙타가 사자가 되며 사자가 마침내 어린이가 되는가를 짧게 들려준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오아시스 때문에 벌어지는 일을 가만히 돌아본다. 눈에 보이지 않기로는, 말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말은 입으로 하고 귀로 들으니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할 텐데, 곰곰이 생각하면 말도 눈으로 본다. 눈속임이나 거짓말은 말이어도 눈에 보인다. 사랑이나 참말도 눈에 환하게 보인다. 눈으로 보거나 안 보기에 대수롭지는 않다. 눈앞에서 얌전하거나 착한 듯이 굴기에 얌전하거나 착할 수 없다. 우리 눈앞에서 안 얌전하거나 안 착하다면, 우리가 이런 모습을 못 보았더라도 안 얌전하거나 안 착한…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47 누가 시인일까 《아동시론》 이오덕 굴렁쇠 2006.11.10. 둘레를 살펴보니 배우는 사람이 많다. 아이들은 유치원과 학교를, 나처럼 아줌마들은 시를 배우고 글을 배우고 낭송을 하고 운동을 하고 산을 가고 저마다 좋아하는 일을 학교 다니듯이 돈을 내고서 배운다. 퇴직해서 배우는 사람은 일자리 걱정 돈 걱정 없어 부럽다. 어르신은 어르신대로 아이들 유치원 가듯 배움터를 간다. 참말로 우리는 배우러 태어났을까. 어르신 배움터에 가서 글을 뽑는 일을 돕기로 했다. 갑작스럽게 맡는다. 이른바 ‘심사위원’이란 자리인데, 이 자리에 가기 앞서 이오덕 님이 쓴 《아동시론》을 다시 펼친다. 시인이란 이름을 붙인 어른들은, 따로 시를 ‘짜려(구축)’고 들지만, 아이들은 ‘삶’에서 이미 얻은 노래를 ‘스스럼없이 적(기술)’는다고 한다. 그래서 “어린이는 모두 시인”이라고 들려준다. 그러니까 어른도 아이처럼 스스럼없이 삶을 바라보고 지켜보고 느끼는 대로 노래하듯 풀어내면 언제나 저절로 시가 나오고 글이 나온다고 들려준다. 우리 아들이 아직 어리던 열 살 무렵에는 참말로 시인 같았다. 문제를 풀이를 하다가 답이 뭐냐고 물으면 답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46 묻고 답하기 《나는 누구인가》 라마나 마하리쉬 이호준 옮김 청하 1987.4.25 열두 해쯤 앞서 짝이랑 홍제암이란 곳에 간 적 있다. 그때 절에서 뵌 스님한테 책을 하나 알려주시면 잘 읽어 보겠노라고 여쭈었다. 스님은 머리를 깎은 뒤로는 바깥에서 나오는 책을 읽지 않아서 잘 모른다고 하셨다. 그러다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책을 읽고서 머리를 깎았다고 하시기에 책이름을 적어 놓았다. 여섯 해쯤 앞서 드디어 《나는 누구인가》를 장만했다. 여섯 해가 걸린 셈이다. 읽다가 덮다가 했다. 읽을 만한 책을 스님한테 여쭈었으면서, 드디어 이 책을 장만했으면서, 정작 잘 읽히지 않았다. 먹고살기 바쁜 나날을 보낸다는 핑계 탓이리라. ‘나는 누구인가’ 하고 스스로 물어보면서 스스로 길을 찾을 엄두를 못 내었으니, 이 책을 펴도 하품이 나오면서 어려웠으리라. 다시 천천히 읽어 보기로 한다. 꼭 첫 줄부터 끝 줄까지 훑어야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 본다. 마음에 와닿는 대목을 살피면서 ‘나는 누구인가’ 하고 돌아볼 씨앗을 얻으면 되리라 생각해 본다. 마음이 어수선하면 입을 다물지만, 이때에는 이런저런 생각이 잔뜩 일어난다. 나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45 맨몸으로 새롭게 《80세 마리코 1》 오자와 유키 이은주 옮김 대원씨아이 2018.10.23. 그제는 짝이 시골에 가서 무와 배추를 뽑아 왔다. 짝은 얼마 앞서 몸에 칼을 댔다. 아직 개운하지 않을 텐데 시골집에 가서 시골 어른이 꾸짖는 말을 고개도 못 들며 고분고분 들었다고 한다. 짝은 시골집에 자주 전화를 하고 다녀오지만, 나는 전화도 잘 안 한다. 살갑게 하면 좋겠다고 여기면서도 정작 살갑게 말을 못 한다. 짝이랑 둘이서 가게를 꾸리는 일로도 몹시 바쁘다. 하루를 온통 쏟아서 일을 하고 난 뒤에 겨우 짬을 내어 글을 몇 줄 쓰고 싶어도 힘들고 빠듯하다. 시댁 여러 쪽에서는 우리가 시골땅을 물려받은 일로 못마땅한 눈치이다. 나는 내 땀방울이 든 땅이 아닌 그곳을 물려받을 마음이 없었다. 짝이 집안에서 아들인 탓에 물려받았다고 느낀다. 받을 마음도 없던 땅을 받느라, 우리로서는 오히려 땀방울을 잔뜩 들여 겨우 모은 돈을 세금으로 크게 물어야 했다. 시골땅을 물려받으려면 세금도 크게 물어야 하는 줄 알까? 세금 걱정은 않고서 그저 땅을 받기만 하는 줄 알까? 그렇게 받고 싶으면 아들딸 가리지 말라는 얘기를…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게 삶으로 044 하루를 배운다 《천재 유교수의 생활 1》 야마시타 카즈미 신현숙 옮김 학산문화사 1996.12.25. 세 해쯤 앞서 《천재 유교수의 생활 1》를 읽을 적에, 막내아들이 우리 엄마가 무슨 책을 읽나 하고 들여다보더니 놀렸다. “엄마는 내가 만화책 읽으면 뭐라 카더니, 와 엄마가 만화책 읽노? 읽지 마! 읽지 마!” “잘 나온 책이야, 내가 읽고 이다음에 네 아이한테 물려주려고 샀지.” 막내아들은 이렇다 할 대꾸가 더 없이, 씩 웃으며 방에서 나갔다. 이제 다 큰 막내아들이지만, 이 아이가 열 살 무렵까지는 책에 묻혀 살았다. ‘○○ 보물찾기’라든지 ‘○○ 살아남기’ 같은 만화책이 새로 나오면 어느새 알고는 엄마한테 사 달라고 졸랐다. 그때에는 어쩐지 그런 만화책은 값이 비쌌다. 막내아들은 만화책을 보고 또 보았다. 지치지도 않는지 다시 읽고 또 읽는 모습을 보며 책값이 많이 나가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문득 생각한다. 그때 우리 아들이 다른 만화책이 아니라, 《천재 유교수의 생활》 같은 만화책을 읽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들뿐 아니라 두 딸한테도 이런 만화책을 읽혔다면 좋았을 텐데 싶다. 이제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