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말 좀 생각합시다’는 우리를 둘러싼 숱한 말을 가만히 보면서 어떻게 마음을 더 쓰면 한결 즐거우면서 쉽고 아름답고 재미나고 사랑스레 말빛을 살리거나 가꿀 만한가 하는 이야기를 다루려고 합니다. 말 좀 생각합시다 45 나가는곳 일본 쇳길(전철)에는 언제부터 한글을 나란히 적었을까요? 일본 쇳길에 적힌 한글이 익숙한 분은 예전부터 그러려니 여길 수 있고, 퍽 오랜만이나 처음으로 일본마실을 한 분이라면 새삼스럽다고 여길 수 있어요. 모든 나루에 한글이 적히지는 않습니다만, 큰나루는 어김없이 한글을 적습니다. 나루이름을 한글로 적고, ‘나가는곳’이라는 글씨를 함께 적더군요.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나루에 ‘나가는곳·들어오는곳’을 적습니다. 곁들여 한자로 ‘出口·入口’를 적지요.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말이요, 무엇이 일본말일까요? 바로 ‘나가는곳·들어오는곳’이 우리말이요, ‘出口·入口’가 일본말입니다. ‘出口·入口’를 한글로 옮긴 ‘출구·입구’는 우리말일까요? 아닙니다. 일본 한자말을 한글로 옮겼을 뿐입니다. 국립국어원 낱말책을 보면 ‘출구(出口)’를 “밖으로 나갈 수 있는 통로. ‘나가는 곳’, ‘날목’으로 순화”로 풀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우리말숲 다듬읽기 22 《나무 마음 나무》 홍시야 열매하나 2023.6.22. 《나무 마음 나무》(홍시야, 열매하나, 2023)를 읽었습니다. ‘나무’ 사이에 ‘마음’이 어떻게 흐르는가 돌아보려고 지나온 나날을 글·그림으로 여민 꾸러미에는 빈자리가 많습니다. ‘빈’자리란, 비운 자리이면서, 비가 씻어낸 자리요, 비질을 하고 빗질을 하면서 새롭게 빛날 자리이니, 아직은 빚처럼 비었다고 여길 자리이게 마련입니다. 빈자리는 둥그렇습니다. 빈자리는 모나지 않습니다. 빈자리는 빗방울처럼 동글동글하지요. 빙그르르 돌듯이 춤춥니다. 곰곰이 보면, 모든 잎은 부드럽고 둥그스름합니다. 길쭉하기에 끝이 뾰족하다 싶은 잎도, 톱니를 닮은 잎도, 언제나 푸른별을 푸르게 품으면서 무엇이든 풀어내는 물빛입니다. 이슬을 머금고 빗물을 마시면서 푸른잎이에요. 그러니까 나무는 나무로 보면 되고, 마음은 마음으로 읽으면 됩니다. ‘존재·위하다’ 같은 일본말씨를 끌어들일 까닭이 없이, 푸른말을 쓰고, 숲말을 쓰고, 푸른말을 쓰며 어린이 곁에 서면 스스로 사랑입니다. ㅅㄴㄹ 사랑스러운 푸른색 행성 → 사랑스러운 푸른별 1 서로를 내보이는 삶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우리말숲 다듬읽기 19 《오십에 하는 나 공부》 남혜경 샨티 2023.6.22. 《오십에 하는 나 공부》(남혜경, 샨티, 2023)를 읽고서 생각합니다. 쉰 살은 나이가 많지도 적지도 않습니다. 쉰은 ‘쉴’ 줄 아는 나이요, ‘쉼(쉬다)’이란 몸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하늘빛을 읽는 철입니다. 책이름부터 어깨에서 힘을 빼고 “쉰에 나를 배우기”나 “쉰에 나를 보다”나 “나를 배우는 쉰 살”이나 “나를 읽는 쉰 살”처럼 수수하게 읽을 줄 안다면, ‘쉰’이 ‘숲’으로 ‘수수하게’ 나아가는 길목인 줄 알아차리겠지요. 여태껏 수수하게 쓰던 모든 말을 처음부터 새롭게 바라본다면 누구나 이 ‘쉬운 말’로 모든 삶·살림·사랑을 환하게 깨닫습니다. 늘 쓰는 수수하거나 쉬운 말을 스스로 안 바라본다면, 깨닫지도 깨우치지도 못 하는 채 쳇바퀴를 돌아요. 마음이란, 머리에서 띄운 생각을 몸을 일으켜서 일을 할 적에 삶을 겪으면서 여러 이야기를 말로 새기는 자리입니다. ‘마음·머리·몸’이 얽힌 수수께끼를 알려면 ‘말’부터 똑바로 보고 다루면 됩니다. ㅅㄴㄹ 내 옆에서 자는 거지? → 내 옆에서 자지? 8쪽 나란 존재는 대체 뭐지?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우리말꽃 말꽃삶 18 나의 내 내자 우리말은 ‘나·너’입니다. ‘나·너’는 저마다 ‘ㅣ’가 붙어서 ‘내·너’로 씁니다. “나는 너를 봐”나 “내가 너를 봐”처럼 쓰고, “네 마음은 오늘 하늘빛이야”처럼 쓰지요. 그리고 ‘저·제’를 씁니다. “저로서는 어렵습니다”나 “제가 맡을게요”처럼 쓰지요. my 私の 나의 어느새 참으로 많은 분들이 ‘나의(나 + 의)’ 같은 말씨를 뜬금없이 씁니다. 이 말씨는 오롯이 ‘私の’라는 일본말을 옮겼다고 할 만합니다. 일본사람은 영어 ‘my’를 ‘私の’로 옮기더군요. 우리나라는 스스로 영어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첫째로는 우리나라로 들어온 선교사가 영어를 알리고 가르쳤습니다. 이들 선교사는 ‘한영사전’까지 엮었지요. 이다음으로는 일본이 총칼로 쳐들어와서 억누르던 무렵 확 들어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우리 손으로 엮은 책으로 영어를 가르치지 않았어요. 선교사가 가져온 책으로 배웠거나, ‘일본사람이 영어를 배우려고 일본사람 스스로 엮은 책’을 받아들여서 배웠습니다. 일본사람은 웬만한 데마다 ‘の’를 붙여서 풀이했고, 일본책으로 영어를 배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말씨 ‘の’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곁말’은 곁에 두면서 마음과 생각을 살찌우도록 징검다리가 되는 말입니다. 낱말책에는 아직 없습니다. 글을 쓰는 숲노래가 지은 낱말입니다. 곁에 어떤 낱말을 놓으면서 마음이며 생각을 빛낼 적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면서 ‘곁말’ 이야기를 단출히 적어 봅니다. 숲노래 말빛 곁말 73 돌이나라 사내란 몸을 입고 태어나기에 잘나지 않고, 가시내란 몸으로 태어나서 잘나지 않습니다. 가시내는 가시내라는 숨결이고, 사내는 사내라는 숨빛입니다. 겉몸은 순이랑 돌이로 다를 뿐, 돌이하고 순이는 두 마음을 고루 품으면서 한 가지 몸으로 삶을 누리고 살림을 지으며 사랑을 나눕니다. 힘이 좋은 쪽이 있고, 어질면서 슬기로운 쪽이 있습니다. 참하면서 착한 쪽이 있고, 고우면서 상냥한 쪽이 있습니다. 둘은 저마다 다른 넋이면서, 사람이라는 길로는 나란한 빛입니다. 오늘날 배움터에서 가르치는 발자취(역사)를 놓고 본다면 적잖은 나날을 ‘꼰대짓(가부장제)’으로 보냈습니다. 우두머리(지도자·왕·대표)가 서는 나라에서는 언제나 고리타분한 틀에 갇혔어요. 이 우두머리는 으레 사내였고, 사내들은 끼리끼리 감투를 쓰며 곰팡내를 풍기는 수렁에 잠기면서 싸움질을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글손질 다듬읽기 10 《나의 독일어 나이》 정혜원 자구책 2021.9.13. 《나의 독일어 나이》(정혜원, 자구책, 2021)를 읽었습니다. 이 나라를 떠나 독일에서 새롭게 ‘나찾기’를 하려는 마음을 수수하게 밝힌 듯싶으나, “구체적으로 지겨운 거절의 답장”이라든지 “마스크 착용은 정부에서 권장하고 있는 방침”처럼, 이웃을 이웃이 아닌 놈(적군)으로 여기는구나 싶은 말씨가 자꾸 드러납니다. ‘나찾기’를 하려면 먼저 ‘나사랑’으로 갈 노릇이요, 남(사회·정부)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는 굴레에 갇힐 적에는 ‘나보기’하고 멀어갈 뿐입니다. 누구나 글쓴이한테 ‘지겹지 않게 거절 답장’을 보내야 할까요? 또는 ‘거절하지 말아야’ 할까요? ‘플라스틱 쓰레기’를 허벌나게 낳은 ‘입가리개’인데, 입에다가 플라스틱 조각을 내내 달고 살아가도록 들씌운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정부)는 슬기롭거나 올발랐을까요? 다 다른 말을 듣고 맞아들이려고 독일로 건너갔으나, 막상 ‘다 다른 목소리’를 마음으로 내려는 이웃을 등진다면, 나이만 들 뿐입니다. ㅅㄴㄹ 사람들이 들고 있는 여권의 색깔만큼 다양한 외국어가 들린다 → 사람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곁말’은 곁에 두면서 마음과 생각을 살찌우도록 징검다리가 되는 말입니다. 낱말책에는 아직 없습니다. 글을 쓰는 숲노래가 지은 낱말입니다. 곁에 어떤 낱말을 놓으면서 마음이며 생각을 빛낼 적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면서 ‘곁말’ 이야기를 단출히 적어 봅니다. 숲노래 곁말/숲노래 말빛 곁말 58 길든나라 길이 드는 갈래는 여럿입니다. 첫길은 그대로 따라가는 몸짓입니다. 두길은 꾸준히 가다듬고 되풀이하면서 쓰기에 좋은 살림입니다. 석길은 남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한 매무새입니다. 넉길은 다시금 애쓰며 솜씨를 키우는 삶입니다. 닷길은 스스로 생각을 잊은 채 휘둘리는 굴레입니다. 길에 들기에 나쁘거나 좋지 않습니다. 마실길이 있고 나들잇길이 있는걸요. 삶도 삶길이라 하며, 살림도 살림길이라 합니다. 이곳에서 저곳을 바라보면서 너머로 나아가려 하기에 ‘길’입니다. 다만, 이 길이 삶길이나 살림길이나 사랑길로 피어나려면 ‘우리 스스로 생각’을 할 노릇입니다. 생각을 잊거나 잃으면 심부름만 해요. ‘길든나라’로 빠집니다. ‘길든넋’일 적에는 ‘스스로넋’이 아니니 누가 시키지 않으면 안 움직여요. 쇠밥그릇에 갇힙니다. ‘길든이’라면 “우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곁말’은 곁에 두면서 마음과 생각을 살찌우도록 징검다리가 되는 말입니다. 낱말책에는 아직 없습니다. 글을 쓰는 숲노래가 지은 낱말입니다. 곁에 어떤 낱말을 놓으면서 마음이며 생각을 빛낼 적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하면서 ‘곁말’ 이야기를 단출히 적어 봅니다. 숲노래 곁말/숲노래 말빛 곁말 56 볕나물 풀꽃을 찰칵찰칵 담기 좋아하는 이웃 어르신이 있습니다. 이분은 한자말을 써야 깍듯하다(예의·예절)고 여기시곤 합니다. 어느 날 함께 숲길을 걷다가 노란꽃을 만났고, 이분은 ‘양지꽃’이란 한자말이 깃든 이름을 들려줍니다. 흙살림을 짓는 다른 분은 ‘가락지나물’이란 이름을 들려주더군요. 더 알아보니 ‘쇠스랑나물’이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세 가지 이름을 나란히 놓고서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쇠스랑’이나 ‘가락지’는 이 풀꽃이 사람 곁에서 어떻게 보였는가 하고 헤아리면서 붙인 이름입니다. ‘양지’라는 한자말도 매한가지인데, 참으로 볕이 잘 드는 곳에서 샛노랗게 빛나는 들나물이라는 뜻입니다. 함께 숲길을 걷다가 볕바른 곳에서 만난 노란꽃나물을 한 줄기 훑어서 혀에 얹고서 가만히 생각했어요. 볕살을 듬뿍 머금은 나물을 몸으로 받아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읽기 40 《사과나무밭 달님》 권정생 창비 1978.12.25.첫/2006.10.2.고침2판 《사과나무밭 달님》(권정생, 창비, 1978/2006)은 이제 해묵은 이야기책 같습니다. 시골 작은집에서 살며 시골 작은이웃을 그리는 마음을 담아낸 글인데, 이 책을 읽는 어린이나 어른 가운데 오늘날 누가 시골 작은집에서 살까요? 서울에서 커다란 잿집(아파트)에 머물기에 권정생 님 글을 못 읽거나 못 헤아려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겠어요? 여름에 부채질을 하다가 나무 곁에 서서 쏴아아 하고 부는 바람으로 풀내음을 맡는 살림살이가 아니면서, 《사과나무밭 달님》에서 들려주는 어떤 바람소리를 들을 만한가요? 겨울에 손끝 발끝 꽁꽁 얼면서 아궁이에 불을 때어 밥을 지어 조그마한 칸에 둘러앉아 한끼를 나누는 살림을 구경조차 해본 적이 없는 채, 삶으로 마주하지 않고 글로만 읽는다면, 무엇을 보거나 느낄까요? 이제는 나라 어느 책숲(도서관)이든 으리으리합니다. 밤에도 불빛이 환한 책숲이며, 잿집이고, 서울이고, 배움터입니다. 한밤에 별빛을 그리면서 밤새가 들려주는 노래를 가만히 듣는 하루가 없는 채, 그저 글로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39 《나무 위의 아이들》 구드룬 파우제방 글 잉게 쉬타이네케 그림 김경연 옮김 비룡소 1999.7.20. 《나무 위의 아이들》(구드룬 파우제방·잉게 쉬타이네케/김경연 옮김, 비룡소, 1999)을 처음 읽을 무렵, 이제 이 나라에는 “나무 타는 아이들”은 감쪽같이 사라졌을 텐데 싶었습니다. 어버이 가운데 아이한테 “나무 심을 마당”을 베풀거나 물려주는 이는 찾아보기 너무 어렵습니다. 배움터 길잡이 가운데 아이들한테 배움책(교과서)이 아닌 나무를 길동무로 삼거나 배움벗으로 삼아 즐겁게 뛰놀도록 틈을 내주는 어른이 있으려나 궁금했습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들이 타고 오를 나무를 건사하는 길잡이(교사·교감·교장)는 예전부터 아예 없거나 아주 드뭅니다. 나무타기를 하려면 가지를 함부로 치지 않을 노릇입니다. 타고 오를 나무라면 여러 나무가 자라야겠지요. 나무 곁에는 풀밭이 흐드러지면서 갖은 들꽃이 피고 질 노릇이요, 갖은 풀벌레에 개구리에 뱀에 제비에 참새에 복닥복닥 어우러질 수 있어야 합니다. 푸나무만 우거지는 숲이 아닙니다. 숱한 새가 나란히 깃들어야 숲입니다. 벌나비에 풀벌레가 마음껏 살아가는 곳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