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가정주부’가 아닙니다 말꽃삶 2 살림꽃 저는 집안일을 신나게 맡습니다. 어버이 품을 떠난 스무 살부터 모든 살림을 혼자 했습니다. 그때가 1995년이니 혼살림 자취가 제법 길다고 할 만합니다. 1995년부터 혼살림을 하는데, 이해 가을에 싸움터(군대)에 끌려가요. 사내란 몸이니 끌려갈밖에 없습니다. 요새는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1994년에 경기도 수원에 있는 병무청에서 ‘신체검사’를 받을 적에 여러 소리를 들었어요. “자네는 왜 의사 진단서를 안 떼어오나? ○○만 원만 들이면 진단서 하나 쉽게 떼는데, 진단서가 있으면 바로 면제인데, 왜 안 떼어오지? 내가 자네를 재검대상자로 분류할 테니까 떼오겠나?” 하고 묻더군요. 1994년 봄에 ‘장병 신체검사를 맡은 군의관’이 들려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습니다. 그저 ‘군의관이 척 보아도 면제 대상자이면, 그냥 면제를 매기면 되는데, 왜 목돈을 들여서 진단서를 떼오라고 하는지’ 알 길이 없더군요. 이날 저녁에 집으로 돌아가니 우리 어머니 말씀이 “얘야, 거기서 그렇게 말했으면 어머니한테 말하지! 왜 재검을 안 받고 그냥 현역으로 가니! 그 돈이 얼마나 크다고!”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책읽기 푸른책읽기 27 《시골 육아》 김선연 봄름 2022.6.24. 《시골 육아》(김선연, 봄름, 2022)를 읽었습니다. 서울에서 아이를 낳아 돌보는 하루는 ‘살림길’로 서기 어렵고 힘들며 지치기까지 하는 줄 느낀 어머니가 하루를 되새기면서 적바림한 이야기가 흐릅니다. 다만 ‘서울을 벗어나 상주에 깃들기’는 하되, 언제까지 시골에 머무를는지는 알 수 없겠구나 싶어요. 시골에 뿌리를 내리려는 삶길보다는 ‘서울을 떠나 시골에 자리를 얻기는 했으나, 이대로 살아도 되나?’ 하는 걱정이 짙어 보이거든요. 시골에서 아이를 낳아 살아가는 하루를 고스란히 글이나 책으로 옮긴 이웃님이 이따금 있으나, 참말로 시골을 시골로 바라보거나 받아들이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풀벌레가 노래하는 곁에서 아기를 업거나 안으면서 자장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면, 멧새가 노래하는 곁에서 사뿐사뿐 걷거나 자전거를 타지 않는다면, 제비가 춤추는 곁에서 기저귀를 빨아서 마당에 널지 않는다면, 참말로 시골살이인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국립국어원이 엮은 낱말책은 ‘시골’을 “도시에서 떨어져 있는 지역. 주로 도시보다 인구수가 적고 인공적인 개발이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책읽기 푸른책읽기 26 《애국가 논쟁의 기록과 진실》 임진택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20.11.10. 《애국가 논쟁의 기록과 진실》(임진택,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20)을 읽기 앞서까지 ‘애국가’란 이름인 노래를 돌아본 적은 없습니다. 노랫말에 담은 뜻은 훌륭하더라도 어린이가 알기 어려운 한자말이 많다고 느끼기는 했습니다. 어린배움터(국민학교)를 다니던 1982∼87년에는 날마다 이 노래를 불러야 해서 지긋지긋할 뿐 아니라, ‘노랫말이 뭔 소리래?’ 하면서 골이 아팠어요. 국민교육헌장하고 애국가를 날이면 날마다 외우도록 시켜서 못 외우면 두들겨맞아야 했거든요. 어린배움터를 마치는 1988년 2월 어느 날 “이제 더는 날마다 외우기를 시키지는 않을 테니 한숨 돌리겠네.” 하고 혼잣말을 내뱉았어요. 이 혼잣말이 좀 컸는지, 길잡이(담임교사)가 들었고, 길잡이한테 또 얻어맞는구나 싶었지요. 그런데 길잡이는 “며칠 뒤면 졸업이니 오늘은 봐주지. 중학교에서는 외우라 시키지는 않을 테지만, 입시지옥이 너희를 기다린단다.” 하며 이죽거렸습니다. 우리는 평양에서 태어난 ‘안익태’로 여기지만, 이녁은 ‘에키타이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연이와 버들잎 소년》 이원수·손동인 엮음 창작과비평사 1980.7.10. 《연이와 버들잎 소년》(이원수·손동인 엮음, 창작과비평사, 1980)이란 옛이야기 글모음이 있습니다. 이제는 백희나 님이 빚은 그림책으로 “연이 버들잎” 이야기가 확 퍼진 듯한데, 아무리 새 그림책이 나오더라도 옛이야기 줄거리하고 얼거리하고 삶넋부터 찬찬히 읽고 돌아볼 노릇이라고 봅니다. 우리 옛이야기는 모두 수수한 순이돌이 삶을 담습니다. 잘나거나 이름나거나 돈있는 벼슬아치나 글바치나 임금붙이 이야기는 안 담지요. 왜 그럴까요? 돈바치·벼슬아치·글바치·임금붙이는 그야말로 돈·이름·힘에 얽매여 스스로 죽음길로 달려갑니다. 이와 달리 수수한 순이돌이는 삶·살림·사랑을 숲에서 스스로 짓는 슬기로운 하루를 짓고 나눠요. 우리 옛이야기는 바로 삶·살림·사랑하고 숲·스스로·슬기를 어른하고 어버이부터 되새기면서 아이들이 이 숨결을 고이 이어받아서 새롭게 가꾸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할 만합니다. 옛이야기는 심심풀이가 아닙니다. 옛이야기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옛이야기는 글꽃(문학)이 아닙니다. 옛이야기는 고스란히 우리 삶이자, 말이자, 넋이자, 오늘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평화는 어디에서 오나요》 구드룬 파우제방 신홍민 옮김 김중철 엮음 웅진닷컴 1997.4.20. 《평화는 어디에서 오나요》(구드룬 파우제방/신홍민 옮김, 웅진닷컴, 1997)를 1999년에 처음 만났어요. 책이름을 이처럼 아름다이 붙일 수 있어 놀라웠고, 어린이부터 누구나 차근차근 되새길 이야기가 사랑스러워 반가웠습니다. 이때 뒤로 이 책을 둘레에 꽤 건네었고, 알렸고, 들려주었습니다. 어느덧 두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라는 나날을 살며, 우리 집 아이하고도 함께 읽습니다. “너희는 어떻게 읽었니? 이 책에 나오는 미움하고 눈물이 어떤 뜻이라고 생각하니?” 빙그레 웃기만 하는 아이들한테 더 묻지 않습니다. 스스로 느낄 수 있으면 넉넉해요. 천천히 돌아보면서 마음 가득 어깨동무를 품으면 되어요. 한자말 ‘평화’는 우리말로 하자면 ‘손잡기’나 ‘어깨동무’입니다. 손을 잡기에 평화예요. 서로 손을 잡아야 이 손에 총칼을 못 쥐지요. 아니, 서로 손을 잡기에 따사로이 흐르는 숨결을 서로 느끼고, 이 숨결을 받아들이면서 함께 소꿉놀이를 짓는 길을 생각할 만합니다. 어깨동무이기에 평화예요. 어깨를 겯으며 걸어야 안 다투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숲책 푸른책 읽기 22 《자연 낱말 수집》 노인향 자연과생태 2022.4.21. 《자연 낱말 수집》(노인향, 자연과생태, 2022)을 가만히 읽었습니다. 저는 영어 ‘내추럴’도 한자말 ‘자연’도 아닌, 우리말 ‘숲’을 말하고 노래합니다. 왜냐하면, 저는 영국이나 미국에서 안 태어났고, 중국이나 일본에서 안 태어났거든요. 그저 이 나라 조그마한 골목마을에서 조그맣게 태어나서 살았기에 조그마한 아이로서 둘레를 품을 풀빛이고 꽃빛이고 나무빛이 어우러진 숲빛인 말을 살핍니다. 어릴 적에 날개꽃(우표)을 곧잘 모았습니다. 여덟아홉 살 어린이가 “날개꽃 모으기”를 한다고 말하면, 그무렵에는 아직 ‘날개꽃’이란 말을 몰라 “우표 모으기”라 말했습니다만, 둘레 어른들은 ‘고상한 한자말’을 끼워넣어 “우표 수집”이라고 일컬었습니다. 모으기에 ‘모음·모으기’인데 예나 이제나 숱한 어른들은 우리말을 쓰기보다는 ‘수집’이나 ‘-집(集)’이란 일본스런 한자말씨에 스스로 갇힌다고 느껴요. 이제부터는 우리 스스로 우리 눈길을 틔워 우리 나름대로 우리 보금자리를 푸르게 사랑하는 살림길을 펴는 숲말을 헤아리면 스스로 즐겁고 아름다워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21 《내가 좋아하는 것들, 집밥》 김경희 스토리닷 2022.1.20. 《내가 좋아하는 것들, 집밥》(김경희, 스토리닷, 2022)은 ‘집밥’을 둘러싼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집밥을 잘 차리거나 멋스러이 해내는 길을 다루지 않습니다. 집밥을 어떻게 맞이했고 받아들이면서 아이들하고 곁님한테 물려주는가 하고 이야기합니다. 순이돌이로 짝을 이룬 이웃님한테 마실을 갈 적에는 으레 그 집 살림을 들여다볼밖에 없는데, 참으로 숱한 돌이는 부엌일을 아예 안 하다시피 합니다. 이분들이 나이가 제법 있기에 어릴 적부터 부엌일을 안 해 버릇한 탓이라고 둘러댈 수 없습니다. 제가 만나는 이웃 순이돌이는 하나같이 ‘생각이 좀 있다’거나 ‘책 좀 읽었다’는 분이거든요. 머리로는 ‘왼길’에 선다고 입으로 말하면서 막상 두 손에 물을 안 묻히는 돌이가 수두룩합니다. 부엌일은 누가 해야 할까요? 시골에서 살며 밭살림을 가꾼다면 밭일은 누가 해야 할까요? 부엌일도 밭일도 ‘함께’ 해야 아름답습니다. 순이돌이가 나란히 하고, 아이어른이 같이 할 적에 사랑스럽습니다.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물려줄 어깨동무(성평등·페미니즘)란, ‘함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20 《꼬마 할머니의 비밀》 다카도노 호코 글 지바 지카코 그림 양미화 옮김 논장 2008.4.15. 《꼬마 할머니의 비밀》(다카도노 호코·지바 지카코/양미화 옮김, 논장, 2008)은 두 할머니가 어린이란 몸으로 돌아가서 실컷 뛰노는 줄거리를 들려줍니다. 온갖 옷을 꽃솜씨로 지을 줄 아는 ‘꼬마 할머니’는 어느 날 ‘나이를 벗기는 옷’을 지어냈다고 해요. ‘맨눈으로는 못 보는 옷’을 한 겹씩 입을 적마다 나이를 한 살씩 벗는다지요. 꼬마 할머니는 왜 나이를 벗기는 옷을 생각해서 지어냈을까요? 숱한 사람들은 왜 젊어 보이려고 용을 쓸까요? 꼬마 할머니는 예닐곱 살이나 여덟아홉 살쯤 되는 아이로 돌아가서 거리낌없이 뛰고 달리고 춤추고 노래하고 떠들면서 하루를 신바람으로 놀고 싶어서 나이를 벗기려고 합니다. 엉터리 같거나 억지스럽거나 바보스러이 꿈을 생각하려 했다면, 꼬마 할머니는 나이를 벗기는 옷을 못 지었으리라 느껴요. 즐겁거나 재미나거나 새롭게 하루를 그리는 마음이기에, 꼬마 할머니는 신바람놀이를 꾀하면서 옷을 지을 뿐 아니라, 멋진 놀이동무를 사귀어요. 온누리 어른들이 좀 놀기를 바랍니다.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19 《악어소녀 수》 새런 암스 뒤세 글 앤 윌스도프 그림 김수연 옮김 주니어김영사 2004.6.2. 《악어소녀 수》(새런 암스 뒤세·앤 윌스도프/김수연 옮김, 주니어김영사, 2004)는 아이가 새롭게 스스로 살아내는 길을 슬기로우면서 상냥하게 들려줍니다. 그림을 맡은 분은 《소중한 주주브》를 선보이기도 했고, 어릴 적부터 둘레에서 마주하던 숲을 알뜰히 담아낼 뿐 아니라, ‘이 짐승은 사납거나 저 짐승은 나쁘다’고 하는 비뚤어진 생각이 없이 ‘모두 다르면서 아름다운 숨결’이라는 생각을 고이 들려줍니다. 이 《악어소녀 수》는 외톨이 아이를 사랑스레 보살피며 ‘악어순이’로뿐 아니라 ‘사람순이’인 줄 잊지 않도록 품은 ‘어미 악어’를 눈여겨보아야 합니다. 겉모습이 악어라서 믿기 어렵거나 안 믿으려 한다면, 바로 이처럼 흐린 눈망울을 씻으라는 어린이책입니다. 따지고 보면, 악어순이 이야기는 믿고 말고가 아닌, 사랑으로 살림을 짓는 삶이란 무엇인가를 헤아리는 길을 다룬다고 하겠어요. 아이는 어디에서나 아이입니다. 어버이는 누구한테나 어버이입니다. 여우순이나 곰순이여도, 멧돼지순이나 토씨순이여요, 아이는 늘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푸른책 읽기 17 사랑으로 지켜보기에 《곤충·책,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수리남 곤충의 변태》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글·그림 윤효진 옮김 양문 2004.10.20. 이월부터 들꽃을 살피는 이웃님이 많습니다. 긴긴 겨울이 저무는구나 하고 알리는 이월꽃은 참으로 반가우면서 곱기 마련입니다. 삼월로 접어들면 온누리 곳곳은 푸릇푸릇할 뿐 아니라 아직 덮은 하얀 눈빛 곁에 흰꽃이 흐드러지지요. 이제 사월로 넘어서면 풀빛에 흰꽃·노랑꽃·빨강꽃·파랑꽃이 얼크러져 마치 ‘풀무지개’나 ‘숲무지개’를 펼친 듯합니다. 그런데 오월쯤 이르면 덥다고 말하는 이웃님이 늘면서 “오월에 굳이 무슨 꽃을?” 하고 여기더군요. 그런데 사오월 사이에는 딸기꽃이 지고 딸기알이 여물면서 찔레꽃이 피지요. 유월로 들어서는 길턱에는 감꽃에 귤꽃에 유자꽃에다가 오동꽃이 훅훅 사로잡습니다. 이제는 꽃구경을 하려는 이웃님은 가뭇없이 사라지는데, 여름인 칠월로 가면 온통 푸르기만 한 들녘에 파랗게 달개비꽃이 올라요. 여기에 달맞이꽃이라든지 나팔꽃이 어깨동무합니다. 그리고 한여름인 칠팔월 사이에 쑥꽃이며 모시꽃이 올망졸망 번지고, 살살이꽃도 천천히 줄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