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후덜덜 여름을 앞둔 한봄부터 하나둘 터져나오는 개구리 노랫소리가 뛰어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노래를 잘하는 개구리가 있지 않다고, 모든 개구리가 저마다 멋있게 노래잔치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벽을 여는 멧새 노랫소리가 빼어나다고 여기지 않아요. 꼭두나 으뜸으로 꼽을 멧새란 따로 없이 온갖 멧새가 다들 멋지게 하루를 열면서 아름다이 노래판을 펴는구나 싶어요. 잰 손놀림이 아니더라도 밥을 짓고 살림을 건사합니다. 훌륭한 몸놀림이 아니어도 옷을 짓고 삶을 가다듬습니다. 잡도리를 해도 좋고, 밑일을 추슬러도 좋으며, 바탕부터 챙기면서 차근차근 오늘을 차리는 눈빛이라면 누구나 꽃등이라고 느낍니다. 이따금 꽤 먼길을 두 다리로 다녀오는데, 이런 날은 저녁에 다리가 후덜거립니다. 후들후들한 다리를 토닥이면서 느긋이 드러누워 눈을 감으면 마실길에 본 여러 모습이 가만히 흐릅니다. 길가에 고개를 내민 들꽃을 살펴보던 일이 떠오르고, 여름잎이 짙푸른 나무줄기를 쓰다듬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숲노래 말빛 오늘말. 덜다 돈이 있어 돈을 씁니다. 마음이 있어 마음을 씁니다. 돈값을 하는 세간이 있고, 땀값을 하는 두 손이 있어요. 돈을 곁에 두어 살림을 꾸리기도 하지만, 돈이 없더라도 두 손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립니다. 가없이 오래도록 이은 살림이라면, 돈이 이 별에 태어난 지는 얼마 안 됩니다. 돌고도는 돈이라면, 어느 곳에 묵히지 않도록 돌려야겠지요. 돌지 않는 돈은 그저 돌(바위)이 되어 무겁습니다. 큰돈을 차지하려는 사람은 이 짐더미를 안고 지내느라 곧잘 삶을 잊거나 살림하고 멀어져요. 겨울이 저물면서 들꽃이 고개를 내밉니다. 들길을 같이 걷는 아이가 “저기 꽃 피었어요.” 하고 노래합니다. 꽃을 알아보는 꽃돌이로군요. “우리 집 뒤꼍에도 이 들꽃이 가득하지.” 하고 보태는 어버이라면 꽃사람입니다. 하루는 얼마든지 살뜰하게 누릴 만합니다. 어제는 썩 알뜰하게 못 누렸다면 오늘은 한결 낫게 돌보기로 해요. 새벽에 눈을 뜨면서 틀거리를 여미어 봐요. 모자라면 여투거나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오늘말. 손바닥 처음으로 “내 손바닥에서 노는군” 하는 말을 듣던 때에는 못 알아들었어요. 내 몸뚱이가 이렇게 큰데 어떻게 네 손바닥에서 놀 수 있나 싶어 갸우뚱했습니다. ‘손바닥’을 그저 조그마한 바닥으로만 여기던 어린 날에는 못 알아들은 그 말씨를 나중에 알아차리지만, 그래도 영 아리송했어요. 머리가 굵는 길에 ‘안마당’이나 ‘앞마당’ 같은 말도 그냥 안쪽에 있거나 앞쪽에 있는 마당이 아닌, 다른 자리를 빗대는 말씨인 줄 조금씩 깨닫습니다. “우리 집”이란 말씨도 제가 어버이하고 살아가는 집일 뿐 아니라 “우리 쪽 모두”를 가리키는 자리에도 쓰는 줄 조금씩 눈을 뜹니다. 그러고 보면 ‘텃밭’이란 낱말도 그렇지요. 말 한 마디를 더 새롭게 쓰는 셈입니다. 말에 담는 뜻을 한결 넓힌다 할 만하고, 새롭게 더하거나 보태거나 붙이거나 덧대면서 말길을 가꾸는 셈이기도 합니다. 새삼스레 어우러지는 말입니다. 양념처럼 깃들다가도 사르르 녹아들어요. 더욱 맛을 내는 재미난 눈빛이요, 가만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숲노래 푸른그림책 - 물을 마시며 물이 됩니다 《오늘 날씨는 물》 오치 노리코 글 메구 호소키 그림 김소연 옮김 천개의바람 2020.1.20. 사랑스러운 말을 듣는 사람은 사랑이 말에 깃들면 어떠한 숨결이 되는가를 느끼고 맞아들여서 배우고 삶으로 누립니다. 미워하거나 따돌리거나 괴롭히거나 짓밟거나 억누르는 말을 듣는 사람은 바로 이러한 몸짓에 고스란히 묻어난 말을 들을 적에 어떠한 마음이 되는가를 느끼면서 이러한 삶을 맛봅니다. 바람이 매캐한 곳에서는 숨쉬기 어렵습니다. 바람이 맑은 곳에서는 숨쉬기 좋습니다. 바람이 매캐한 서울 한복판이라든지 핵발전소나 제철소 곁에서 숨을 제대로 쉴 만할까요? 숲 한복판이나 바닷가에서는 누구라도 가슴을 펴고 두 팔을 벌려 온몸으로 한껏 숨을 마실 만합니다. 찬이는 밖으로 뛰어나가 손바닥에 눈을 받았습니다. 그 손바닥에서 “찬이야, 찬이야.” 하는 목소리가 났어요. (6쪽) 그리 멀잖은 지난날에는 누구나 어디에서나 손수 흙에 심고서 가꾸고 거두고 손질한 남새나 열매로 밥을 차려서 함께 누렸습니다. 이때에는 일본 한자말 ‘유기농·자연농·친환경’ 같은 이름이 없었으나 누구나 어디에서나 숲결을 그대로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오늘말. 힘으로 잘 안 된다는 생각에 힘으로 하면 그만 일그러지기 쉽습니다. 언제나 힘을 써서 움직이되 힘으로 누르거나 내세우거나 앞세운다면 외려 쉽게 망가질 만해요. 윽박지르는 말로는 타이르지 못하고 달래지도 못합니다. 오직 부드러운 말씨로 타이르거나 달랠 만합니다. 휘어잡으려 한다면 뭔가 시킬 수 있겠으나 같이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름값을 내세울 적에도 함께하기 어렵지요. 콧대가 높으면 둘레에서 다가서지 않아요. 마구잡이인 사람한테는 다들 멀어지겠지요. 들꽃을 봐요. 들꽃은 힘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들풀을 봐요. 들풀은 콧대높지 않고, 잘난척하지 않아요. 들꽃을 닮은 들꽃사람이 되면 어떨까요? 들풀한테서 배워 들풀사람으로 손잡으면 어떤가요? 수수하게 살아가면서 투박하게 말하지만, 이 여느 말씨야말로 생각을 살찌우는 씨앗이 되어요. 너도 풀이고 나도 풀입니다. 너도 풀꽃이고 나도 풀꽃이에요. 물결치듯 어깨동무를 하며 놀아요. 너울대듯 어깨를 겯고 나아가요. 우리가 함께 지내는
[ 배달겨레소리 숲노래 글님 ]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오늘말. 함씽씽 영어를 보면 ‘car’를 두루 씁니다. 지난날에는 오직 ‘수레’를 ‘car’라 했고, 오늘날에는 씽씽 달리는 살림도 ‘car’라 합니다. 그저 수수하게 쓰는 말입니다. 한자로 본다면 ‘車’를 ‘수레’한테도 ‘씽씽 달리는 살림’한테도 써요. 그렇다면 우리말은 어떤가요? 우리는 우리말 ‘수레’를 짐을 실어서 손으로 끄는 살림뿐 아니라, 길을 씽씽 달리는 살림을 가리키는 자리에서도 함께 쓰나요? 이제 이 나라에는 ‘자가용·자동차·버스·택시’ 같은 말씨가 뿌리내렸다고 할 만합니다. 어디에도 ‘수레’를 못 쓰는구나 싶어요. 그러나 생각해 보고 싶어요. 어른 사이에서는 뿌리내렸을 테지만 새로 태어나 자랄 아이들한테는 다릅니다. 앞날을 살아갈 어린이를 헤아려 새이름을 살피고 싶어요. 빨리 달릴 적에 “씽씽 달린다”고 합니다. 예전부터 ‘빠른 것’을 ‘씽씽이’라고, 장난감을 ‘씽씽카’라고 했어요. 재미있어요. 이 말씨를 살려 ‘혼씽씽(자가용)·함씽씽(버스)’처럼 새말을 지을
[ 배달겨레소리 글쓴이 숲노래] ‘졸졸’, ‘줄기’에서 비롯한 낱말 ‘오늘말’은 오늘 하루 생각해 보는 우리말 이야기입니다. 이 낱말 하나를 혀에 얹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적으면서 생각을 새롭게 가꾸어 보면 좋겠습니다. 오늘말. 졸따구 시냇물이 ‘졸졸’ 흐른다고 합니다. 빗물이 ‘줄줄’ 샌다고 해요. ‘졸·줄’은 말밑이 같습니다. ‘졸졸’이나 ‘줄줄’은 이리저리 휘는 모습이 아니에요. 곧게 흐르는 모습입니다. 곧게 흐르는 모습은 ‘줄기’라는 낱말에서 비롯하지요. ‘빗줄기·등줄기·멧줄기’처럼 쓰기도 하는데, 먼저 ‘풀줄기·나무줄기’입니다. 이러한 결은 “줄을 맞추다”에서 ‘줄’로 나아가고, 글을 쓰다가 ‘밑줄’을 긋는 데로도 잇습니다. 그런데 물이 흐르는 모습마냥 “졸졸 따라가기”도 합니다. “줄줄이 잇는” 일도 있어요. ‘졸졸·줄줄’은 곧은 모습이나 몸짓을 나타내는데, 반듯한 결을 나타낼 적에도 쓰지만,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서 아무렇게나 뒤를 좇을 적에도 씁니다. 이렇게 스스로 생각을 안 짓고 남이 시키는 대로만 하는 이가 보잘것없다고 여겨, 한자로 ‘졸(卒)·졸렬’을 쓰기도 합니다만, ‘졸따구’나 ‘졸때기’는 한자하고는 동떨어진 말밑입니다. 어쩌면 한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