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24] 솔밭
어린 날에는 내 몸이 작아서 그럴까. 배움터 가는 길이 너무 멀었다. 마을을 벗어나 재 하나 넘는다. 멧길에는 온통 논밭이다. 가는 동안 앉아 쉴 나무그늘이 없다가 사이에 솥밭이 있다. 우리는 흙길로 올라가 무덤가 소나무 밑에서 쉰다. 우리는 그 자리를 솥밭무디라고 했다. 마치고 오는 길에 쉬려고 뛰어올 적도 있다. 배움터 울타리 밖에 사는 젊은 아저씨가 아침부터 우리가 마칠 때까지 처마 밑에 우두커니 있다. 우리가 그 앞을 지나가면 한마디 하고 앞발로 시늉하며 으르렁댄다. 우리는 놀라서 개나리 울타리를 넘어 들어가거나 교문까지 달린다. 아저씨는 햇볕에 그을려서 얼굴이 검붉다. 까까머리를 하고 헐렁한 옷을 입고 한 손은 늘 허리춤에 넣었다. 입을 벌린 채 있어 침이 줄줄 흘려 옷이 젖었다. 그 아저씨는 할 줄 아는 말은 짧다. “할래” 무슨 뜻인지 모르지만 느릿느릿한 몸짓으로 우리를 쫓아오려고 뛰면 우리는 힘껏 뛰었다. 아저씨를 보면 머리뿌리가 서늘하다. 우리는 뒤를 힐끗 돌아보면서 달린다. 솔밭무디까지 와서야 마음을 놓는다. 솔밭무디까지는 멀어서 그 아저씨가 오지 못한다. 배움터 가는 길 반은 멧길이고 반은 이 아저씨 때문에 늘 달리느라 십리 길이 심심하지 않았다. 아저씨도 배움터에 오고 싶었을까. 가시내들만 골리고 싶었을까. 장가 가고 싶었을까.
2021.06.03.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