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25 ] 살구
풋살구는 유월 볕에 노르스름하게 익어간다. 어린 날 우리 집에는 살구나무가 없었다. 장골 끝에 사는 숙이네에 살구나무가 많았다. 살구나무가 뒤쪽 울타리로 에워쌌다. 길이 좁아 발을 헛디디면 어른 키높이 도랑에 떨어진다. 도랑물은 멧산에서 내려오고 숙이네 집을 휘돌아 마을로 흐른다. 나는 살구가 먹고 싶으면 숙이네 집에 찾아간다. 다른 아이는 숙이네 집에 오지 않다가 살구가 노랗게 익으면 몰려왔다. 나는 도랑쪽 살구나무를 잘 탔다. 머스마들은 큰나무에 올라간다. 두 그루에 살구가 많이 달렸다. 장대로 나무를 퉁퉁 치면 살구가 와르르 도랑에 떨어져 물에 동동 뜬다. 살구를 주우려고 바위 틈으로 내려와 첨벙첨벙 들어가서 줍는다. 도랑 바닥이 돌층에 큰돌이 있고 나무가 위로 우거졌다. 살구가 주먹만큼 굵다. 살구를 또개면 살이 보슬보슬하고 도톰하다. 까만 얼룩이 있는 살구는 벌레가 산다. 덜 익은 살구는 두었다가 익으면 먹는다. 살구가 깨끗하게 잘 빠진다. 딱딱한 씨앗 껍데기를 돌로 내리쳐서 하얀 씨앗을 빼먹는다. 우리는 뭔들 안 먹었을까. 숙이는 살구를 우리가 따먹는데도 가면 좋아했다. 아이들이 숙이 아버지를 무서워했다. 숙이 아버지는 아들을 낳으려고 씨받이를 들여서 숙이를 낳고 또 들여 딸을 낳았다. 숙이는 큰어머니를 어머니로 불렀다. 어머니가 귀가 잘 안 들리기도 하지만 두 사람은 아버지한테 하도 얻어맞아서 부둥켜안고 우는 날이 잦다. 숙이 아버지 눈이 차가워, 보기만 해도 무섭지만, 나는 숙이 집에 날마다 찾아갔다. 숙이 아버지가 무서워도 아무도 못 갈 적에 나만 놀러갔다. 살구가 누렇게 익으면 살구 따먹으러 온 아이들한테 나무를 알려주고 따 주기도 했다. 아버지한테 꾸중 들을 수도 있는데 숙이는 아이들이 집에 오니 좋아하는 눈치였다.
2021. 06. 03.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