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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48] 말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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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48] 말밤

 

씨앗을 주웠다. 껍질만 다르고 빛깔하고 생김이 밤과 닮았다. 까맣고 두꺼운 껍질에서 씨앗이 나온다. 못에도 딱딱하고 가시가 돋은 껍질에 씨앗이 있었다. 어린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배가 고파 못에 기웃거린다. 오빠골에는 못이 셋이나 있다. 못이 크기대로 줄줄이 있다. 우리는 가운데 못에서 잘 논다. 길 바로 옆에 있어 물에는 부레옥잠 닮은 풀이 물낯에 퍼져 넓게 덮는다. 작대기를 하나 꺾어 풀을 끌어올리다가 뱀을 본다. 작대기를 물에 탕 치며 뱀을 쫓는다. 풀을 다시 당겨서 푸른 열매를 딴다. 깨물면 알이 덜 여물어서 물이 찍 뻗는다. 가뭄이 들거나 논물을 댄 뒤에는 못에 물이 준다. 물이 빠진 자리에는 진흙이 드러난다. 진흙이 말라 쩍쩍 갈라진 자리를 밟고 말밤(마름)을 캔다. 진흙에서 나오는 말밥은 물 낯에서 건진 풀빛하고 다른 흙빛이다. 아주 딱딱하고 뾰족한 가시가 두 쪽으로 나고 세모지다. 깨물면 이가 부러질 듯 야물다. 하얀 가루가 나온다. 쌀가루 맛이 나는 가루가 쫀득쫀득하다. 어머니 아버지도 일하다가 호미로 말밤을 캐서 삶아 주었다. 못에서 나는 밤도 타박타박하다. 말밤 씨앗은 우리와 숨바꼭질하고 싶었을까. 우리가 찾지 못하게 진흙에 숨고 단단한 껍데기에서 숨었을까. 꼭꼭 숨어도 찾아내는 우리한테 말밤은 술래이지 싶다.

 

2021. 07. 27.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