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51] 꿀
우리 마을 멧골에는 아까시가 꽃을 피울 틈 없이 땔감으로 썼다. 멧골에는 나무보다 잔디가 많았다. 나무가 없으니 꽃이 없고 꽃이 없으니 꿀이 없다. 그렇지만 겨울에는 꿀을 먹는다. 가을에 나락을 거둬서 쌀이 넉넉했다. 겨울이 되면 쌀로 조청을 꼰다. 가마솥에 불을 때고 하루가 걸리는 일이다. 하나는 약초를 달여서 졸이면 꿀보다는 걸쭉하고 숟가락으로 떠서 들면 흐르는 약조청이다. 또 하나는 걸죽하고 달다. 조청을 하도 졸여서 숟가락을 넣으면 손잡이가 휘청거린다. 우리 집에는 벽장이 하나 있었다. 어머니는 나중에 먹을 밥살림을 두었다. 제사에 쓸 과일이나 떡을 두고 조청도 벽장에 두었다. 어린 나는 키가 작아 고개를 한참 쳐들어도 팔을 뻗어도 벽장 문에 손이 닿지 않았다. 베개를 놓고 밟고 이불을 밟고 올라서면 미끄러졌다. 동생을 엎드리게 하고 등을 밟고 올라섰다. 어머니가 숨겨 놓은 조청을 몰래 퍼먹는다. 한 숟가락 두 숟가락 티나지 않게 떠먹는다. 나는 약조청이 입에 써서 맛이 없었다. 빡빡한 조청만 먹었다. 어머니는 일이 바빠 조청을 얼마나 먹었는지 잘 알지는 못해도 다 아는 눈치였다. 조청 끓이고 나온 찌꺼기에 약조청 몇 숟가락 떠서 섞어 먹으면 배가 불렀다. 조청을 높은 데 두면 더 먹고 싶었다. 어머니는 우리를 배불리 먹이고 싶지 않았을까. 어떻게든 찾아 먹는데도 왜 높은 자리에 둘까. 제사 때나 설에 막상 쓰려고 찾을 적에 우리가 다 먹어서 어쩔 몰라 그러셨을까. 우리는 어머니가 벽장에 둔 깊은 까닭도 모르고 우리를 못 먹게 하는 줄만 알았다. 인동초 오가피 엄나무 육모초가 들어간 조청은 내 몸에 꿀같은 달콤한 약이 되었지 싶다.
2021.07. 30. 숲하루